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서우리만치 솔직한 사랑 고백 [음악]

글 입력 2023.10.06 14:57
댓글 1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231006_긱스.jpg

 

 

가끔 그런 날이 찾아온다. 난장을 치고 싶은 날, 괜히 한 번 정체 모를 무언가에 뻗대고 싶은 날. 가을 한번 이상하게 타는 듯하다. 그러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톡 쏘는 노래를 온몸에 들이붓고 하루를 끝내보자. 긱스의 "짝사랑"을 소개한다.


곡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깐 긱스 이야기를 꺼내 보기로 한다.

 

긱스(GIGS)는 보컬 이적을 주축으로 뭉친 6인조 프로젝트 밴드로, 재치 있고 리드미컬한 음악과 겁도 없이 내달리는 듯한 자유분방함이 인상적인 팀이다. 구성원은 이적(보컬), 강호정(키보드), 정원영(키보드), 이상민(드럼), 정재일(베이스), 한상원(기타)로, 1999년 1집, 2000년 2집 'GIGS 02'를 마지막으로 활동을 중단했다.


팀명도 재밌다. "Geeks"가 아닌 "GIGS"다. 찾아보니 '긱(Gig)'은 역동적인 연주라고 한다. 재즈클럽에서 공연에 필요한 연주자를 즉흥으로 섭외하고, 연주하는 모습이 그들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음악과도 잘 어울린다.

 

 

 

 

눈치 빠른 사람은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필자는 '골 때리는' 곡을 선호한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특히 "짝사랑"은 펑키한 멜로디 위에 얹은 무서우리만치 솔직한 가사가 매력적이다.

 

노래에서 청년은 난 정말 멍청하고, 말도 곧잘 못하고 얼굴만 붉히면서 네 주위를 맴돈다고 말한다. 언젠가는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어딘가를 거니는 망상도 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여기까지 놓고 보면 지독한 짝사랑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바로 뒤에 따라붙는 가사가 당혹스럽다.


 

난 너를 원해 냉면보다 더

난 네가 좋아 야구보다 더

 

 

이토록 담백하게 골 때리는 가사라니. 아무래도 이 청년, '돌려 말하기'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쭉 들어보면 '숯검댕처럼' 애타는 마음에도 할 말은 다 한다. 심지어 그 말이 "난 너를 원해", "난 네가 좋아", "넌 너무 예뻐"라는 고백의 반복이다.

 

냉면 말고도 좋아하는 것이 많은지, 야구보다, 들꽃보다 네가 더 좋다며 연신 외치며 단순한 마음을 선명하게 만든다. 좋아하다 못해 심각하게 꽂혀 버린 상대에게 마음을 유려하게 꾸며내기는 어려울 테니까.

 

노래 가사에 '냉면'이 등장한다. 듣자마자 명카드라이브(박명수, 제시카)의 "냉면"을 떠올리고는 이 노래도 당연히 여름철 노래라고 생각했지만, 내 편견이었다. 실제로는 2000년 11월 25일에 나온 노래였다. 짝사랑에 계절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저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까맣게 타오르는 마음은 한겨울도 녹여버릴 독선적이고 수줍은 마음이니 계절을 논할 이유는 없어보인다.

 

이미 짝사랑을 지독하게 하고 있으면서도 "난 너를 어쩜 짝사랑하나봐"라며 자신의 상태를 괜히 한 번 더 말해보는 모습은 또 어떠한가. 마음이 너무 커지다 못해 기어이 '짝'을 떼버렸다는 점도 재밌다. 삶을 촘촘히 메꿨을 짝사랑 사이에 비집고 들어온 사랑이라니.

 

 

난 너를 어쩜 짝사랑하나봐

난 너를 진짜 사랑하나봐

난 너를 어쩜 짝사랑하나봐

난 너를 진짜 사랑하나봐

난 너를

 

 

그래서 '짝사랑'과 '사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청년의 마음을 바라보는 일이 제법 산뜻하다. 필자가 악독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노래가 신명나고 경쾌한 탓이다.

 

역시, 혀가 녹아버릴 것 같은 달콤함보다 선명한 파랑을 닮은 노래에 마음이 간다.

 

 

 

이유빈.jpg

 

 

[이유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1
  •  
  • 봄유아
    • 사랑이란 건 누군가에게는 알기 쉽고, 또 누군가에게는 깨닫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필자님의 노래 가사 해석은 상당히 재밌다고 느껴지네요.
    • 0 0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