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페미니즘의 다발적 물결이 흘러 - 여전히 미쳐있는 [도서]

페미니즘의 필요를 깨닫고 파도가 되기에는
글 입력 2023.08.05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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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라스’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유리종에 갇힌 여성에 관한 이야기 <벨 자>를 쓴 작가, ‘아빠, 나는 당신을 죽여야 했지’라며 아빠와 남편을 동일시하며 감정을 쏟아낸 <아빠>라는 시를 쓴 시인, 그리고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고 자살한 마지막 이미지로 알려진 여성. 일관적으로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사람으로 읽힌다.

 

그러나 사실 그녀의 생애 자체는 일관되지 않았다. ‘문학계의 마릴린 먼로’라 불리며 그녀를 우상처럼 생각했고, 미국 여자 대학생들을 위한 <마드무아젤> 잡지의 에디터로 일하며 장식 있는 블라우스를 분석하는 글 따위를 썼다.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전하는 여성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랬기에 실비아의 삶은 훨씬 입체적으로 보인다.

 

그녀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1950년대는 모순적인 시대였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다. 남성과 여성의 영역 구분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그와 그녀의 시간’이라는 어구가 유행했고, 여성들은 쾌락이 아닌 출산을 위한 성관계를 갖길 요구받았다. 실비아 플라스 자신도 자신의 시에서 “아이를 못 낳은 여자”를 “조각상 없는 박물관”이라며 심하게 비난했다.

 

겉으로는 질서가 유지되며 평온했다. 그러나 그 내부의 여성들은 당연시되는 현실에 대해 복잡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실비아 또한 결혼과 모성, 자신의 커리어에 대해 고민했다. 플라스가 찬사를 보냈던 일 – 아내이자 엄마이면서 작가라는 3중의 위협적인 여성이 되겠다는 다짐 – 은 여성성의 경계와 속박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마땅히 가정과 커리어, 둘 중 하나만 가져야 하는 상황에서 실비아는 가정생활까지 한껏 즐겼다. 그리고 이는 확실히 시대적 맥락에서 ‘비정상’이었다. 그랬기에, 실비아 플라스가 상상의 대모들인 마릴린 먼로와 메리앤 무어를 나란히 둔 것은, 1950년대의 순응주의를 반영한 삶과 그것에 반발하는 삶을 살았던 그 세대 젊은 여성들의 특별한 혼란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깊게, 모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 건데. 확 트인 벌판에 나가 잠을 자고, 서부를 마음대로 여행하고, 밤에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

 

1970년대 페미니즘의 유명 인사가 되는 착하고 못되고 분노로 미쳐 있던 여성 작가들은 이 악명 높은 규범적 1950년대의 규범 관념들을 산산이 깨부순다. 1950년대의 모순적 상황이라는 가마솥 안에서 1970년대의 페미니즘이 배양되고 있었다. 페미니즘의 역사는 반동의 역사다.

 

1970년 여름, 사상 최대 규모의 ‘여성 평등 시위’를 벌였다. 미국 여성 참정권 획득 5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동등한 교육과 고용 기회, 임신 중단과 보육의 권리를 요구했다. 놀랍게도, 그리 놀랍지는 않지만,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요구 사항들이다. 1950년대 고정된 여성들의 역할과 거리를 뒀고, 섹슈얼리티 또한 멀리했다. 가장 활발하게 여성 운동이 펼쳐졌던 시기다.

 

1980년대와 1990년대는 비교적 보수적인 분위기로 회귀했다. 제2물결 페미니즘이란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책의 말을 빌리자면, 물결들이란 각기 다른 속도로 넘실대다가 어쩌다 한 번씩 무리 지어 움직이는 법이다. 20세기가 끝나갈 무렵에 이르면 정체성 정치가 논의된다. 이때, 경제적, 종교적, 언어적, 지리적 요인에 따라 다르게 굴절되는 양식들을 탐색하면서 교차성 개념이 떠올랐다.

 

납작하게 일축되는 페미니즘 이론이 실은 여러 물결들이 합쳐져 일궈진 입체적인 흐름이라는 점을 학문적으로 짚어주는 책이다. 일부 이론과 작품의 내용으로 접하게 됐던 여성주의 작가들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여전히 분노에 미쳐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서 들으며 페미니즘적 상상력을 훈련할 수 있는 책이다.

 

일관적인 것은 허상이다. 가능하지도 않다. 곳곳에서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변모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니 당신도 아직 늦지 않았다. 21세기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페미니즘의 필요를 깨닫고 파도가 되기에는.

 

 

[정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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