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각나는 말들, 배제되는 사람

우리는 제대로 소통하고 있을까
글 입력 2023.09.0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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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로운 소통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서로를 가장 이해하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기도 하다.

 

걸어서 3시간이 걸리는 지역의 친구는 차로 1시간이면 만날 수 있게 되었고, 인터넷의 등장으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도 실시간으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이야기를 나누는 대상의 폭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어졌다.

 

한 동네에서 쭉 살던 이들에게 소통의 대상이란 가족, 동네 친구, 직장 동료가 거의 전부였지만 이제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SNS 지인, 동호회에서 만난 다양한 무리, 지구 반대편의 외국인과 쉽게 소통하고 있다. 심지어 사람이 아니라 브랜드, 카페, 온라인 서비스 자체와도 이야기와 감정을 나누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렇듯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쉽게 얘기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이 ‘잘’ 얘기하는 것으로 이어졌느냐는 다른 문제다.

 

친구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다 같이 깔깔 웃고 있지만 한두 명쯤은 이해하지 못해 벙찐 순간이 있다. 최근에 한 SNS에서 유명해진 밈을 사용한 대화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어정쩡하게 웃음으로 지나친 그런 경험은 그때 한 번만이 아니었고, 나만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헐’,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가 유행하던 시절과 다르다. 이제는 트렌드가 두 배, 아니 세 배는 빠르게 바뀐다.

 

“저번 주부터 쇼츠에 뜨던 그 영상에 나온” /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RT(리트윗) 많이 돌았던 밈” 각자 자신이 애용하는 커뮤니티, SNS에서 습득한 말은 그대로 그들의 생각을 표현하는 창구가 된다.

 

*

 

디저트가 맛있어 날마다 문전성시인 카페가 있다. 한 시간씩 줄을 서서 들어갈 정도로 시간과 노력을 들인 카페의 입구에서 마주한 건 전부 영어였다. onion bagel, tomato basil sandwich, grapefruit juice, hand brewing…

 

명소로 알려진 카페의 주 손님들은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공부한 세대이기 때문에 전혀 못 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장년, 그리고 영어에 익숙지 않은 그 외 모든 사람은 어떻게 할까. 모든 메뉴를 더 쉽고 편하게 인지할 수 있는 한글 표기를 할 수 있지만 메뉴판은 멋들어진 영어 감성체로 빼곡하다. 카페의 ‘콘셉트’에 맞는 고객만이 소통할 수 있다.

 

복합 쇼핑몰은 가족 단위로 놀러 가기 참 적절한 장소다. 쇼핑, 문화, 휴식, 취식을 한 장소에서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용한다. 매장 규모가 워낙 크고 복잡하다 보니 층별 안내도를 살펴보는데, 뭔가 이상하다.

 

GF? MF? PH?

 

B1이 지하 1층이라는 사실은 이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익숙하게 알 수 있겠지만, 난생처음 보는 층 표시는 부모님과 나를 당황케 했다. 어딜 찾아봐도 약자의 뜻풀이가 안 나와 있어 인터넷에 검색해 유추하긴 했지만, 여전히 확신은 없다.

 

이 쇼핑몰은 세 가지 분류로 매장을 소개하는데, 그 분류는 FINE VILEE, PLAY VILEE, GLASS VILLE다. 나는 이 글을 쓰며 해당 쇼핑몰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음에도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이곳의 소통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

 

최근 한 뷰티 브랜드의 대할인 기간이었다. 세일하는 가격을 보다가, 문득 지난번 세일 때는 내가 같은 제품을 얼마 주고 샀는지 궁금해졌다. 해당 브랜드는 회원이 구매한 경우 종이 영수증을 주지 않고 ‘스마트 영수증’을 확인하라고 한다. 브랜드 애플리케이션 내에서 볼 수 있는 전자 영수증을 말한다. 지난 구매 기록을 찾으러 들어갔는데, 아뿔싸 여기서도 외계어를 마주쳤다.

 

M-2, M-1, M

 

난 그냥 지난 영수증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인데 이해할 수 없는 문구의 버튼을 마주치고 버벅거렸다.

 

그러자 옆에서 나를 보고 있던 친구가 말했다. “아, 이거 두 달 전, 한 달 전, 이번 달 아냐? 보통 작업 관리 보고서 같은 데서나 쓰는 표현인데.” 이 표시를 이해한 친구는 엔지니어다.

 

얘기를 듣고 보니 M은 month -2는 두 달 전이라는 걸 이해는 했지만, 머리가 띵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강 뷰티 브랜드의 앱은 월간 활성 이용자 수가 약 400만 명이다. 해당 브랜드가 만나고 싶은 400만 명의 고객 중 몇 명에게 그들의 소통법이 통했을까.

 

*

 

친한 친구들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말. 우리 커뮤니티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말. 영어를 아는 사람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말. 전문직 사람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말.

 

공통점을 갖게 된 사람끼리는 그들의 말이 생긴다. 우리는 그 말을 사용함으로써 소속감과 정체성이 단단해지고 자신의 존재감과 유희를 강화한다.

 

다양한 매체와 기업, 사회적 집단이 생기며 우리는 수도 없이 집단을 구분 짓고, 구분 당한다. 그에 따라 우리의 말도 끊임없이 조각나고 있다.

 

조각난 말은 누군가를 배제한다. 영어를 잘 아는 나는 영문 감성 글귀로 온 가게를 도배해 영어를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배제하고, 유튜브 쇼츠에 빠져 사는 나는 독서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최신 유튜브 드립을 마구 뱉으며 그가 웃을 기회를 배제한다.

 

그러다 보면, 나도 결국 누군가에게 배제당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우리는 서로가 쓰는 말로만 서로에게 말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보는 창, 자신이 쓰는 말을 세상 사람 모두가 알아볼 것이라는 생각. 그 생각에서 벗어나 눈앞에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을 생각하고 골라 꺼내는 것. 당연하지만 많은 이들이 잊고 있는 사실인 것 같다. 그 피해와 결과가 당장 우리에게 크게 체감되지는 않기 때문인 듯하다.

 

떨어지는 문해력, 도둑맞은 집중력. 계속해서 사람들이 세상을 보고 읽고 이해하는 능력에 관한 문제가 주목받고 있는 요즘. 그에 더해 우리는 얼마나 진실로 소통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


 

국어 사전

소통(疏通)

1.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2.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

 

     

     

    이채원_컬쳐리스트 명함.jpg

     

     

    [이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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