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2023, 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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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영속적으로 존재하며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러한 빛의 속성을 닮으라는 의미에서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내 이름도 '유빈'이다. 한자로는 柔(부드러울 유), 彬(빛날 빈)이라고 쓰고, 뜻은 한자 풀이 그대로 부드럽게 빛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의 빛을 발하기에는 세상에 ‘○彬’이 너무 많았다. 지역을 넘고, 시간을 넘어 끊임없이 존재하는 ‘○彬’ 사이에서 온전히 나만의 빛을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릴 적에는 수많은 ‘○彬’보다 뛰어난 구석이 있어야 나로서 존재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날카로운 장점이 필요했다. 나에게 날카로움은 글쓰기였고, 학교 안팎에서 글쓰기 상을 탈 때마다 종종 단상에 올라가곤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사소한 목표지만 그때는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삶이 좋았다. 단상에 올라간 ‘○彬’은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 남으니까.
아무튼 나는 다른 ‘○彬’과 구분되는 ‘柔彬’이 되어간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나와 다른 '○彬'을 헷갈리던 사람들이 더 이상 나를 다른 ‘○彬'들을 헷갈리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경쟁에서 찾아낸 빛은 나보다 더 밝게 빛나는 재능을 지닌 ‘○彬’ 앞에서 그대로 묻힐 수밖에 없었다.
글쓰기는 기본에 다른 무언가도 빼어나게 잘하는 ‘○彬’은 얼마나 많은지. 유려한 문장에 자신을 잘 녹여내는 ‘○彬’은 또 어떠한가. 그런 사람들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 사람이 빛난다고 해서 내가 빛나지 않는 건 아니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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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을 벗고 대학생이 되었다. 여전히 ‘○彬’은 많았다. 그렇지만 이들은 '구분 짓기'가 아닌 각자 지닌 빛을 갈고닦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빛나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던 나와 달리, 대학교에서 마주한 수많은 ‘○彬’들은 저마다 삶의 방향성을 설정하느라 바빴다. 나도 더 이상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무수히 많은 ‘○彬’ 사이에서 가장 빛날 방법을 고민했을 뿐 내가 지닌 고유한 빛을 바라보지 않았다. 타인의 시선과 인정에서 내 존재 근거를 찾는 데 익숙해져서 어릴 적 상을 타오던 나도, 그렇지 못한 나도 모두 나였음을 인정하지 못했었다.
그때부터 나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욕심을 모두 쳐내기 시작했다. 내 세상은 생각보다 단단했는지 뛰어난 구석이 없어도 무너지지 않았다. 강박을 천천히 내려놓으니 삶의 여유를 조금씩 찾았고, 최근에는 내 속도를 회복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수많은 ‘○彬’ 사이에서 더 빛나는 사람이 되기보다 그 사이에서 부드럽게 빛나는 '柔彬'이 되고 싶다. 다른 사람이 만든 길 말고 내가 걸을 길을 닦아가며, 성장과 실패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덧붙이지도 말고, 덜어내지도 않으며 그저 묵묵히 빛을 발하는 인생.
[이유빈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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