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서울인디애니페스트 2023: 아시아의 내일을 말하다

글 입력 2023.09.26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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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9월의 주말, 연남동으로 향했다. 일상 틈틈이 문화생활을 즐겼으나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코로나 이후 영화관을 자주 찾지 못하게 되자 노트북과 핸드폰 액정, 작은 화면을 통해 영화를 보는 게 익숙해진 것이다. 그 후론 일명 자본 냄새가 솔솔 나는, 과감한 액션과 화려한 구성이 돋보이는 영화가 개봉할 때에야 영화관을 찾게 되었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집이나 이동하는 중간중간 편하게 볼 수 있지 뭐, 하고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한때는 하굣길에, 일정이 없는 주말에 종종 찾던 영화관이 이토록 멀어졌다는 데에 어쩐지 서운함과 쓸쓸함이 느껴졌다. 다시금 큰 화면과 음향을 통해서,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영화의 공간에서 보는 고유한 경험이 그리워졌다. 거대한 블록버스터가 아니더라도 작은 음성과 섬세한 플롯을 보는 맛이 떠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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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즐거움을 되찾기 위해 새로움이 필요했다. 그간 많이 보지 않았던 것, 그러나 시간을 내어 충분히 감상할 만한 것을 찾아 나섰다. 그건 바로 ‘서울인디애니페스트 2023’이었다.

 

서울인디애니페스트는 세계에서 유일한 아시아 애니메이션 영화제이다. 애니메이션 하면 디즈니 같은 대형 제작사만 떠오르는 나에게 인디와 애니메이션의 조합은 미지의 세계였다. 특히 영미권이 아닌 아시아 지역의 애니메이션은 그야말로 새로운 분야였다. 궁금한 마음으로 영화제를 기다렸다.


 

 

아시아의 내일을 말하는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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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인디애니페스트는 동시대 작품, 감독, 이야기를 말한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오래된 고전, 인생에 한 번쯤은 봐야 한다고 손꼽히는 명작도 좋지만 지금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현재의 이야기에 언제나 끌리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는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젊은 작가들의 영화 상영부터 창작자 간, 그리고 관객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교류하는 세미나, 워크숍, GV 등 풍성한 프로그램을 만나볼 수 있었다.


영화제를 찾은 관객으로서 다양한 아시아 국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로웠다. 한국을 비롯한 가까운 중국, 일본은 물론 낯설게 느껴지는 이란,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의 국가에서 찾아온 영화도 만나볼 수 있었다.


이처럼 다양한 나라의 작품이 궁금했기에 ‘아시아로(ASIA ROAD)’를 관람하기로 했다. 아시아로는 서울인디애니페스트만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아시아 지역에서 주목할 만한 애니메이션 작품을 소개하는 경쟁 부문이다. 영화제의 특색이 두드러지는 만큼 가장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는 섹션이기도 했다. 창작자들에게도 작품을 소개하는 좋은 기회이기에 이번에도 700편이 넘는 작품이 출품되었고, 그중 30여 편이 선정되어 관객들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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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순서대로 관람할 수 있었다. 기대한 만큼 다양한 새로움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창의적인 소재, 독특한 이야기 전개와 화면 구성이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특히 이란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예가네 모그하담 감독의 작품 “유니폼(Our Uniform)”이 마음에 와닿았다.


이야기의 소재와 전개 방식이 맞닿아 있는 점이 인상 깊었다. 사회의 규율로 인해 여성이라면 차도르로 신체가 보이지 않게 가려야 하는 상황, 그 속에서 느낀 답답함과 성인이 되어 타국에서 마음대로 원하는 옷을 입으며 느낀 자유가 느껴졌다. 옷이라는 주제를 담기 위해 교복의 천과 주름을 화면 배경으로 사용해 이야기가 펼쳐진다. 단추와 주머니, 실과 천을 넘나들며 인물이 말을 하고 움직이는 모습에 쾌감까지 느껴졌다.

 

 


순수와 열정이 깃든 나이, 열아홉


 

올해로 19회를 맞은 서울인디애니페스트. 올해의 슬로건은 ‘열아홉’이었다. 열아홉은 회차를 의미하는 숫자이자 나이를 떠올리게 한다. 열아홉이란 어떤 나이일까?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기 직전, 청소년과 성인의 사이, 무언가 불완전하나 그 자체로 완전한 나이, 열아홉.


 

세상 어떤 단어 보다 황홀한

떠올리기만 해도 요동치는 네 이름을 부르던 순간을,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바라보며 나란한 보폭으로 걷던 순간을,

급하게 두드리면 놀라 달아날까 심박을 감추던 순간을,

언제 떠올려도 마치 어제처럼 생생한

열아홉의 순간을 기억하나요?

 

새롭게 마주할 스무살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

그 이상의 감정이 다채롭게 뒤섞여 유난히 설레입니다.

 

모든 순간이 처음이었던 첫사랑 같았던 열아홉 해를 지나오는 동안

여러분이라는 첫사랑을 만난 순간이 가장 빛났습니다.

 

여러분들은 인디애니페스트의 어떤 순간이 떠오르나요?

 

한걸음, 두걸음, 어느덧 열아홉 걸음.

열아홉, 서울인디애니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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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부문인 ‘미리내로’ 프로그램을 통해 관람한 한지원 감독의 “그 여름”은 슬로건인 열아홉에 꼭 맞는 작품이었다.

 

학창 시절 우정을 넘어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된 두 소녀, 산과 들이 푸른 곳에서 함께 열아홉을 지내고 서울로 올라와 새로운 삶을 맞이하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다른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빠르게 삶의 형태가 달라지면서 둘은 위기를 맞이한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우정과 사랑, 아련한 기억에 대해 떠올리게 하는 순수한 작품이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빛나는 오늘을, 나아가 아시아 예술의 내일을 보여준 서울인디애니페스트였다. 다양한 동시대 작품을 만나고 새로운 취향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임에 틀림없었다.

 

열아홉의 흔들리는 청소년기를 지나 더 단단하고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영화제가 되기를 응원하고, 또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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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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