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설전시) 서울생활사박물관 [역사문화, 서울생활사박물관]

글 입력 2023.10.13 17:0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서울 생활사의 전반을 느낄 수 있는 곳; [서울생활사박물관]


 

스크린샷 2023-10-20 오후 5.32.59.png

 

 

나는 서울 노원구 태릉입구역 근처에 위치한 ‘서울생활사박물관’을 방문하였다. 서울생활사박물관은 총 4층짜리의 서울의 생활양식에 대한 역사와, 1개의 별관으로 되어있는 규모가 있는 박물관이다. 총 4층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각 층마다 역사적으로 구분되어 있어 마지막에는 가장 현대의 모습을 볼 수 있겠다고 가볍게 추측했었지만, 내 예상과는 달랐다. 서울생활사의 큰 가지는 1층에서 전부 볼 수 있고, 각 층마다 서울 풍경, 서울 살이, 서울 가족, 서울 생업등으로 분류되어 있다.

 

 

스크린샷 2023-10-20 오후 5.46.47.png

 

 

 서울 생활사 박물관에서 가장 강조하는 핵심 키워드는 ‘서울살이’ ‘서울토박이’라는 것을 박물관에 가면 느낄 수 있다. 곳곳에 적혀있는 문장을 인용하면 

 

‘서울은 전국 각지의 사람들을 모아 서울 사람으로 재탄생시키고, 전국의 문화를 합쳐 서울 문화를 창조해 내는 용광로였다.’ 

 

‘해방 이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새로운 서울내기의 등장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이다’ 

 

와 같은 문장이 해당 박물관에서, 그리고 서울사에서 보이는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해방과 전쟁으로 인하여 서울은 항상 이방인으로 가득했다. 해방 이후 일본인이 떠나고, 한국인이 돌아왔고, 전쟁 이후 북한 주민들도 서울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서울은 이동의 중심지이자, 이방인의 수도이다. 현재 서울에 정착해서 사는 80%는 한양의 후손이 아니라고 한다. 즉, ‘서울 토박이’라는 건 극히 드물다는 이야기이다.

 

과거에는 공식적으로 서울 토박이를 찾는 행사도 주최할 정도로, 서울 토박이라는 단어는 아마 서울 사람들에게도 어색하게 느껴질 터이다. 나는 위에서 언급한 4가지의 분류를 중심으로 서울 생활사를 정리하면서 서울 고유의 정취를 함께 느껴보았다.

 

 

스크린샷 2023-10-20 오후 5.43.17.png

 

 

서울의 인구증가와 대중문화

 

나는 서울 생활사에서 1970년대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매우 중요하게 바라본다고 느껴졌다. 인구의 증가로 인하여, 서울에 정착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이를 통해 새로운 주거공간이 생겨나며, 여러 가지 형태의 주거 구조가 나타나는 등 서울 생활사의 뿌리가 깊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즉, <서울내기>라는 단어의 의미가 확립할 수 있게 만들어준 계기가 바로 ‘인구 증가'이다.  베이비붐과 타 지역에서 서울로의 이동으로 인하여 1968년에는 400만 명을 넘었고, 1988년에는 1000만 명으로 돌파했다. 서울의 인구 증가는 서울의 역사를 만들게 된 계기이자, 현대에서 서울 생활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기반이지 않을까 하는 입장이다.


서울 생활사가 발전할 수 있었던 또 다른 계기는 바로 <대중문화>이다. 대중문화에서 서울의 고유한 삶이 짙게 녹아들어 있었다. 영화, 가요, 라디오, 드라마가 대표적이다. 서울생활사박물관에서는 서울 생활에 대한 한탄과, 이방인의 쓸쓸함에 대해 노래한 음악들을 들어볼 수 있게끔 전시해놓아 몇 곡 감상도 할 수 있었다.

 

조용필의 <꿈>, 남국인의 <임과 함께 말없이 갑니다>, 패티 김의 <서울의 찬가> 와 같은 애절한 서울 살이나, 서울에 대한 긍정적인 노래 등 서울을 주제로 한 노래가 많이 발매되었다. 영화 역시 짧게나마 감상할 수 있었는데, <미워도 다시 한번>, <별3형제>, <정말 꿈이 있다구> 등의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타지에 놓고 온 가족의 그리움, 상경을 위해 헤어지게 된 연인 간의 애절함을 표현한 작품들을 주로 확인할 수 있다.

 


스크린샷 2023-10-20 오후 5.51.44.png

 

 

서울에서의 결혼과정과 가정형성

 

서울에서의 삶에 정착하여, 상대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는 서울 가족 변천 역시 전시해 두어 관람할 수 있었다. 1960년대 이후, 마당에서의 결혼이 아닌 본격적인 예식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서울 예식장, 신혼 예식장 등이 생겨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결혼과정에서도 서울의 고유함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전쟁 이후, 폐허가 된 서울에서 한국의 고유한 마당식 진행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 마당식보다 예식장이 본격적으로 발전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스크린샷 2023-10-20 오후 5.43.58.png

 

 

결혼 후, 서울에서 식구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유가 없는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면, 판자촌이나 단칸방도 겨우 빌려 살아갔다. 아파트가 개발되면서 주택복권이나, 청약을 드는 등의 모습도 보였다. 이 시기의 내 집 마련 의미와, 현재의 의미는 비슷하기도 할 것이고, 많이 다르기도 하다는 걸 느꼈다. 가정을 꾸려 식구와 함께 살 수 있는 ‘우리만의 공간’이라는 점은 현재와 동일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집의 의미는 투자, 부의 과시, 재테크, 부동산 투자의 목적도 크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의미도 변하지만 과거에 비해, 집이 가지는 의미가 다소 삭막하게 변하는 것은 사실이고, 씁쓸한 부분이다. 인구가 수도권으로 밀집되며 교육, 의료, 부동산과 관련된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의료계는 지방의료 시스템의 낙후로 인하여 피해가 상상 이상이기도 하다. 서울의 가정형성을 둘러보면서 오늘날의 모습에서 과거의 서울살이를 더 이상 느낄 수 없음에 안타까운 감정이 마음 한켠에 자리잡았다. 

 

 

가족을 위해 일하다; 서울생업

 

마지막 서울 생활사의 분류는 서울 생업이다. 의무교육으로 인하여 아이들의 취학률은 폭증했지만, 교원의 부족으로 제대로 된 교육이 어려웠다. 하지만, 이 시기의 빼곡한 교실에 배움의 즐거움을 마주한 아이들이 그려지곤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1976년을 시작으로 명문 고등학교들이 강남으로 이전하게 되었고, 강남에 거주하는 학생들만 다닐 수 있는 강남 8학군이라는 명칭이 생기게 되었다. 학생들은 공부하였고, 부모님들은 직장에 다니며 모두가 치열하게 일했다. 서울은 타 지역과는 다르게, 관리직, 전문기술직, 사무직, 생산직의 비중이 높았다고 한다. 1980-90년대로 들어오면서 생산직은 지방으로 옮겨가고, 사무직, 관리직이 많이 늘어났다. 부모들은 명문고등학교에, 명문대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며 서울을 지킨다.

 

 

스크린샷 2023-10-20 오후 5.51.34.png

  

 

서울의 역사를 마음과 몸으로 느낀 후, 이방인으로서 서울을 바라보며

 

스크린샷 2023-10-20 오후 5.43.40.png

 

 

나 역시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이방인이다. 이방인의 관점에서 서울살이, 서울 토박이들의 삶을 간접 체험하는 기회였다. 우리는 '이방인'이라는 단어를 통해 외로움과 같은 감정을 설명하곤 한다. 이방인은 사회적 성원권을 지녔지만 해당 무리에는 속하지 않은 타자이다. 누구나 서울에서 살아가고, 자격은 주어진다. 다만, 그 사회 속에서의 괴리감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정 때문에 이방인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힘이 더 크다고 느낀다.  가족을 떠나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성장이다. 이 글을 읽은 이방인들은 고향에서 묵묵히 우리의 삶을 응원해주는 가족들에게 연락 해보는건 어떨까? 

 

서울 생활사는 해방과 전쟁 이후에 다양하게 변화하였고, 현재 한국만의 고유한 특색을 갖추며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 생활사 박물관에서 자주 언급하던 ‘서울토박이’는 이제 점점 수가 줄어들며 사라지겠지만, 새로운 서울내기와 서울 이방인들의 고유한 특징이 새로 생겨날 것을 기대한다. 

 

 

[안윤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