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부장제의 모순을 해부하다 [영화]

글 입력 2023.09.22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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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명절 하면 떠오르는 장면 같은 것이 있다. 나와 여동생을 비롯해 큰아버지 슬하에 사촌 언니 둘, 고모들까지 뭉쳐 북적해진 딸부자 집 거실의 풍경. 아직까지 또렷이 기억하는 걸 보면 어린 눈에도 그게 생경하게 다가오긴 했나 보다.

 

친가 쪽에 유달리 딸이 많은 이유는 조부모님이나 부모님께서 유독 자녀, 그중 딸 욕심이 많은 편이라서가 아니다. 씁쓸하지만 도리어 그 반대다. 아들을 원했지만 딸이 태어나는 상황이 거듭 반복되면서 (과장을 보태면) 시행착오의 결과물로 딸이 하나 둘 많아지게 된 것이다.

 

나는 할머니와 엄마의 기대를 배반하고 세상에 나왔다. 이어서는 3년 터울의 여동생이 태어났다. 체념을 한 것인지, 어찌 됐건 귀중한 생명이니 환대하기로 한 것인지 아니면 너무 어릴 적이라 내 기억이 미화된 것인지 알 길이 없으나 조부모님은 늘 우리 자매를 살뜰히 챙겨주셨다. 그럼에도 찝찝한 감흥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만약 나 혹은 동생이 아들이었다면 좀 더 달랐을까, 달랐다면 얼마나..?

 

혹자들은 가부장제의 대가 거의 끊겼다고 말한다. 전반적으로 보면 그런 듯하고, 시대가 달라졌다는 것이 확연히 체감되는 사례도 종종 보인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아직 그 영향이 미미한 듯하다. 앞서 언급한 경험담처럼 실질적인 일상 곳곳에는 그러한 부계 사회의 폭력적 관습들이 잔재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부장제의 모순을 노골적으로 들추는 <이씨 가문의 형제들>의 목소리는 이런 점에서 시의적이다.

 

 

이씨 가문의 형제들.jpeg

 

 

상복을 입은 한 여성 ‘영서’가 아마도 전 남편인 듯 보이는 남성과 담담히 근황을 주고받는다. 나누는 대화로 보아 여자의 할아버지가 최근 돌아가셨고, 같이 장례식에 참여한 듯하다. 둘은 재산 분할을 앞둔 상황이지만 영서 측 가족들에게 이혼 사실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부부 행세 중이다. 남성이 앞으로의 거처를 묻자, 영서는 장녀인 자신의 엄마 ‘숙현’이 상속받을 할아버지의 시골집을 거론한다. 그러나 영서와 중년의 딸들의 예상과 달리 집은 유언에 의해 장손인 조카에게 넘어간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문의 추억과 애정이 깃든 보금자리에서 당장 내쫓길 위기에 처한 딸들은 분통할 뿐이다. 반면, 그보다는 부동산 가치가 더 중요한 어린 조카는 망설임 없이 집을 바로 외지인에게 팔아넘겨 버린다. 심지어 유골마저 상속받은 그는 집 앞 마당에 유골을 뿌려달라는 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르려 하지만, 소중한 집을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남의 것이 된 공간에 뼛가루를 뿌리려 하는 상황에 딸들은 기가 찬다. 이때 이를 묵묵히 관망하던  영서는 혼잡한 심정에 못 이겨 유골함을 할아버지가 가장 아끼던 화분에 부어버리며, 자신의 이혼을 고백한다.

 

사람들의 비명과 뒤엉킴으로 상황은 난장이 되지만, 종반에는 꽤나 시간이 흐른 뒤, 현실을 체념한 숙현과 동생들 그리고 영서가 집을 옮겨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조촐한 제사를 지내고, 유골이 담긴 화분을 고이 간직하며 고인을 기리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한국 사회의 부계 중심적 문화가 여과 없이 반영된 작품이다. 한평생을 동고동락해온 딸들 대신 그다지 유대가 깊지 않은 손주가 죽은 아들을 대신할 유일한 남성이라는 이유로 재산을 물려주는 상황은 스크린 밖 현실에서도 자주 보아온 것이다. 그러나 변화하는 시대상에 따라 영화는 그러한 관습이 점차 무용해질 수밖에 없음을 설파한다. 제 집이 그리 속히 처분될지 그리고 제 뼛가루가 남의 집 앞마당에 뿌려질지 이제는 망인이 된 그는 차마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집을 사수하지 못한 채 고향을 떠나야 했던 이들, 숙현과 자매들 그리고 영서는 그럼에도 굳게 망자에 대한 예를 갖추고, 다른 방식으로 가치를 계승하고자 애쓴다. 적장자 중심의 종법에서 탈피해 제사상 앞에 도란도란 모여 선 딸들이 절과 술을 올리는 시퀀스는 유독 의미심장하다.

 

여성 인권이 신장된 현시점에서 다시 가부장제를 붙들고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영화의 고집이 의아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주지할 것은 앞서도 누차 언급했듯 그럼에도 남성 편향적인 질서와 구조는 아직까지 우리 삶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서 더더욱.

 

이는 비단 국내에서만 관찰되는 경향은 아니다. 제사, 상속, 부계 사회 등 한국적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이 칸의 부름을 받았다는 것은 이 영화가 비단 한 민족 안의 특수한 부분만을 건드리는 것은 아님을 시사한다. 외국 역시 다른 형태의 가부장제 혹은 남성 우월주의적 인식이 존재한다는 반증인 것이다.

 

 

[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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