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잘 그린 일러스트란 - 일리야 밀스타인 : 기억의 캐비닛

글 입력 2023.10.1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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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 밀스타인의 국내 첫 대규모 특별 기획전이 열렸다.

 

전시장에서는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왁자지껄하고 복잡한 풍경의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전시장에는 낯설지만 익숙하고, 어수선하고 복잡하지만 동시에 로맨틱한 풍경이 펼쳐진다. 개인 서재의 모습에서부터 어디선가 마주한 듯한 대도시의 거리와 숲속 풍경까지, 일리야 밀스타인이 그린 그림들은 한 공간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전시는 '기억의 캐비닛'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기억을 헤매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듯한 그림들의 행진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 그림들. '잘 그렸다'는 감탄이 나온다. 섬세한 풍경의 묘사가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무엇이 일리야 밀스타인의 그림을 '잘 그린 일러스트'로 만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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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 밀스타인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 받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협업 작품들도 넘쳐난다.

 

뉴욕 타임스, LG, 구찌 등의 브랜드와 협업한 그림들은 각 브랜드의 특성을 살리는 동시에 밀스타인의 스타일을 잃지 않았다. (LG와의 협업 작품에서는 '한국적'인 요소들을 가미해서 하나하나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밀스타인의 콜라보 작품들은 심지어 전시에서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 있다. 억지스럽거나 '광고구나', '홍보하려고 낸 작품이구나'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잠깐 고민해 보았는데 키 포인트는 바로 균형이라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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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가득, 빼곡하게 사물, 인물, 가구 등을 채워 넣으면서 맥시멀리즘 화풍을 뽐내는 밀스타인의 그림은 자세한 묘사가 특징이다. 이 가운데에 브랜드 특색을 살리는 사물이나 주요 인물, 로고 또는 포인트 컬러 등을 섞어둘 때,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 이유는 그의 균형 감각에 있다.


<분더캄머의 송환>은 오리엔탈적인 수집품들이 가득 있는 방이 펼쳐지는 작품이다. 분더캄머는 16~17세기 유럽에서 유행하였던 공간인데 수집가의 취향이 반영된 수집품들을 모아두던 전시 공간이었다.

 

'호기심의 방'이라 번역할 수 있는 분더캄머는 진귀하고 이색적인 사물들이 가득했을 것이다. 마치 일리야 밀스타인의 그림처럼 말이다. 이렇게 사물이 가득한 방에서 우리는 쉽게 한 곳에 집중하기 어렵다. 즉, 하나의 주인공을 지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균형이 좋다. 한 곳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것은 화면 곳곳에 중요한 요소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고, 밀스타인의 뛰어난 균형 감각이 매력적인 일러스트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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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 전면에 골고루 퍼진 구성 요소들은 그림을 섬세하게 관찰할 것을 요구한다. 사물 하나하나를 뜯어보게 만들고 어떤 이유로 여기에 배치되어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화면 가득 사물을 배치한 일리야 밀스타인의 작품은 이렇게 숨바꼭질하듯이 감상하는 재미를 만들어 낸다.


우리는 왜 그의 일러스트에서 숨바꼭질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작품 속에 스토리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작품에 움직임이나 생동감, 활기 같은 것이 느껴진다는 말과는 다르다. 화면 속 인물들이 금방이라도 생생하게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각자의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는 그림 속 인물들과 연관된 사물들이 배치되기 때문이고 관람객들은 작품을 '읽으며' 감상하게 된다.

 

그래서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기억의 캐비닛'이 완성된다. 작가의 기억과 경험이 뒤엉킨 작품들에서 우리는 각자의 기억을 꺼내본다. 일리야 밀스타인의 그림에 이렇게 스토리가 더해진다.

 

이번 전시는 일리야 밀스타인의 스타일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무엇이 그의 세계를 견고하게 하는지, 어떤 것이 '잘 그린 일러스트'를 만드는지 탐구하기 좋은 작품들이 가득하다.

 

그러니까, 밀스타인 스타일에서 빛나는 맥시멀리즘 속 균형 감각과 스토리에 주목해서 한 작품, 한 작품 면밀히 '관찰'하기를 추천하고 싶다.

 

 

[이홍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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