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솝 우화 너머의 이야기 - 이숲우화, 짐승의 세계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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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진 땅을 숲이라 한다면, 우리가 사는 빌딩으로 가득한 이곳도 숲이다. 여전히 짐승들이 살고 있는, 성공한 작가 이솝, 그리고 그를 찾아온 여우가 들려주는 이 숲의 우스운 이야기들.
<이숲우화, 짐승의 세계>는 ‘이솝의 우화 제작기’ 혹은 ‘제작비화’를 담아내면 좋겠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연극이다.
처음 시놉시스는 인간의 어리석은 모습을 동물에 빗대어, 웃음과 교훈을 주기 위한 부조리극 형식의 우화로 작성되었고, 우화의 한 주인공인 여우와 작가의 만남을 축으로 다양한 군상의 이야기를 푸는 방향으로 구체화되었다.
극은 성공한 작가의 이솝의 강연으로 시작된다.
그의 옆에는 칠판이, 뒤편으로는 ‘여우와 두루미’, ‘개미와 베짱이’, ‘토끼와 거북이’, ‘달에 간 까마귀’ 포스터가 나란히 붙여져 있다. 각 포스터들은 어떤 이솝 우화를 다룰지, 연극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알려주는 이정표로 위치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되는 각 챕터는 언어유희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여우의 이름이 탄생하게 된 이유는 여우가 울 때마다 옆에서 “여! 우냐? 여어~ 우냐고!” 라고 불리어서 여우가 되었고, 헬스장이 공간적 배경인 <개미와 베짱이>에서 베짱이는 복부비만이 있는 ‘배가 짱’ 많이 나온 인물이라 ‘베짱이’다.
언어유희를 통해 극을 구성했다는 점이 신선했고, 어리석은 짐승들(이지만 결국 우리 인간들의 모습인)의 이야기이기에 무거워질 수 있는 공연을 언어유희를 통해 가볍게 만든 점에서 매우 유연한 연극이라고 느꼈다. 언어유희를 극의 내용과 이어지도록 적극 활용하지 않은 점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이를테면 <여우와 두루미>에서 여우는 이름의 기원부터가 그렇듯, ‘운다’라는 속성을 끌어안은 캐릭터이기에 자연히 관객은 ‘감정’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기대하게 되지만, 이러한 기대는 해소되지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여~우냐?’란 소리를 듣던 여우는 왜 그토록 자주 울었는지, 그리고 다르지만 또 같아서 끌렸던 두루미와의 감정 교류 통해 그는 어떤 여우가 되었는지 등과 같은 감정적 서사 연결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이후의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본 극은 물음표를 던지는 공연이다.결말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관객에게 생각할 지점을 주고, 인간의 모습을 ‘짐승’에 빗대 표현하여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돕는다.
짐승의 세계는 이솝우화를 현대인의 삶에 맞추어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한 공연이고, 이러한 시도를 가장 잘 드러낸 챕터는<달에 간 까마귀>다. 이 공연에서 다뤄진 노래 ‘지금을 살잖아요’ 속 가사는 매일을 견디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
내일이 없어도
지금을 살잖아요
그대와 함께한
이 순간을 말해요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
굳이 이유를 찾진 않을래
오늘만 살아가는
내게 실망했나요
이게 내 모습인 걸
진심은 다했어요
무얼 해도 우스운
어긋난 이곳에서
아무 걱정 말고서
기쁜 춤을 출래요
지금을 살잖아요 - 이한빛
무얼 해도 우스운 어긋난 세계, <이숲우화 : 인간의 세계>를 의미하는 건 아닐까.
[권수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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