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볼 줄 아는 힘 - 일리야 밀스타인 : 기억의 캐비닛

글 입력 2023.10.07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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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시멀리즘 화풍으로 익히 알려진 월드 와이드 일러스트레이터 ‘일리야 밀스타인’.

 

1990년생으로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작가임에도 나이가 무색하게 그는 다년간 괄목할 만한 커리어를 쌓았다. 뉴욕타임스, 페이스북, 구찌 등 유수 글로벌 브랜드 및 매거진과 콜라보한 이력이 대표적이다.

 

과연 무엇이 세계를 매료시킨 것일까.

 

필자는 미시와 거시를 고루 아우르고 조망하는 힘이 그 요체라 생각한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나 호주 멜버른에서의 성장기를 거쳐 미국 뉴욕에 정착해 활발히 활동 중인 일리야 밀스타인은 다양한 국가와 고장을 오가며 얻은 영감을 화폭에 옮겼는데, 가장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가장 보편적인 향수와 공감을 견인한다는 것이 특기할 만하다.


그러한 예술적 신념에 바탕한 작품들을 총망라해 개최된 첫 대규모 특별 기획전 [일리야 밀스타인 : 기억의 캐비닛 (Ilya Milstein : Memory Cabinet)]은 (타이틀이 함의하듯) 맥시멀한 풍광 속에서 캐비닛에 보관될 법한 작은 소품들을 관람객들이 능동적으로 캐치하고 그에 관한 각자의 캐비닛 속 기억과 접속하도록 매개하는 장이었다.

 

전시는 크게 네 개의 캐비닛, 즉 네 개의 섹션으로 구획되어 있었는데, 과연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볼 줄 아는 아티스트답게 각 섹션은 정체성과 테제를 명확히 피력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유기적인 통일성을 이루고 있었다.

 

 

A LIBRARY BY THE TYRRHENIAN SEA.jpg

 

 

전시의 포문을 열었던 캐비닛 1의 테마는 <티레니아해 옆 서재>였는데, 기획전 전반을 통틀어 작가 본인의 가장 내적이고 사적인 영역을 찬찬히 음미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단독 초상화 혹은 일리야 밀스타인에게 가장 가까운 타인일 연인과 함께한 순간을 추출한 작품들로 갈무리되었는데, 적은 인원으로 인해 자칫 고독해 보일 수 있을 법한 공간을 책이나 수목으로 보충하고 초현실적 상상력을 가미함으로써 여유롭고 운치 있는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A Fresh Start to a Fresh Day.jpg

 

 

두 번째 캐비닛 <리비에라에서의 추억들>에서는 보다 따스한 인상, 동적인 터치의 일러스트들이 눈에 띄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색과 고요, 낭만에 치중한 캐비닛 1과 달리 3인 이상의 가족 혹은 친구들이 현실적인 공간에서 사소한 일상을 즐기는 장면들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찍은 기념사진, 4인 가족이 부엌에 모여 단란하게 식사하는 장면 등 인간적인 유대와 온기가 담뿍 담긴 밑그림에 이탈리아 지중해의 빛이 곁들여지니 작품의 생기는 더욱 충일해졌다.

 

 

Morning in Harlem.jpg

 

 

이어서는 범위를 더 확장해 다수의 군중이 놓인 광장 혹은 번화가를 배경으로 한 역동적인 작품들로 구성된 세 번째 캐비닛 <1983년 여름, 소호의 저녁>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거리의 전경은 작가 본인이 실제 겪었던 맨해튼의 경치를 반영해 묘사한 것인데, 지역의 상징성, 색채를 살리는 동시에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용광로(melting pot)로서의 뉴욕을 입체적이고 예리하게 구현했다.

 

원경에서 관찰한 이미지임에도 각 인물의 외양과 제스처, 복식 같은 것을 묘사함으로써, ‘보는’ 것에서 나아가 ‘읽는’ 그림이 무엇인지를 체감케 했다.

 

 

after man ii.jpg

 

 

마지막 캐비닛 <캐비닛 속 분실된 초상화>는 앞선 섹션들과 달리 인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이 차별점이며, 대신 자연, 동물 등 인간 이외의 개체들을 대상으로 한 정물화, 풍경화가 주를 이뤘다.

 

개인에서 타인으로 시야를 확장한 데 이어 인간 외부의 것들과 조우하는 데까지 닿을 수 있음을 피력한 코너로, 탈인간중심주의적 사고를 지향하는 작가의 신작들을 직접적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

 

나무가 밀집하면 숲이 되고, 숲을 분해하면 나무가 되듯 텔러인 일리야 밀스타인은 맥시멀리즘과 미시적 세계관, 개인의 노스탤지어와 보편적 공감, 이질적인 여러 문화 또한 분리되기보다 섞이고 공존하며 연결될 수 있음을 웅변하고 있다.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볼 줄 아는 것. 한 쪽에 매몰되어 전체 혹은 부분을 경시하기 쉬워진, 시대의 모두가 한 번쯤은 붙들어야 할 질문 아닐까.



[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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