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와 공간감 [여행]

헤어질 결심을 하러 떠난 부산에서
글 입력 2023.08.2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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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홍보학과라는 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영상 광고에 매료되어서였다. 그리고 아름다운 영상 언어로 메시지를 전하는 광고에 설득될 때면 그 힘을 더욱 굳건히 믿었다. 자연스럽게 영화를 사랑하게 됐다. 보는 사람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겨주는 영화의 다양한 말들은 나를 빈 스케치북 종이 위에서 색연필을 양 손 가득 쥔 채로 활보하는 아이로 만들었다.

 

광고와 영상, 그리고 영화가 밀접한 관계를 띄고 있던 만큼, 늘 팝콘 하나를 들고 상영관에 들어가는 일이 벅찼다.

 

그때 매료된 영상 하나가 있다. 상영 시작 전 보게 되는 JBL 스피커 광고였다. 광고는 아름다운 영상미와 섬세하면서 웅장하기까지 한 사운드로 구성되어 있었다. 1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스피커의 소리로 상영관 내부를 꽉 채웠던 짧은 시간이 선명히 기억난다.

 

영화의 음향, 그리고 영화는 어디에나 있다는 사실. 상영시간 내내 관객의 귀로 흡수되어 영화와 한 몸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 JBL 스피커 광고가 관객에게 비주얼, 사운드 등의 크리에이티브 요소로 전달하고자 했던 핵심 메시지다.

 

나는 그것을 '공간감'이라고 정의했다. 관객에게 영화에 빠져들 수 있는 몰입감을 선사하고 영화와 같은 공간에서 숨을 공유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이 단어를 내멋대로 정의하기도 전에 위 경험을 통해 몸으로 먼저 흡수했던 것 같다. 이후에 단어를 인지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영화가 내게 선사하는 공간감에 몰입해 더 잘 흡수하기 시작했다.

 

특히, 내 주파수에 맞는 영화라면 온 몸 구석구석 빛이 퍼지듯한 말로 못할 벅참이 느껴진다.  주파수가 통하는 영화, 나의 경우엔 '헤어질 결심'이다. 그리고 영화관에서 느낀 공간감에 대한 희열을 발산하고파 부산 촬영지로 당일치기 여행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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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끝 무렵이었지만, 정말 덥고 습한 날씨에 조금만 걸어도 얼굴 전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하지만 그마저도 즐거웠던 것은, 영화 속 해준(박해일 배우)도 땀으로 젖은 채 범인을 잡기 위해 한여름 밤의 추격 장면을 찍었던 곳에 다다랐기 때문이었다. 해준의 영혼이 닿은 것처럼, 지치고 힘들어도 가파른 계단을 성큼성큼 오르던 나였다.

 

영화 속 해준이 범인과 대치하기 위해 어느 작은 공터에 멈춰 설 때면, 나도 그 옆에 따라 섰다. 등장하지 않는 등장인물이 되어 배우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꿈처럼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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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촬영 지점을 찾아가려고 버스를 탔다. 유독 습하던 날씨답게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버스가 부산 송도 바다를 감싸고 어느 마을로 굽이굽이 들어가면 작은 아파트 단지가 나온다. 이곳은, 서래(탕웨이 배우)의 집으로 촬영되었던 작은 아파트 단지다. 잠복수사를 위해 차 안에서 잠든 해준을 가만히 바라보던 바로 그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서래와 함께 조용히 잠든 해준을 바라본다.

 

스페이스바, PA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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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이 멈추자 움직이는 것은 나뿐이다. 조금만 옆으로 이동하면 오색 빛 정글짐이 있는 작은 놀이터가 보인다. 이곳에선 해준이 서래의 서툴고 귀여운 고백을 몰래 번역해 듣는다.

 

스페이스바, PLAY.

 

가만히 옆에 서서 해준과 함께 서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본다.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주세요.” 서래가 내 심장을 가져다 달라는 듯, 찌릿-하며 심장을 움켜쥐고선 한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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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촬영지로 향하는 길은 꽤 오랜 시간을 걸어야 했다. 부산에 머물던 내내 높은 습도와 함께 안개가 자욱했고 비는 내리다 말기를 반복했다.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들고 다녔던 우산은 날 구해주기도 했고, 성가시게도 했다.

 

영화의 배경지인 가상 도시, 이포도 안개가 자욱할 정도로 정말 습한 곳이다. 어쩌면 조금 전 아파트 앞에서 만난 서래가 부산에 안개로 내려온 것은 아닐까. 그런 상상에 흠뻑 취할 때쯤, 해준이 서래를 미행하던 골목에 다다랐다. 정훈희의 ‘안개’의 템포에 맞춰 천천히 걸음을 맞춰보니 상상했던 그 이포가 이곳에 내려온 것인지, 내가 이포라는 가상 세계로 승천한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황홀함만이 가득했다.

 

*

 

결국 모든 공간감은 이 ‘황홀함’이라는 단어로 설명됨을 여행을 마친 후 깨달았다. 실제로 경험해 보지 못한 장면 속 모든 오감을 그대로 흡수하기 위해 촬영 지점마다 가만히 서서 느꼈다. 모든 장면과, 인물들의 감정선을 곱씹어 보며 느껴지던 붕 떠오름은 어딘가로 훌쩍 날아갈 수 있는 것만 같이 벅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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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행의 목적이 이것이 아니랄 지라도, 나는 이렇게 공간감을 찾으며 머물 공간을 갈망하는 나그네처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닐 것이다. 영원히 정착하지 못하는 곳에서 머무는 찰나가 나의 ‘모두’가 될 수 있는 진귀한 경험은 느낄 때마다 설레기 때문이다.

 


[박정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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