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동물원이라는 개념을 사다 [전시]

'동물 없는 동물원'을 가다
글 입력 2023.09.2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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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관람하는 장소는 동물원, 여기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평소에 보던 얼룩말이나 코끼리 등의 동물을 손쉽게 볼 수 있는 장소이다. 누구나 사파리의 초원을 가지 않고도 다양한 동물을 볼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물원은 오로지 인간만을 위한 시설이다. 어쩌면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에서 동물을 바라보고자 고향에서 떨어뜨렸고, 좁은 공간에서 살도록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수많은 눈동자들이 지나가는 꼴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

 

이런 상황은 인간에게 강요한다면 학대니 인권침해니 하는 소리나 듣겠지만, 동물원은 그런 의혹은 벗어날 수 있다. 그 무엇보다 인간에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사업적 측면에서 돈을 잘 버는 건 물론이거니와 수많은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선사한다는 아름다운 비전은 우려의 목소리를 잠재우는데 효과적이다.

 

 

 

동물을 보러간 것이 맞는가


 

<동물없는 동물원>은 왠 홍철없는 홍철팀이냔 말이다. 동물원에는 동물이 있어야 하겠지만, 사실상 우리가 동물원이라는 개념이 문제가 있다는 건 항상 외면해왔다. 동물원은 모두가 태어날 때부터 있어왔고, 주변에서 동물원에 가지말아야 한다며 더 좋은 방안을 실천하는 이들은 극소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 '동물원'에서 '동물'을 뺀다면 어떻게 되는가?

 

실제 동물원과 차이가 있다면, 여기는 '동물원'보다 작품 전시에 가깝다. 동물원을 대체할 장소라면 박물관과 같이 정보를 직접 전달받을 수 있는 곳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동물원으로 가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봐야 한다. 동물 우리 앞에 걸려있는 작은 팻말의 글씨를 읽으러 가는게 아니다. 동물의 심장이 실제 뛰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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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심리에 대해 검증하는 차원에서 이번 전시는 상당히 의미있다. 어떤 동물을 보고 싶다는 감정이 있다면 그 동물만을 보고 욕구가 해소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시를 보다보면 동물원에 와있다는 감각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욕구가 해소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다. 말그래도 '무언가를 보고 싶다는 욕망'을 해소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꼭 동물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적어도 동물을 보는 것 만큼 색다른 감각을 주는 경험이라면 꼭 동물원이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된다. 이번 전시는 '동물'이 테마이니 다양한 동물을 예술가의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예술가는 동물의 피부 그 너머를 바라보아야 한다. 단순히 동물의 외형을 따라그리는 작품은 어떤 의미도 담지 못한다. 그럴바에 당연히 동물원을 가는게 나을 것이다. 그 이상의 경험을 담은 장소에서 동물원을 대체할 희망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이 고찰한 동물


 

인간을 제외한 동물들은 모두 동물원에 갇혀 지낼 수 있다. 이 말을 확장한다면 인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동물이 없다는 것이다. 그 어떤 종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인간은 다른 동물에 대한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해왔다. 이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해소하는 과정을 이번 전시에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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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점은 각자가 주목하는 동물의 처지를 여러 동물들의 형태로 녹아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동물들의 눈과 행위에 집중하기도 하고, 그들의 형태에 집중하기도 한다. 혹은 인간 근처에서 살아가는 친근한 위치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기도 한다. 각자만의 시각으로 펼쳐지는 전시는 동물원이라는 것을 잊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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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전시를 다 보고나니 동물원에 있다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동물원에서 동물을 보는 것과 다른 감정으로 동물을 보고온 것이다. 동물을 꼭 우리 안에서 봐야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동물에 대해 알아가고, 동무렝 대해 그 외부를 생각해보고, 동물을 자세히 보는 작가의 눈으로 바라보는 작품은 실제 동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구가 되어주었다.

 

지금 존재하는 동물원이 모두 학대나 가혹한 환경에서 키우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 보호가 필요한 종이나 인간이 조성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동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물원이 구축해줄 수 있는 환경의 한계는 명확하다. 고향을 대신할 수 없기에, 그리고 이를 위한 최선의 노력조차 하지 않는 곳도 많기에 동물원에 대한 다른 의견을 가슴 속에 품고 있을만하다 생각한다.

 

여전히 귀여운 동물이 보고 싶다면 동물원을 찾아가도 좋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동물들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우리 밖의 모든 요소들을 통해 동물의 안녕을 바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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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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