그늘진 기억에 드리운 비애

영화 <애프터썬>
글 입력 2023.10.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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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마주친 <애프터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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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쌀쌀하던 올해 3월 중순, 별생각 없이 발길이 닿는 대로 씨네큐브를 찾아가 <애프터썬>을 감상했다. 국내용 포스터에 적힌 '선연하게 남아있는 그해 여름'이란 글귀에 이끌렸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선연하다'라는 표현은 참으로 껄쩍지근하다. 작품이 보여주는 그해 여름은 선연하기는커녕 흐릿하다 못해 대부분 주인공의 상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해 여름이란 1990년대 후반 주인공 소피가 11살이었을 때 31살의 젊은 아버지 캘럼과 튀르키예 여행을 다녀왔던 시기를 말한다. 영화는 여행 당시의 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된 어른 소피가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애프터썬>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젊은 여성 감독 샬롯 웰스의 데뷔작으로, 감독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한다. 추후 인터뷰를 찾아보니 샬롯 웰스는 '자전적'이라는 단어로 인해 작품이 기계적으로 규정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껴 그 대신 '정서적으로 자전적(emotionally autobiographical)'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나는 사전에 이러한 배경을 전혀 모르고 봤다. 그러나 영화가 유년 시절의 부녀관계를 그리며 뿜는 광대한 페이소스만으로, 이것이 창작자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추론에 충분한 확신을 갖게 됐다.

 

 

 

과거 회상이 아닌 '기억의 시차'에 관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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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썬>은 유년 시절 떠난 아버지와의 여행을 어른이 되어 회상한다는 다소 전형적인 소재를 지녔다. 만약 여기서 그쳤다면 이 영화가 감정을 얼마나 섬세하게 표현했는가에 대한 칭찬 외에는 딱히 덧붙일 말이 없었을 것이다. 이 뻔한 클리셰는 여름 여행의 단편에 불과한 캠코더 영상으로 기억을 필사적으로 짜맞추려는 소피의 발버둥을 통해 '희미한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큰 제의로 뻗어 나간다. 따라서 이 작품을 '어른이 된 소피가 11살 적 아버지 캘럼과의 튀르키예 여행을 회상하는 영화' 정도로 일컫는다면 이는 채 절반도 되지 않는 정의가 된다. 캠코더 영상 외에 과거의 사건을 재현하는 다른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비중을 따지면 녹화 영상을 통한 회상보다는 '죽은 기억에 대한 부검' 또는 '허구적 재현', '상상을 통한 재구성'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영화의 전반부가 분명 누군가의 '기억'이라는 것은 확실하지만, 과연 '누구'의 기억인지에 대해서는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아버지 캘럼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내리훑게 된다. 그러다 소피가 캠코더를 들고 아버지를 장난스레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오고, 관객은 그제야 오프닝의 성인 여성이 소피이며 그녀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여행을 회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런 의도적인 정보의 시차는 하나의 기억에 대해 소피와 캘럼이 겪는 시차를 의미하기도 한다. 영화는 과거의 일(특히 유년 시절의)은 어떻게 기억되며 현재에 이르러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될 수 있는지를 다각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주인공 부녀의 튀르키예 여행은 캠코더 영상, 어린 소피의 기억, 성인 소피의 상상과 꿈이 혼재된 채 조각조각 나열된다. 누구나 그렇듯 유년 시절의 일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전부 또렷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특히 가족과의 일이라면, 더군다나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과의 추억이라면 사적인 감정으로 인해 기억이 왜곡되기 마련일 것이다. 캠코더 속 실제 벌어진 사건들조차 어쩌면 '소피가 기억하고 싶은 특정 순간'만 기록된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의미로 '감독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과 '전부 보여주고 싶지는 않은 것'을 철저히 구분했다는 측면에서 이 영화가 단순히 감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굉장히 훌륭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11살의 어린 소피가 여행에서 발생한 사건의 내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 소피와 캘럼 사이 일련의 시차를 관객에게 아주 창의적이고 탁월한 방법으로 전달하고 있다.

 

 

 

아빠가 돌아오면 우리가 같은 나이일 거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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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소피는 악몽을 꾸다 동성 연인에게 생일 축하를 받으며 깨어나는데, 현재의 소피가 비로소 여행 당시의 아버지 캘럼과 같은 나이가 됐음을 추측할 수 있다. 비록 소피가 31살이 됐더라도 캘럼은 31살이 아닐 터. 부녀 사이라는 필연성으로 인해 기억의 시차는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다. 영화에 등장하지 않은 어떤 사건들이 더 있었건 간에 맥락상 부녀의 화해는 영영 물 건너간 것처럼 보인다. 부모-자식 간의 불가항력적 시차라 하니, 자연스럽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가 떠오른다. 작중 아버지 쿠퍼는 끝내 딸 머피에게 돌아오는 데 성공하지만, 같은 나이이다 못해 머피가 쿠퍼보다 한참 늙어 임종을 앞둔 할머니가 되어 버린다. 고난 끝에 서로를 마주한 쿠퍼와 머피의 부녀관계는 언뜻 화해를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진작 화해했어야 할 적정 시기로부터 아득히 지나버린 것. 머피는 쿠퍼가 떠났던 시점과 같은 나이가 될 때까지 평생 아버지와 재회하길 간절히 바랐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반대로 마침내 쿠퍼가 돌아와 그토록 바랐던 딸의 손을 잡았을 때, 이미 머피에게 있어 와해되었던 먼 옛날의 부녀관계는 이제 그녀의 인생에 있어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즉 <인터스텔라>의 아버지와 딸은 서로 달라진 시차로 인해 끝까지 화해할 수 없었던 셈이다. <애프터썬>과 <인터스텔라>는 작품의 스케일도 판이하고 부녀의 재회 여부 등 설정도 모두 다르지만, '극복할 수 없는 시차로 인해 부녀가 화해하지 못했다'는 애석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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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을 조금이라도 겪어본 사람이라면 작중 캘럼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모종의 이유로 깊은 우울감을 겪고 있고, 삶을 이어 나갈 의지가 꺾일 정도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점 정도는 쉬이 짐작할 수 있다. 그가 튀르키예 여행을 끝으로 스스로 삶을 마감했을 것이란 추측도 매우 합리적이다. 그런데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라는 영화의 핵심 관념을 생각해 보자. 사실 아버지 캘럼이 우울하다거나 정신적으로 유약하다는 것도 소피의 착각, 상상, 혹은 관객의 자의적 해석일지 모른다. 그의 죽음 또한 영화에서 닫힌 결말로 단언하고 있지 않기에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영화의 모든 가닥을 그렇게 회의적인 시선으로 보면 하나의 작품을 개인이 '감상'한다는 보편적인 전제 자체가 무너진다. 가장 자연스럽게 맥락이 이어지며 대다수의 관객이 납득할 만한 해석은 일정 너비의 스펙트럼 안에 적정 오차를 가진 채 관측 불가능한 상태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다만 이는 '정답'이라고 부를만한 무언가는 결코 아닐 것이다. 아마 캘럼은 여행을 마친 뒤 튀르키예에서 자살했고, 소피는 성소수자이며, 아버지와의 여행을 떠올리며 그 역시 성소수자였던 건 아닐지 고심하는 걸로 보인다. 그리고 대답 없는 아버지를 뼈저리게 그리워하면서, 여름 여행의 편린에 불과한 캠코더 화면을 내내 붙들고 그 기억이 기어코 선연해질 때까지 발버둥 쳤을 것이다. 오프닝의 어른 소피와 후반부 캘럼이 공통적으로 마치 클럽처럼 점멸하는 어두운 공간에 서 있는 장면은 상징적인 대비를 이룬다. 이 '어둠 클럽'은 소피의 상상, 꿈, 또는 영적 세계로 보이기도 하지만, 두 씬의 의도적인 대비를 고려하면 소피와 캘럼의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이 대변된 비유적인 공간으로 보인다. 31살이 되어 동성 연인과 살아가고 있는 소피는 자기 자신으로서 현실에 발을 붙이고 존재를 지속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그래서 남들처럼 춤을 추려 한다거나 그 사이에 섞이지 못하는 것을 불편해하지 않고 가만히 눈을 뜬 채 어딘가를 응시한다. 반면 캘럼은 주변의 사람들을 따라 자신도 덩달아 춤을 추지만, 그것은 춤이라기엔 차라리 질곡에 가까운 몸부림처럼 보인다. 캘럼은 성소수자 정체성을 고스란히 현실과 조응시키지 못해 괴로워하다 세상을 떠났을지 모른다. 당시 캘럼의 나이가 된 소피는 '이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고, 당신이 겪었을 고통과 심정을 알지만, 위로를 건넬 수도, 화해할 수도 없기에 하릴없이 당신과의 마지막 추억을 되살려 볼 뿐입니다'라며 속으로 애태우고 있지 않을까.

 

 

 

That's me in the corner. That's me in the spot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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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보이는 정황적인 증거는 많지만, 과연 그 해석이 적당한지 정 의심된다면 거꾸로 그것이 이미 일어난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영화를 되짚어 보는 편이 좋다. 세상을 뜨기 전 딸과의 마지막 여행에서,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싶을까? 캘럼은 호신술을 가르쳐주며 자신을 보호할 줄 알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어른들과 당구를 하는 대신 건전하게 물놀이를 하길 바란다. 성인 잡지 대신 지방 자치와 관련된 책을 읽게 한다. 한편 소피는 여행지 관광객들을 끌어모아 아버지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달라고 부탁하는데, 이때 캘럼은 그에 기뻐하기보단 유적지 언덕 위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어찌할 도리 없이 복잡다단한 표정을 짓고 있다. 스스로를 이미 죽은 사람으로 여겨 딸에게 마지막 추억을 선물하기 위해 부족한 자금을 탈탈 털어 여행을 온 캘럼에게, 소피로부터 탄생을 축하받는다는 건 극도로 심란한 일이었으리라. 유적지 언덕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의 모습은 호텔 발코니 난간 위에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롭게 올라서 있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 광경 또한 소피의 상상에 불과하다는 점은 그야말로 비통하다. 어른이 되어 아버지의 그늘을 이해할 수 있게 된 소피는 그렇게 여름 여행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상한다. 고통스러운 캘럼의 몸부림을 볼 수 있게 된 소피는 그가 더 이상 춤을 추지 않도록 안아준다. 기억을 부검하고 재구성하는 것으로 모자라 아버지와 포옹까지. 소피가 이토록 처절하게 캘럼과 화해하고자 분투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평생 화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망자를 추억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할 때 '사실이 어땠는지'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남겨진 사람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니까. 따라서 이 영화를 보고 캘럼이 정말 죽은 건 맞는지, 게이였던 건 맞는지,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1mm 단위로 재단하려드는 태도는 끔찍한 오독이 아닐 수 없다.

 

 

 

 

제목 <애프터썬>은 이미 햇볕에 그을린 뒤 피부에 바르는 크림이다. 썬크림처럼 미래의 일을 예방하기 위함이 아닌 이미 지난 과거를 복원하는 용도다. 과거를 복원하는 행위, 어떻게든 기억해 내려는 필사적인 마음이 곧 영화의 총체(總體)다. 끝나지 않을 화해를 일평생 반복할 소피의 심정을 상상하면 더욱 애통하다. 캘럼에게 듀엣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소피가 홀로 열창한 R.E.M.의 이 메아리처럼 머릿속을 맴돌게 된다.

 

 

[최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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