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명화 파헤치기, 카라바조의 '도마뱀에 물린 소년' [미술/전시]

악마의 재능을 가진 화가 카라바조의 미소년 그림
글 입력 2023.08.2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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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Ottavio_Leoni,_Caravaggio.jpg

오타비오 레오니, <카라바조의 초상화>, 1621-25, 피렌체 마루첼리아나 도서관

 

 

16세기 화가 중 가장 문제가 많았던 한 명을 뽑자면 아마 우리에게 카라바조(Caravaggio)로 더 잘 알려진 화가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 1571-1610)일 것이다. 이번부터 두 편에 걸쳐 이탈리아 출신의 문제적 화가, 카라바조의 작품 두 점을 함께 파헤쳐 보고자 한다.

 

 

 

천재 화가의 불우한 삶


 

카라바조는 유년기부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는 1571년에 이탈리아 밀라노 근교에 있는 카라바조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는데, 6살 때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모두 전염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심지어 아버지의 죽음 이후 5명의 형제를 부양하던 어머니마저 1584년에 세상을 떠나자, 그는 가난한 가정 환경 속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인지 카라바조는 어린 시절에 범죄에 연루된 경험이 있고, 1606년에는 다툼 끝에 한 남자를 살해해 로마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나폴리로 도주했다. 카라바조는 나폴리로 도주한 이후 이탈리아 남부 도시를 전전하다 1610년 39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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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의 이동 경로(출처: Wikimedia Commons)

 

 

괴팍한 성격에 여러 차례의 범죄 이력까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성에도 불구하고 카라바조는 17-17세기 전반을 통틀어 가장 핵심적인 이탈리아 화가로 평가될 만큼 그림에 천재적 재능을 갖고 있었다.

 

특히 그는 더욱 사실적인 관찰을 통해 찰나의 순간이 주는 폭발적인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데 능숙했다. 또한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통해 물체가 주는 삼차원의 느낌을 극대화하고,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를 사용해 캔버스 위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면 마치 연극 무대 위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장면을 보는 듯한 현장감이 느껴진다.

 

 

 

<도마뱀에 물린 소년 Boy bitten by a Liz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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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도마뱀에 물린 소년>, 1594-95, 영국 내셔널 갤러리

 

 

이번에 만나볼 카라바조의 작품은 화가의 초기작 중 하나인 <도마뱀에 물린 소년 Boy bitten by a Lizard>(1594-5)이다. 이 그림은 10월 9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영국 내셔널 갤러리 명화전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그림의 제목을 검색하면 비슷하지만, 다른 모습의 두 버전이 등장한다. 사실 이 그림은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로베르토 롱기 재단에 있는 버전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위의 사진처럼 영국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한 작품을 볼 수 있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그림 속 포인트를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한 소년이 입을 반쯤 벌린 채 미간을 잔뜩 찌푸린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소년은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거나, 순간적으로 놀란 듯 보인다. 곱슬곱슬한 갈색 머릿결과 오른쪽 귀에 꽂은 장미꽃 한 송이도 보인다.

 

시선을 조금 아래로 옮기면 오른쪽 어깨는 완전히 감상자 쪽으로 틀어졌고, 옷은 반쯤 벗겨져 맨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리고 소년의 왼손이 무언가에 자극받은 듯 경직된 상태로 구부러진 모습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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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카라바조, <도마뱀에 물린 소년>, 1594-95, 영국 내셔널 갤러리


 

왜 소년은 다소 독특한 표정과 자세를 하는 것일까? 위 그림의 세부를 보면 궁금증이 해소될 것이다. 작은 도마뱀 한 마리가 소년의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을 물고 있다. 어찌나 세게 물었는지 소년의 오른손에는 힘줄까지 서 있다. 도마뱀 주변에는 과일과 빛이 반사되어 방 안 풍경이 보일 정도로 생생하게 표현된 유리병이 있고, 그 안에는 장미와 재스민이 담겨 있다.

 

모든 요소를 종합했을 때, 소년은 숨어 있다 갑자기 튀어나온 도마뱀에게 손가락을 물린 것 같다. 그리고 카라바조는 순간적으로 놀라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그림에 담아냈다.


이 그림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 가장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느낌 중 하나는 극적인 순간에 표출되는 강렬한 감정이다. 그림에 악마의 재능을 가졌던 카라바조는 키아로스쿠로를 사용해 이를 능숙하게 표현했다. 왼쪽 위 모서리에서 들어오는 빛은 소년의 어깨, 얼굴 절반, 오른쪽 손등을 밝게 비추어 돋보이게 한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유리 꽃병과 왼쪽 손등에도 비치는 빛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밝음과 어두움이 만들어 내는 강한 대조 효과는 전체 장면뿐 아니라 소년의 표정을 더 생생하고 극적으로 느껴지게 하며, 빛이 비치는 곳으로 시선을 유도한다.

 

카라바조만의 기술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여러 번의 스케치를 통해 모델링을 연습한 다음 그렸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카라바조는 스케치 연습 없이 바로 실제 모델을 보며 캔버스에 그려 나갔는데, 이런 작업 방식은 당시 다른 화가들에겐 일반적이지 않은 카라바조만의 특징이었다.

 


카라바조 세부2.jpg

(세부) 카라바조, <도마뱀에 물린 소년>, 1594-95, 영국 내셔널 갤러리

 

 

그렇다면 카라바조는 이 그림을 위해 누구보다 자신의 의도를 잘 알고 있으며, 원하는 표정을 지어보일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생생한 표정, 자세 등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완벽한 모델은 바로 카라바조 자신이었다. 그래서 소년의 얼굴은 화가의 자화상이며 그는 거울을 앞에 두고 자신의 표정을 보며 그림을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래전부터 이 작품의 의미에 관해 연구해온 학자들은 그림이 가진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분석하려고 노력했다. 일부는 양성적인 소년의 모습을 종 교적 맥락에서 사랑과 영원에 대한 은유로 읽어냈고, 소년의 손가락을 무는 도마뱀은 질투와 시기에 사로잡힌 사랑의 상징이라고 이야기한다. 다른 연구자들은 감정 자체에 집중해 오감 중 촉각을 주제로 삼아 그린 작품으로 해석하거나, 소년의 자세와 표정이 화를 잘 내는 성격을 상징한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또한 이 그림을 포함해 카라바조의 미소년 그림에 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동성애적 해석이다. 반쯤 드러낸 어깨와 미묘한 표정, 그리고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와 성적 유혹을 상징하는 장미를 귀 뒤에 꽂은 소년의 모습은 자연스레 동성애적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더불어 아래 그림의 세부를 보면 소년이 도마뱀에게 물린 가운뎃손가락과 도마뱀 아래 놓인 붉은 체리 역시 성적 의미를 담고 있다.

 

 

카라바조 세부3.jpg

(세부) 카라바조, <도마뱀에 물린 소년>, 1594-95, 영국 내셔널 갤러리

 

 

하지만 완전히 동성애적 코드로만 작품의 의미를 한정하는 건 어렵다. 꽃과 과일이 그려진 정물과 도마뱀에게 손가락을 물린 소년은 성적 알레고리뿐 아니라 바니타스(vanitas)의 의미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덧없음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바니타스는 삶의 덧없음, 부질없는 쾌락, 죽음의 필연성을 상징하는 정물을 그린 미술 장르이다. 위 그림의 세부를 보면 유리병에는 흰색 꽃을 틔운 재스민과 보랏빛 장미 한 송이가 담겨 있는데 재스민은 현명함과 신중함을, 장미는 반대로 고통을 상징한다.

 

신중한 사랑과 고통이 뒤따르는 사랑의 상반된 메시지를 함께 담고 있는 유리병 속 식물은 체리, 도마뱀, 손가락과 같이 성적 의미를 담고 있는 요소들과 함께 배치되어 사랑이 주는 쾌락과 유혹은 덧없고 부질없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더불어 이 그림은 아름다운 소년의 생기있는 젊음에 대한 바니타스로도 바라볼 수 있다.

 

 

 

스냅사진 같은 그림


 

이처럼 다양한 해석 중에서도 이 그림은 강렬하고 극적인 감정에 관한 연구로서 그려졌다는 견해가 가장 지배적이다. 화가는 인물이 표현하는 감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사실적인 관찰에 의도적으로 초점을 두었고, 그 결과 실감 나는 표정과 자세를 캔버스에 옮길 수 있었다.

 

미술사학자이자 카라바조 연구가인 로베르토 롱기(roberto Longhi)는 이 그림에 대해 “소년의 표정에 날카로운 고통이 반영된 찰나의 순간이며, 스냅사진처럼 순간의 동작을 캔버스에 정지시킨 그림”이라고 묘사한다. 더불어 최근 한 연구자는 카라바조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카메라의 원형인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는 가설을 제시하기도 했다.

 

꼼꼼한 관찰과 사실적인 표현 기법으로 찰나의 순간에 스쳐 지나가는 강력한 감정을 표현한 카라바조는 진정 악마의 재능을 가진 화가였다. 비록 그의 사생활은 문제가 많았고 여러 도시를 전전하다 이른 나이에 요절했지만, 그의 그림은 렘브란트, 쿠르베 등 많은 후대 화가에게 영향을 주어, 또 다른 명작이 탄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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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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