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단단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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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7월, 뜨거운 햇빛에 못 이겨 얇은 셔츠 한 장과 이별을 선고했던 날. 드디어 여름이 시작됐다. 슬금슬금 들리는 매미 소리와 버스 안에서 나오는 거센 에어컨 바람까지. 여름이 왔다는 걸 느낀다.
주변의 변화로 나의 몸은 여름을 인지했지만, 마음은 아니었다. 아직도 겨울과 봄 사이 어딘가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다. 신체와 정신이 받아들인 계절의 거리감은 꽤 컸다. 하루빨리 변화를 알아차려야 할 것인데.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니, 문제다.
전에 감명 깊게 읽었던 인문학책을 천천히 꼭꼭 씹듯이 읽어 보고, 유튜브 보관함에 있던 다큐를 몰입하며 시청했다. 하지만 나아지는 게 없었다. 흥미로운 것을 봐도 단 하나의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모습은 꽤 낯설었다. 그리고 꾸준히 써왔던 다이어리도 책장 끝에 넣어놓은 채, 꺼내지 않았다.
나의 상태를 형용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드디어 알게 됐다. 번아웃이 온 것이다. 나에게 쉼이 필요다는걸 알려주는 지표였다. 그렇다. 건강한 휴식이 필요했던 거다.
때마침 좋아하는 작가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생겼다. 그의 에센에스를 자주 관찰하는 사람으로서 꼭 한번 보고 싶었다. 작가는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강연 주제는 ‘일상의 단단한 뿌리를 내리는 법.
나에게 적절한 답을 내려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평소 강연을 들으러 가면 세 번째 줄부터 선호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그를 가까이서 보고 싶었고, 강연에서 말하는 모든 걸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작가가 지향하고자 하는 바를 나의 일상에 빨리 흡수시키고 싶었다.
작가는 꾸준함은 흥미와 몰입과 같다고 말했다. 내가 깊이 공감하고 좋아해야만 ‘꾸준함’을 지속할 수 있다는 점.
매년 다이어리를 구매하지만, 끝까지 기록 못 했다는 사람에게 자책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꾸준히 다이어리를 샀다는 것 자체만으로 끈기 있는 사람이기에. 사람마다 끈기의 척도는 다르다는 걸 느꼈다. 내가 게으른 사람이라고 의심했던 마음을 잠시 내려놨다. 살아가고 있는 지금. 수많은 상황 속에서 배움을 얻으려고 하는 자세가 꾸준함이 아닐까.
나를 완벽히 아는 건 어렵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때도 있고, 과거에 묻어뒀던 상처가 다시 돋아날 때도 있다.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은 끊임없는 인생 숙제인 셈이다. 우리는 이 숙제를 잘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한다.
나눠준 질문의 답을 작성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다. 인생에서 좋았던 추억이 차츰차츰 떠올랐다. 답을 술술 써 내려가는 도중, 다섯 번째 질문에 막혔다.
음식을 먹으며 감정 파악을 한다는 일은 나에겐 꽤 생소하다. 메뉴를 고르고 먹기 직전의 기대감으로 부풀었던 모습은 선명히 떠오르지만, 그 후의 감정은 쉽게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먹는 행위에만 집중했던 날을 다시 되돌아본다. 어떤 행동을 하든 나의 감정과 긴밀하게 연결 되어있는데, 인지하지 못한 채 흘러간 과거. 단단한 질문을 통해 사소한 감정 하나씩 인지하기 시작한다.
일상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는 법은 어렵지 않다. 끊임없이 스스로 묻고 돌이켜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몸과 마음은 서로 조화를 이루어 한 계절을 나아갈 것이다.
[이지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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