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디지털 우주의 아름다움 - 미구엘 슈발리에, 디지털 뷰티 시즌2

0과 1의 우주를 흩뜨리는 나
글 입력 2023.08.26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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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아트'?


 

미디어 아트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시대다. '캔버스에 유화'라는 간결한 설명과 함께 액자에 고이 걸렸던 그림들이 스크린 속에서 돌아다니고, 오직 스크린에 띄워지기 위한 작품들이 한 갈래로 단단히 자리 잡았다. 온라인 민원 처리부터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까지 모든 것들이 디지털화되는 지금, 예술과 전시가 미디어 아트를 통해 발 빠르게 앞장서고 있다.

 

사실 나는 이 흐름이 썩 달갑지 않다. 회화 작품을 대형 스크린에 띄우는 것이 대부분인 전시 양상 때문이다. 물론 '미디어 아트'를 위한 미디어 아트 전시도 많지만,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전시들은 아직 "유명 회화 작가 000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만나보세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규모 이외의 색다른 기획이 없는 전시들은 서울의 협소한 공간을 만나면 대부분 초라해진다. 미디어 아트 뿐만이 아닌, 전시 전반에 관한 내 감상이다.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담지도,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지도 못하는 전시들이 은근히 많다. 그래서일까? 미디어아트 전시로의 발걸음이 어려웠다.

 

직전에 보았던 미디어아트 전시가 상당히 아쉬웠던 탓에 '미구엘 슈발리에 <디지털 뷰티>' 전시를 오래 고민했다. 그러나 '프랑스 미디어 아트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내 시선을 끌었고, 가본 적 없는 전시장인 아라아트센터가 궁금해 호감이 생겼다. 새로운 곳에서 보는 미디어아트 예술가의 전시. 한 번쯤은 시도해도 좋겠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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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과 1로 만들어진 나만의 놀이터


 

기대 이상으로 좋은 전시였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전시장 덕분에 자외선 조명을 활용한 작품들의 색채가 잘 나타났다. 대부분이 형광 계열의 색이었는데, 거대한 대화형 예술에서 특히 빛을 발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신나게 손을 흔들며 작품 앞을 돌아다니니, ‘이곳이 곧 어른의 놀이터가 아닌가?’ 싶었다.

 

그 크기에 비례한 작품의 길이도 대단했다. 보통 미디어아트의 경우 한 작품의 지속시간이 길지 않았던 것 같은데, 슈발리에의 작품들은 한 작품에서 변화하는 아트가 계속 달라져서 신기했다. 오래 있을수록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구조였기에, 나보다 훨씬 오래 계셨던 것 같은 관람객분도 계셨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몇 시간이고 보고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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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수학에 관심이 많다면 더더욱 추천한다. 어렸을 때의 나는 라인디자인에 미쳐 있었는데, 직선이 곡선으로 보이는 그 형태가 너무 아름다워 꽃부터 용까지 사정없이 그려댄 적이 있다. 그런 라인 디자인과 유사한 형태의 작품들을 여기서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물론 나처럼 하나하나 그린 것이 아니라 특정한 형태가 되도록 프로그래밍이 된 것이겠지만, 큰 작품으로 보니 작가가 그렸을 그림이 경이롭게 다가왔다. 실제로 슈발리에는 우주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과연 우리가 아는 우주의 풍경을 가져온 것이 아님에도 어딘가 광활한 우주를 보는 것만 같았다.


같은 국적의 예술가 패트릭 트레셋과 함께 협업한 ‘어트랙터 댄스’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로봇팔이 작품을 그려내는 퍼포먼스를 두 눈으로 볼 기회가 있었는데, 춤이 들어가는 작품명답게 깃털이 꽂힌 로봇팔들이 정말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전시실 벽을 가득 채운 그림들이 전부 로봇팔이 그린 작품임을 생각하며 유심히 뜯어보았다. 큰 형태는 비슷했지만, 세세하게는 약간씩 다른 그림들에서 언뜻 인간의 우연성이 보였다. 연출된 것이겠지만, 어딘가 신비로운 느낌에 ‘어트랙터 댄스’와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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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트랙터 댄스>

 

 

 

새로운 발견, 아라아트센터


 

우주와 인간에 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돌아다닌 이번 전시는 아라아트센터였기에 더욱 빛났다고 생각한다. 여러 층을 전형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일부 공간을 기둥처럼 뚫어내어 작품을 전시하는 등 층높이를 자유롭게 활용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층높이가 들쭉날쭉한 탓에 계단으로 이동하는 동선이었는데, 계단에 발광 테이프와 조명을 함께 사용하여 관객을 도운 것과는 별개로 전시장의 휠체어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쉬웠다. 그래도 이렇게 역동적인 공간 활용은 오랜만이라 매우 달가웠다. 전시가 없던 층에 새로운 전시를 준비 중이라고 하던데, 다음 기획전시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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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유기물의 눈으로 본 거대한 우주


 

'미구엘 슈발리에 <디지털 뷰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프랙탈 줄기>였다. 리히텐베르크의 도형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이 작품은 나뭇가지 모양의 도형이 전류의 흐름을 선명하게 기록하며 나타나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관람객의 움직임이 전자 에너지, 작품이 줄기를 담당하여 내가 움직일 때마다 뻗어 나가는 줄기가 무척 아름다웠는데, 나무를 닮은 선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아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기도 했다. 어찌 보면 혈관과도 비슷하게 생긴 이 도형은 인간의, 우주의 수많을 가능성을 연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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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팔을 흔드는 것만으로도 흩어지는 쌍방향 예술을 보니 마치 0과 1의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이미 매일매일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마치 <세상의 기원>처럼, 선택은 참 쉽지만, 그 결과물을 예상하기는 너무나 어렵다. 그 바닷속에서 어떤 것들과 만나, 어떤 것을 만지고, 어떤 것을 입는지가 중요한 시대인 것 같다.

 

나는 0과 1로 구현된 우주 속에서 유일한 유기물인 관람객이었다. 자연물 하나 없는 전시였지만, 역으로 우주와 지구에 관한 가장 많은 생각을 한 전시였다. 프랙탈 줄기들보다도 훨씬 많은 가능성으로 구성된 우주가 참 매혹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가능성이 뻗어 나가도록 돕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아름다운 것은 누구나 지키고 싶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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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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