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림으로 세상을 읽어주는 작가 - 일리야 밀스타인 : 기억의 캐비닛

따뜻하고 다정한 전시
글 입력 2023.10.1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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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다정한 색감과 섬세하고 귀여운 그림체가 매력적이었던 [일리야 밀스타인 : 기억의 캐비닛] Ilya Milstein : Memory Cabinet 전시를 관람하고 왔다.


이번 전시는 뉴욕 타임스, 구글, 페이스북, 구찌, LG 등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하고 뉴욕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일리야 밀스타인의 특별 기획전이다.


일리야 밀스타인은 이탈리아 밀리노에서 태어나 호주 맬버른에서 자랐으며 현재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일러스트레이터이다. 놀라운 디테일과 맥시멀리즘 화풍으로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한국에선 LG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국내 팬들에게 알려진 작가이기도 하다.


전시가 작가 내면의 세계에서 점차 타인과 세상,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세계로 다다르는 여정을 네 개의 ‘캐비닛’으로 은유했다는 점이 신선했다.


 


첫 번째 캐비닛 : 티레니아해 옆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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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캐비닛 <티레니아해 옆 서재>에서는 단독 또는 둘의 인물이 등장하는 밀스타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책으로 빼곡한 서재 한가운데서 지중해의 푸른 티레니아 바다를 응시하는 작가 본인을 그린 <티레니아해 옆 서재> 작품의 제목을 따온 이 섹션은 그의 자아가 두드러지는 작품들과, 가장 가까운 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연인을 묘사한 작품들을 주로 보여준다.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볼 때면 종종 그들이 보고 느낀 공간들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유럽과 미국의 다양한 나라들을 오가며 작가가 느꼈던 어떤 순간의 풍경들, 평화로운 감정들 또한 작품들에 고스란히 느껴진다.


밀스타인은 어렸을 때부터 드로잉을 즐겼지만 그것이 현실적인 직업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건축을 공부했고 조각을 전공하였다. 순수예술을 공부하고 작품 활동을 할 당시 그는 전공 소양을 쌓는 것뿐만 아니라 본인의 내면세계에 집중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이는 그가 일러스트레이터로 전향한 후에도 다양한 영감을 원천으로 한 독특한 화풍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창작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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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주말>과 <늦오후의 휴식>이라는 작품이었다. 느긋하게 방바닥에 드러누워 음악을 감상하고 여유를 만끽하는 모습은 평상시 나의 추구미(?) 그 자체이기도 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느긋하게 보내는 시간만큼 평화로운 건 없다. 그 순간의 여유로움과 따스함, 평화로움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들, 그 사이사이에서 발견되는 LG 로고의 가전제품들을 하나 둘 찾는게 마치 보물찾기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봄의 장면> 시리즈는 의류 브랜드 ‘페인터 재킷’의 커미션을 받아 총 세 점으로 제작되었다. 본 시리즈는 세 작품이 이어져 하나의 서사로 구성되는 것이 특징이다. 맨해튼에서 시작된 두 연인의 여정이 ‘푸른 초원’에서의 전원생활을 지나,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모습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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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다리>는 외국어 학습 애플리케이션 ‘듀오링고’의 커미션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2021년에 새롭게 추가된 ‘이디시어’를 알리는 가사 <듀오링고는 이디시어를 언어 수업에 추가한다>에 실렸다. 작품 한가운데 수직선을 중심으로 왼편에는 슈트레이멜을 쓴 유대인들이 이디시어 간판이 있는 거리에 모여있는 과거의 모습을, 이와 반대로 오른편에는 유대 요리 크니쉬를 판매하는 빵집이 있는 현재 뉴욕 맨해튼의 모습을 병치하고 있다.


손을 맞대고 있는 두 주인공 중 오른쪼의 인물은 휴대전화를 통해 듀오링고를 이용하여 이디시어를 배운 사람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언어가 문화를 전승하고 상호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다리’로서 전혀 다른 장소에 있는 두 사람을 소통과 교류로 연결해 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두 번째 캐비닛 : 리비에라에서의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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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캐비닛 <리비에라에서의 추억들>은 몇몇의 인물들이 함께 등장하는 작품으로 구성되어 가족 및 친구들과 즐거운 때를 함께하는 모습 등 일상적인 장면을 그려낸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타인의 세계, 또는 타인과 공존하는 세계가 그려진 이 작품들에는 상상의 풍경보다는 실제 장소가 주로 등장하며, 앞선 섹션에서 볼 수 있었던 초현실적으로 부유하는 물체들은 이번 섹션에서 보다 현실적으로 놓여있다. 작가의 삶과 작품 모두 내부에서 외부의 세계로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활기찬 거리와 초록초록한 분위기의 풍경들이 눈에 띈다. 그림만으로 이렇게 따뜻하고 정다운 느낌이 든다는 게 무언가 신기했다.


작가의 작업 공간, 스케치 단계의 작업물들도 눈에 띄었다. 일리야 밀스타인 본인의 자발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기획된 이 공간에서 지금껏 공개된 적 없는 작가의 오리지널 드로잉을 서재 풍경의 일부분으로 만나볼 수 있다. 마치 작가가 된 것처럼 서재에 앉아볼 수 있었던 점도 흥미로웠다. 오밀조밀하고 섬세한 스케치 단계의 그림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세 번째 캐비닛 : <1983년의 여름, 소호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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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 트라베이카, 할렘, 이스트 빌리지 등 뉴욕 맨해튼의 주요 구역에 거주했던 실제 인물이 경험한 과거의 기억들을 참고하여 그린 이 시리즈에서는 1980년대의 앤디 워홀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일리야 밀스타인을 세상에 일리는 데 큰 계기가 되었던 더 뉴욕 타임즈와 협업한 시리즈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거리의 풍경을 작가 특유의 예리하고 위트 있는 통찰력으로 표현하였다.


지역 공동체나 활기찬 거리 풍경뿐 아니라, 작가의 상상과 직관으로 창조된 세계와 군중을 기이하게 묘사한 개인 작품들도 공개된다. 밀스타인이 표현하는 군중의 양면성으로 순수와 상업 예술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는 작가의 독특한 세계관도 파악할 수 있다.


<상상 속> 시리즈는 뉴욕에 기반을 둔 면도 상품 제조 회사인 ‘해리스’ 커미션을 받아 총 네 점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밀스타인은 유럽의 4개국 벨기에,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의 도시 거리와 나라마다의 특징을 재치있게 포착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특히 <상상 속 벨기에> 작품에서 만화가 에르제의 캐릭터 땡땡(Tintin)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숨은그림 찾기를 하는 것처럼 반갑고 흥미로웠던 것 같다.


 


네 번째 캐비닛 : <캐비닛 속 분실된 초상화>


 

이 섹션에서는 인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작가의 신작들을 발견해 볼 수 있다. 특정 인물이 그려지지 않음으로써 작품 속 장소는 감상자의 더 많은 상상과 이입을 유도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순수한 풍경을 오롯이 사색하게 한다.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된 작품이 타인과 세상을 지나, 또 다른 세계에까지 확장되어가는 여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의 마침표이기도 하다. 특히 이 섹션에는 자연친화적인 푸릇푸릇한 풍경, 동물, 식물과 거리의 풍경들이 많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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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곰돌이와 캐릭터, 초록색의 평화로운 풀밭의 풍경의 작품 <인류 이후에> 작품이 특히나 기억이 남는다. 귀엽고 아기자기하다는 느낌에 눈길이 갔던 작품인데, <인류 이후에>라는 작품의 제목을 보고 감상이 사뭇 달라진 작품이기도 하다. 어쩐지 먼 미래, 이 지구에 인류가 사라진 이후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누군가에겐 어쩌면 더 평화로운 세상이 될까? 여러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이었다.

 

전체적으로 즐겁고 따뜻한 전시였다. 일러스트 특유의 섬세한 표현력과 디테일은 중간중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앞으로 작가가 담아낼 다채롭고도 따뜻한 세상이 기대된다.

 

 

[박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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