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새로운 삶의 챕터에서: 앙리 마티스, LOVE & JAZZ

글 입력 2023.08.0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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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항상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계획하고 살아가고 헤쳐나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늘 그런 법은 아니다. 치밀하게 계획한 것이 좌초되기도 하고, 간절히 원했던 대로 흘러가는 듯하다가도 새로운 변수를 맞부닥뜨리기도 한다. 어쩌면 규칙적이고 체계적인 것처럼 보이는 외관 속에 내재된 불확실성과 변동성이야말로 인간사를 제대로 표현하는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그렇기에 젊은 날에 잘 풀려서 위풍당당했던 사람조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익는 벼처럼 겸허해지게 되는 것일 테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든지 자신의 인생에서 여러 챕터를 맞는다. 삶에 있어 전환점이 되는 것은 어떤 성공이 될 수도 있고, 서글프지만 어떤 실패가 될 수도 있다. 혹은 예기치 않은 어떤 사건이 인생의 변곡점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그리고 예술가 중에서도, 원치 않았고 예기치 않았던 일로 인해 자신의 예술 인생에 큰 변화를 도모해야 했던 인물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그 전환이 급격했던 예술가를 꼽으라면, 나는 가장 먼저 앙리 마티스를 선택할 것이다. 마티스의 작풍은 매번 놀라울 정도로 변모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앙리 마티스의 삶 중에서, 그의 삶의 후반부에 이루어졌던 작품들을 중심으로 기획된 전시회가 열렸다. CxC아트뮤지엄에서 진행 중인 '앙리 마티스, LOVE & JAZZ' 전이다. 그가 새로운 삶의 챕터에서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작풍 변화를 기억하고 있기에, 그 시기에 집중한 이번 전시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 전시 소개 >


20세기 근현대 미술사를 대표하는 작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는 노년기 여러 번의 수술과 건강 악화로 시집을 위한 작은 크기의 그림을 그리거나 가위와 종이를 이용한 콜라쥬 형식의 컷 아웃 방식으로 작품활동을 이어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현대인들에게도 친숙한 <재즈>와 로사리오 성당의 디자인, 벽화 등이 마티스의 노년기를 대표하는 주요 작업들이며, 기존의 회화나 조각과는 다른 예술형식을 탄생시켰다고 일컬어진다.


이번 앙리 마티스 특별전은 내년 서거 70주년에 앞서 그의 인생 후반부와 변화한 작품 세계를 조망하고 현재까지도 미치고 있는 예술적인 영향력에 대해 짚어보기 위한 자리로, 판화, 아트북, 포스터 등 15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또 앙리 마티스의 직계 후손인 장 마튜 마티스가 세운 ‘메종 마티스(Maison Matisse)’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현대작가들과 협업으로 만들어낸 마티스 헌정 에디션, 소품들을 국내 최초로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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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LOVE & JAZZ' 전은 일부 포토존에서만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그래서 전시 관람 시에 사진을 찍고자 하는 경우 반드시 사진 촬영이 가능한 구역인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우선 전시관의 가장 초입은 사진 촬영이 가능한 곳이었다. 이 곳은 앙리 마티스의 인생 연표를 확인할 수 있는 동시에 그가 컷아웃 작업을 하는 모습이 담긴 짤막한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앙리 마티스는 풍채가 굉장히 좋은 편이다. 그래서 단순히 마티스의 야수파적인 화풍만 강렬했던 게 아니라, 그가 풍기는 인상 또한 꽤 강렬한 편이다. 그런데 그가 좋은 체격과 강한 인상을 가진 것과는 별개로, 그의 인생 연표에는 어릴 때에도 그가 아팠던 것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역시 체격과 체력이 다른 문제이듯, 질병에 대한 취약성도 또 다른 문제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법률사무소 회사 직원으로 일하면서도 출근 전 시간을 활용해서 미술 수업을 들었던 젊은 날의 마티스를 상상해본다면, 그가 얼마나 열정적인 사람이었을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심지어 그렇게 취미를 붙였던 미술을 자신의 업으로 삼고 과감하게 도전을 할 줄도 알았던 사람이니까 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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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티스는 왕성하게 야수파로서의 자신의 작품활동을 이어나갔지만, 병마와 싸우게 된다. 암으로 인해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그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이 강렬한 회화 작품활동을 이어나가기 어려워지고 만다. 투병 생활이 얼마나 고단한 것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제대로 알 수 없다. 더군다나 수술과 항암을 해야 했던 마티스의 심신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건강의 문제도 그렇지만 앞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의 여부가 불확실한 것부터가 그에게는 큰 부담이고 걱정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아프고 지치게 되면 작품 활동 자체를 손놓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티스는 마치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 같은 그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스스로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던 자신의 기존 작화를 내려놓고, 아예 자신이 작품 활동하기 편한 방향으로 화풍을 바꿔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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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Jazz ((주)씨씨오씨 제공)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컷아웃 기법이다. 심신이 고단한 상태에서 세밀하게 가위질을 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그는 종이를 채색하고 가위로 오려내고 이를 붙이는 콜라주 형식의 화풍을 새로이 만들었다. 이런 작업들은 마티스가 조수의 도움을 받아 진행하기도 하고, 침대나 안락의자에서 직접 하기도 했다고 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에는 침대 밖을 벗어나기도 쉽지 않았을 테니 그가 침대에서 작업했다는 것도 일견 이해가 간다. 하지만 병상에서 작업한 것이 이 정도라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다.


컷아웃 기법으로 활동한 작품들을 보면 과거 그가 야수파로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시기의 작화와는 확연히 다른 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색채의 마술사였던 마티스의 인생 후기에도 생생하게 살아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콜라주된 작품들 속에서도 마티스가 색을 얼마나 자유자재로 조화롭게 사용하는지를 보면, 그저 경탄할 수밖에 없다. 과감하면서도 결코 과하지 않은 그 적정한 수준의 조화를 마티스는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러 이미 원숙할 정도로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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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풍경 ((주)씨씨오씨 제공)



하지만 이번 '앙리 마티스, LOVE & JAZZ' 전은 그의 컷아웃 기법 작품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티스의 드로잉 작품들도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채색 없이 선만 따서 심플하게 그린 드로잉에서부터 그가 예술혼을 불태우면서 작업한 판화 삽화들, 잡지 표지들이 있었다. 반갑게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 사진집 역시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었다. 이 유명하고도 아름다운 사진집 표지 역시 마티스가 작업해준 것이다.


채색되지 않은 드로잉은 어떤 면에선 다소 힘이 빠져 보일 수도 있다. 특히나 마티스는 색을 강렬하게 쓰는 화가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밍숭맹숭하다는 느낌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드로잉은 오히려 본질적으로 앙리 마티스의 강렬함을 드러내는 영역이기도 하다. 마티스가 선을 얼마나 일필휘지로 그어가면서 작품을 그려냈는지, 선을 사용하는 데 있어 얼마나 망설임 없이 뻗어나갔는지 그리고 선만으로도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그의 드로잉 작품들이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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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공간 중반부 즈음에는 마치 마티스가 되어보는 것처럼 관람객들이 체험을 해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티켓을 발권할 때에 접수처에서 티켓과 함께 리플렛을 주는데, 그 리플렛을 보면 컷아웃을 직접 해볼 수 있도록 종이가 채색되어 있는 영역이 있다. 그 부분을 직접 가위로 잘라서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가위와 테이프가 비치되어 있는 공간이 있었다. 주로 어린이 관람객들이 이 곳에서 바쁘게 가위질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옆에는 좀 더 간단하게 해볼 수 있는 체험 공간이 있었다. 바로 색이 다른 스탬프를 찍어보는 공간이었다.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그리고 빨간색 순으로 스탬프를 찍으면 되는 형태라 전시 관람하다가 중간에 나도 한 번 참여해 보았다. 그런데 스탬프를 찍는 공간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아서 막상 다 찍고 보니 기묘한 작품이 완성되어 있었다. 그래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잠깐이나마 재밌게 체험하고 전시를 이어볼 수 있도록 동선을 고려한 것 같아서 좋았다. 특히 이어지는 공간에는 바로 '가면이 있는 대형 장식'이 벽 형태로 거대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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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메종 마티스 섹션이 안배되어 있었다. 이번 전시는 메종 마티스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전시다. 메종 마티스는 앙리 마티스의 4대손인 장 마튜 마티스가 설립한 라이프 스타일 부티크로, 그의 선조인 마티스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재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면서 마티스를 오마주한 다양한 제품군을 만들고 있었다.


예컨대 알레산드로 멘디니, 하이메 아욘, 브흘렉 형제가 협업한 리미티드 화병 시리즈도 있었고 마르티 비코우스키의 다양한 접시들도 보였다. 그런가 하면 크리스티나 엘레스티노의 패브릭 제품들도 살펴볼 수 있었다. 이 콜라보 제품들의 특징은 마티스처럼 색채를 과감하게 쓰거나, 마티스가 많이 사용하던 형상들을 그대로 담아냈다는 점이다. 비록 마티스의 작품은 아니지만, 현대 예술가들에게 마티스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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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마지막 섹션은, 앙리 마티스가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웠던 로사리오 성당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그가 자신의 남은 기력을 쏟아부어 활동한 이곳은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와 그가 그린 성화가 함께 남아있다. 자신이 투병 생활 중일 때 간호해주었던 간호사 자크 마리가 로사리오 성당의 수녀가 되었고, 그의 부탁을 받아 예술 인생의 대미를 장식하는 아름다운 걸작을 남긴 것이다. 물론 이번 전시에 그곳의 원화가 그대로 올 수는 없었고, 사진으로 대체하여 그곳의 분위기를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진으로만 봐도 정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다른 전시공간에 비해 트여있는 공간이었는데, 전시기획사에서는 이곳에 스테인드글라스 모형을 붙여 놓고 예배당 앞의 공간을 본딴 작은 모형을 함께 두었다. 그래서 그런지, 실제 그 곳은 어떤 느낌일지에 대해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의 형상은 있으나 눈코입은 생략된 극히 미니멀한 성화들도 실제로 보면 또 어떻게 와닿을지 너무 알고 싶어지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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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입구 ((주)씨씨오씨 제공)



새로운 삶의 챕터를 열고, 이전과는 다른 그 챕터를 치열하게 살아나간 앙리 마티스. 젊었을 때부터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열정적으로 살았던 그의 인생이 너무나 감동적으로 와닿았다. 쉽지 않았을 그의 선택과 발자취들을 되짚어 가다 보면, 내가 지금 삶을 마주하는 자세는 어떤가에 대해 성찰해보게 되었다. 또 다른 챕터를 열고자 하는 나에게는 앙리 마티스가 가졌던 그 절박함과 간절함 그리고 치열함이 있는가? 아름다운 작품들을 보면서도 마음 한 켠으로는 숙연해지고 마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번 '앙리 마티스, LOVE & JAZZ' 전은 앞서서도 계속 말했듯이, 앙리 마티스 인생의 후반부에 이루어졌던 작품들을 위주로 전시가 구성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익히 알던 마티스의 대표작들을 위주로 전시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물론 컷아웃 작품들 중에서 대표작 수준으로 유명한 작품들은 들어와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마티스 하면 떠올릴 법한 그 강렬한 회화 작품들은 이곳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를 관람하고자 한다면, 앙리 마티스가 겪었던 치열한 투병생활 그리고 그 와중에도 절대 꺾을 수 없었던 그의 예술혼에 집중하여 전시를 살펴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야수파로서 종횡무진하던 마티스 특유의 화풍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의 컷아웃 콜라주와 드로잉들에서도 끝없이 고뇌하고 성찰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갔던 성실하고 강인한 마티스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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