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히게단디즘의 사계절 (2) - Official髭男dism [음악]

Official髭男dism이 들려주는 사계절의 이야기
글 입력 2023.09.28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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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람 사이에서 한 줄기 봄바람이 느껴지던 3월, 필자는 여러분에게 Official髭男dism이라는 밴드의 노래를 소개한 적이 있다. 따뜻한 봄을 앞두고 있던 그때, Official髭男dism (이하 히게단) 의 노래 중에서 봄과 여름에 어울리는 곡을 각각 3곡씩 골라 소개했었다. 해당 글의 링크를 첨부하니, 읽지 않은 사람은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Opinion] 히계단디즘의 사계절 (1) - Official髭男dism 

 

필자는 그때 소개했던 노래들과 함께 다양한 감정이 공존했던 봄과 여름을 무사히 보내고서, 지금은 가을의 초입에 서 있다. 아직은 여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축축한 비에 어쩐지 가라앉아 버리지만, 우리는 지금 분명히 가을과 마주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가을과 겨울에 잘 어울리는 노래를 세 곡씩 소개하고자 한다. 봄과 여름에 소개했던 것처럼 히게단은 흘륭한 밴드 사운드와 서정적인 가사가 특징인 밴드이다. 이번에 소개할 노래 역시 마음을 울리는 가사와 함께 풍성한 멜로디가 큰 감동을 준다. 지난번처럼 이번에도 영상을 함께 첨부했으니, 꼭 한 번씩 들어보길 바란다. 

 

 

 

히게단의 가을


 

Chessboard

 


 

이쪽에서는 당신의 발밑에서, 발자국에서 반복되는

망설임도 후회도 여행도 모두 아름다운 초록색으로 보여.

당신이 살았던 증거는 시간과 함께 자라는 걸 거야.

 


필자는 체스를 둘 줄 모르지만, 체스보드의 체크무늬는 잘 알고 있다. ‘Chessboard’는 우리의 인생을 바로 그 체스보드에 빗댄 노래이다. 체스의 룰에 따라서만 말을 움직일 수 있듯이, 우리 역시 삶을 살아가며 스스로의 길을 정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수없이 넘어지고 좌절하며, 초라한 스스로와는 달리 성큼성큼 나아가는 나이트와 퀸 같은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Chessboard’는 그 과정 역시 언젠가 바라보았을 땐 하나의 풍경으로 남는다고 말하고 있다. 쓸데없다고 생각했던 추억도, 지워버리고만 싶은 과거도 전부 시간과 함께 자라나 내가 살아온 증거가 된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잊기에도 쉽다. 눈앞의 좌절과 실패가 버거울 때, 분명 큰 위로가 될 가사들이다. 


‘Chessboard’는 상당히 잔잔하게 시작된다. 후지하라 사토시의 나긋한 목소리와 잔잔한 피아노 소리가 반복되며 따뜻하게 노래의 시작을 열고, 점점 일렉 기타와 드럼, 베이스 등 다양한 악기가 더해지면서 노래를 풍성하게 채운다. 잔잔하게 진행되던 멜로디는 노래의 중반부에 이르러 점차 고조되기 시작한다. 강하게 들려오는 일렉 기타의 선율과 묵직하게 깔리는 드럼이 멜로디를 증폭시킬 때 등장하는 합창은 노래의 감성을 한층 더 짙게 만들어 주면서 먹먹한 감성을 전달한다. 


조금은 따뜻한 볕이 드는 가을을 ‘Chessboard’로 열어보는 건 어떨까. 

 

 

일상 (日常)

 


 

해결책이 몇 개든 있다는 걸 알고 있어도 내딛지 못해.

향상성이라는 단어에 쉽게 좌절하는 마음이라면 힘들다고 한탄하는 것도 민폐인 것 같아. 

뭐든지 털어놓으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말을 할 수가 없어. 

너에게는 아직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서투른 마음 하나로 오늘도 일상을 살아가.



왠지 모르게 가을이 되면 유독 센치해지는 것만 같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 저녁이면 고단했던 하루에 대한 공허함과 허탈함이 한 번에 몰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럴 때 문득, 가을 탄다는 말이 떠오르는 건 절대 기분 탓이 아닐 테다. 


‘일상’은 하루 끝에서 몰려오는 상념을 담은 노래이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하루의 고단함, 그리고 더 이상 특별함을 찾을 수 없게 된 반복되는 일상. 그 어떤 것으로도 다시 웃을 수 없어서 결국 체념하고야 마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 ‘일상’은 쓸쓸한 감정을 노래하며 결국엔 그것 또한 일상이라는 말로 덤덤한 위로를 건넨다. 


잔잔하면서도 어딘가 경쾌한 멜로디는 시원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닮았다. 가사를 곱씹어야만 느껴지는 은은한 씁쓸함은 가을 저녁의 산책과 잘 어울린다. 때로는 노래 한 소절이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고민과 답답함을 위로해 줄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이 온다면, 분명 시원한 가을 저녁의 산책과 ‘일상’이 당신을 위로해 줄 것이다. 

 

 

* 커피와 시럽 (コーヒーとシロップ)

 


 

싫은 것들을 전부 다 마셔버리고, 

 순간을 그저 내버려 두고 컵의 바닥을 바라봐.

한심스러운 시럽을 떨어뜨려서 

어쨌거나 전부 다 마셔버리고, 언젠가는 전부 뱉어내고 

그렇게 웃고 노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꽤나 시원해져 차갑게까지 느껴지는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밤이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생각이 많아진다. 당장 눈을 뜨면 해야 하는 출근. 사회생활이라는 이름 아래 억지로 웃어야 하는 고통의 시간. 그 밖에도 각자 감내해야 하는 현실의 무게가 분명히 있을 테니까. 


‘지금 보고 싶어. 힘든 일이 있었으니까.’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커피와 시럽’은 이러한 현실의 무게를 여실히 담고 있다.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과 견딜 수 없는 부담을 커피잔에 담아 전부 마셔버리고 싶다는 가사는 씁쓸하게 가라앉은 내 모습을 대신 말해주는 것만 같다. 


가사에 등장하는 씁쓸한 커피를 억지로 달게 만들어 주는 한심스러운 시럽은 사실 우리의 눈물이다. 사회를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고역을 눈물로 이겨내는 현실을 담은 가사는 잔잔한 피아노 선율과 함께 담담하지만 무겁게 다가온다. 너무 힘든 하루를 보낸 날이 있다면, 자기 전에 이 노래를 들어보라. 분명 무심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히게단의 겨울



 White Noise

 


 

잔해 아래에 파묻힌 겁쟁이의 목소리는

아무리 귀 기울여도 들리지 않아.

쉬지 않고 달리는 도로에는 더 이상 가로등조차 없지만

분명 헤드라이트 하나만 있다면 아무것도 필요 없어.

 


겨울엔 옷이 두꺼워지기 마련이다. 몸을 감싼 옷이 두꺼워지면 왠지 발걸음도 무거워지는 것만 같고, 괜히 마음도 같이 무거워진다. 그럴 때 ‘White Noise’를 들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달려가야만 할 것 같은 벅차오름이 느껴진다. 


‘White Noise’의 도입부부터 거칠게 연주되는 메인 멜로디는 거리에 울려 퍼지는 오토바이의 배기음을 연상시키는데, 강하게 울리는 드럼 소리가 그와 어우러지면서 경쾌하면서도 힘찬 멜로디를 만들어 낸다. 그 밑으로 은은하게 깔리는 베이스가 든든하게 느껴지면서,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힘을 준다. 


가사 역시 스스로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나아가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더더욱 발걸음에 힘을 실어 준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노래를 정말 많이 좋아하는데, 특히 눈이 내리는 겨울 아침, 하얀 입김을 바라보며 이 노래를 들으면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왠지 모르게 무거워지는 겨울 아침에 출근 곡으로 ‘White Noise’를 들어보면 보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Subtitle

 


 

말은 마치 눈의 결정과 같아서 너에게 선물하고 싶어도

열중할수록 모습은 무너져 내리고 녹아서 사라져 버려.

하지만 내가 고른 말이, 거기에 담긴 마음이 

너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걸 포기할 수 없어.

‘사랑해’ 보다 사랑이 닿을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 줘.

 


‘Subtitle’은 듣기만 해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도입부의 피아노의 소리가 매력적인 곡이다. 더불어, 과하지 않으면서 중심을 잡아주는 드럼 소리가 곡의 무게를 더해주면서 겨울과 잘 어울리는 감성을 자아낸다. 단단한 연주와 부드러운 가사는 따뜻한 외투에 파묻혀 입 밖으로 따뜻한 숨을 내뱉는 겨울과 참 잘 어울린다. 


일본의 드라마 ‘Silent’의 OST이기도 한 이 곡은, 히게단 특유의 서정적인 가사가 더욱 잘 드러난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주인공에게 자막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서로 의지가 되어 주고 싶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있으면, 말은 마치 눈의 결정과 같아서 열중할수록 녹아버린다는 가사가 심금을 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하고 싶은 한마디 말을 찾아낼 테니 말보다 감정이 가닿는 것을 기다려달라는 가사를 듣고 있으면, 낭만과는 거리가 먼 필자에겐 정말 드물게도 사랑이라는 게 참 아름다운 것 같다는 추상적인 낭만에 빠지게 된다. 


그렇지만, 많은 연인들이 사랑을 약속하는 계절이 겨울이라는 걸 떠올려 보면, 가끔은 실태가 없는 이상론에 젖어보는 것 역시 겨울만의 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Shower

 

 

 

샤워 후 욕조 안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처럼

우리는 언제고 서로의 얼굴을 붉게 물들일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시간이 지나면 뭐든지 변하게 된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으니까. 변화란 시간의 흐름이 가져오는 부산물 같은 것이기에, 모든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 형태가 변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관계라고 해서 그걸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랑 속에서의 변화는 대부분 부정적인 것으로 해석되며, 대다수가 이별의 요인이 되곤 한다. 


그런데 ‘Shower’는 이 변화에 대한 조금은 다른 견해를 담고 있다. ‘Shower’의 가사는 야속하게 흘러간 시간이 주변을 에워싼 환경마저 바꿔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전의 설렘은 남아 있음을 믿는다고 말한다. 가사를 곱씹다 보면 내용이 정말 허무맹랑한 이상일 뿐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오랜 시간 함께 한 사랑이라면, 그 변화마저 하나의 일부로 받아들여서 결국엔 그 자체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시간이 지나면 뭐든지 변하게 되지만, 그 순간에 느꼈던 감정은 변하지 않는다. 색은 바랠지언정 그 순간의 정체성까지 달라지진 않는다는 말이다. 이걸 이해한다면, 마지막 가사인 ‘변하지 않은 채 변한 모습으로 살아가자’는 말이 조금은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Shower’는 피아노와 기타의 선율이 도드라지는 곡이다. 물방울처럼 동글동글한 피아노 소리와 현의 소리가 그대로 느껴지는 기타의 소리는 약간 몽롱한 느낌을 준다. 몽글몽글하면서 포근한 멜로디가 성숙한 사랑 이야기를 부드럽게 감싸준다. 후반부에서 고조되는 멜로디는 조금은 긴 노래의 서사를 완성해주는 역할을 하면서 겨울과 잘 어울리는 달콤쌉싸름한 맛을 내준다. 


*


이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어울리는 노래를 전부 소개했다. 


총 12곡의 노래를 소개했지만, 글의 분량상 소개할 수 없었던 곡도 많다. 그만큼 Official髭男dism은 좋은 곡이 많은 밴드이니, 기회가 된다면 다른 곡도 들어보길 바란다. 앞서 말했듯이 때로는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보다 이름 모를 노래 한 소절이 더 큰 위로나 격려가 될 때가 있다. 다가오는 가을과 겨울에는 색다른 노래 한 곡 정도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좋아하는 노래를 자세하게 소개하는 일은 필자 스스로에게 있어 상당히 신선하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모든 가사를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드는 가사 일부만을 고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고, 수 없이 들어서 외울 수 있는 멜로디가 좋은 이유를 설명하는 것도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을 거치면서 필자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를 점차 또렷하게 성립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자 수백번 들었을 그 노래가 다시 신선해지면서 더욱 특별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히게단디즘과 함께 한 사계절이 여러분들에게도 좋은 추억이 되었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황시연_컬쳐리스트.jpg

 

 

[황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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