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자연에서 태어난 것 같은 아름다움 - 미구엘 슈발리에, 디지털 뷰티 시즌2

밀고 당기고 쫓아가고 달아나며 느끼는 예술
글 입력 2023.08.3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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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작품과 감상자의 커뮤니케이션은 언제나 존재한다. 전자 미디어를 활용한 미디어아트에서 관객과 주고받는 인터랙티브는 단순히 유영하는 이미지를 바라보던 방식인 미디어아트에 새 지평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작품에서 관객으로의 일방향에서 한 걸음 더. 전자 매체의 양방향성은 청각, 촉각을 일깨우는 것을 넘어 소통을 가능하게 하며 예술에서 관람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종로 아라아트센터에서 전시 중인 미구엘 슈발리에의 <디지털 뷰티> 시즌 2는 서울에서 처음 열리는 그의 개인전으로 생물과 같은 유기적인 움직임을 가진 인터랙티브 아트를 선보이고 있다. 5층 규모의 건축 공간을 십분 활용해 그 규모의 걸맞은 전시로, 마치 공간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처럼 전시장 자체가 하나의 생명력을 가진 존재로 느껴졌다.

 

마침 이른 아침의 첫 입장객이었던 차에 작품과 나, 단둘이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집중할 수 있었다.

 

특히 지하의 세 층을 차지하며 길에 이어진 설치작품인 <디지털 무아레>는 멀리서 보아도 가까이 있는 것처럼 시선을 빼앗아  층을 따라 내려가는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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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에 <디지털 무아레>

 

 

<디지털 무아레>는 두 패턴 사이의 공간 간섭 현상이 무아레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수백 개의 오픈 워크와 층층이 겹쳐진 기하학적인 프레임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라고 한다. 설명은 어렵지만 브라운관 텔레비전이 집에 있던 시절에 보았던 화면의 자국을 떠올려보니 머리보다 감각으로 다가왔다.

 

그 밑에 <매직 카페트>는 바닥 전체를 감싸는 빛으로 이루어진 대형 인터랙티브 사물이었다. 수천 개의 패턴들의 발걸음마다 흩어지고 매초 변화를 거듭한다. 규칙 없이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복잡한 계산 아래 만들어진 혼돈으로 묘한 안정감을 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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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매직 카페트>

 

 

무아레와 진동하는 바닥. 두 차원이 만나는 공간을 나 혼자 누릴 수 있어 내심 기뻤다. 아침 일찍 전시에 온 것이 좋았던 건지 암실인 건물의 작품과 나, 나의 움직임을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형태를 관찰하는 것이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지러운 패턴들이 머리를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미구엘은 철저히 물리학, 화학, 생물학을 차용하여 만든 컴퓨터 모델을 만들어 움직임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보이도록 설계했다.

 

그래서 그런지 차가운 화면을 만지는 게 아닌 밀어내면 멀어지는 물체들처럼, 건드리면 퍼져가는 파동처럼 각 작품들이 살아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온몸으로, 오감으로 그렇다고 믿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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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기원>

 

 

특히 <세상의 기원>은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설득력이 있는 움직임이었다. 컴퓨터로 계산된 것이라고 믿는 것보다 현미경으로 바라본 세포의 모습이라 믿는 것이 더 쉬울 정도로 말이다.

 

예상대로 미구엘은 생물학과 미생물의 경계에 대한 고민을 했고, 그 결과로 탄생한 작품이었다. 작디작은 미생물이 우주를 구성하는 것처럼 작은 픽셀들이 화면을 꾸며내는, 그 연결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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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트랙터 댄스>

 

 

마지막으로 운 좋게 공연시간에 맞춰 볼 수 있었던 작품, <어트랙터 댄스>이다. 패트릭 트레셋과 협업한 작품으로 다섯 개의 팔을 가진 로봇으로 이루어졌다.

 

벽면의 그림들과 무관한 작품이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5개의 팔이 일제히 움직이면서 펜을 휘저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동기화된 움직인 아래 완성되는 그림은 기계가 해낸 것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라는 생각에 미치자 인공지능은 예술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던 나에게 큰 물음표가 생겨났다. 이미 미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을 부정해버리기에는 늦은 거다. 또다시 단정 짓는 행위의 위험성을 깨달았던 순간이기도 하다. 다만 재미있는 예시를 만난 것으로 일단의 경험을 정리하기로 했다.

 

전력 공급이 끊이는 순간 암실과 벽을 더듬는 나만 남게 될 것이라는 우스운 상상을 하며 빛을 따라 팔을 흔들고, 넓은 공간을 총총 뛰어다녔던 전시, 미구엘 슈발리에의 <디지털 뷰티> 전시였다.

 

기하학적인 추상화가 가득한 이곳이 궁금하다면 내년 2월까지 전시가 이어진다고 하니 한 번쯤 편한 신발을 신고 가보길 추천한다. 말 그대로 인터렉션을 위한 전시이기 때문에 화면과 움직일 준비는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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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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