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장 첨단의, 그리고 가장 인간다움의 발견 - 미구엘 슈발리에, 디지털 뷰티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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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생산’한다는 말은 낯설다.
어쩌면 낯설다기보다 무례하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 어떤 작품이든 작가의 삶과 영혼의 일부가 깃들 것인데 감히 생산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그러나 미구엘 슈발리에의 작품은 기이한 상상력과 직관력에 산업사회에서 흔히 마주하는 미디어와 ai 장치가 결합된다. 이보다 더 기계적인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단지 그 표현 매체뿐만 아니라 작품이 담고 있는 비주얼과 메세지 또한 이 산업사회를 벗어나 해석하기 어렵다. 그 속을 헤엄치는 관람객은 떄로는 디지털 세계 속으로 뛰어들었다가 때로는 미생물의 흔적이나 우주적 공간을 떠돌기도 한다.
하지만 기묘하게 이 생산된 작품으로 여겨지는, 기계를 닮은 작품은 왠지 차갑기는커녕 따듯하다.
눈이 시릴 정도로 강렬한 네온 컬러를 머금었대도, 건들면 찔릴 것 같은 날카로운 사선이 교차하는 장면이래도 그렇다. 그 안에서 마침내 따스함이, 그 어떤 인간적임이 느껴진다. 결국 이 모든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관람객인 사람과 상호작용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이 기이한 감각의 간극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새롭게 발견한다.
가장 낯설지만 동시에 친근한 이 세계로의 여행에 안내자가 되어 주는 미구엘 슈발리에의 전시를 들여다본다.
그물망 복합체 - 전시장에 들어가면 우리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작품.
관람객을 그물망으로 만들어진 디지털 세계 속으로 밀어 넣는다. 작품의 이름과 꼭 맞다. 서로 다른 가상의 컬러 네트워크는 실시간으로 변화하는데, 관람객이 공간에서 움직이면 시스템은 모양을 다시 잡아가기 위해 갈라지고 합쳐지기를 반복한다.
라이좀 - 천장에서부터 지하로 쏟아지듯 연출된 조각 설치작품.
크기와 비례, 색상이 다른 여러 강철 막대 1,500개가 교차하고 확장되며 복합적인 형상을 이룬다. 그야말로 공중에서 구현된 가장 직선적인 형태의 우주.
세상의 기원 - 작품 설명을 읽지 않아도, 왠지 직감으로 이해하게 되었던 인터랙티브 VR 작품. 생물학과 미생물의 세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한다.
분열하고 증식하는 세포처럼 화면 위를 넘나드는 조형은 현미경으로 끝없이 확대한 작은 세계를 투영하는 듯하다.
어트랙터 댄스 - 미구엘 슈발리에와 패트릭 트레셋이 협업해 제작한 예술 작품. 디지털 예술과 로봇 예술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다섯 개의 팔을 가진 드로잉 로봇이 퍼포먼스를 펼치는데, 움직이는 패턴이 묘하게 변주되며 종이 위에 둥글고 또 뾰족한 궤적을 새긴다. 로봇 팔의 끝에 달린 깃털 펜촉 역시 질서정연한 자세로 움직임을 거듭하며 시선을 집중시킨다.
이 과정을 거쳐 철사가 켜켜이 쌓인 듯한 그림이 만들어지는데 이 형태와 로봇의 움직임은 데이터 뱅크에서 추출된 것으로 무한한 변형이 가능하다고.
디지털 무아레 - 이 전시에서 가장 핵심적인 경험이 가능한 구간. 층을 아우르는 큼직한 벽면과 바닥을 가득 채운 VR 설치 작품이 자리한다.
감각을 압도하는 색과 조형에 잠시 적응하는 시간을 가지고 그 안으로 뛰어들면, 마치 바다 속을 헤엄치다 마주한 파도가 내 몸짓 따라 흔들리듯 바닥과 벽을 채운 패턴이 내 몸과 상호작용해 변화한다.
기본적으로 다른 설치 작품과 유사해 보이나 압도되는 감각이 완전히 다르다. 기세가 아주 대단하다. 가만히 서 있어도, 열심히 움직여도 발 밑으로 추락할 것만 같은 늪에 들어온 것 같다.
무아레란 두 패턴 사이의 공간 간섭 현상이라고 하는데, 이 말이 맞다. 그 간섭 사이에서 나는 아주 작은 존재가 된다.
머신 비전 - 나조차 알지 못했던 나의 새로운 얼굴을 확인하고 싶다면 이곳으로.
자화상 개념을 탐구한 머신 비전은 얼굴 인식 기능을 장착한 감시 카메라에 의해 작동한다. 카메라 앞에 선 순간 현실 세계의 나는 가상 세계로 순간이동한다. 두 개의 평행 세계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가장 직관적으로 경험한다.
스크린 너머의 나는 여러 다각형으로 나뉘어 하나의 추상화를 이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 기이한 형상이 나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 감각이 무척 흥미롭다.
괴리되었으나 그렇지 않다.
[신은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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