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난다 (1) [미술/전시]

미알못도 만족하는 국중박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후기 (1)
글 입력 2023.08.05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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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 가수, 사진가는 있지만 최애(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없다. 미술을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언니가 우리 집 손재주 DNA를 몽땅 가져간 덕분에 미술은 내게 손이 닿지 않는 미지의 영역이다.

 

“같이 미술 전시회 보러 갈래?” 나만큼이나 미술 전시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이라 이야기한 것이라 의외였다.

 

어디를 갈 것인지 물어보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명화전이 있다고 한다. 이 전시회라면 인기가 많아 온라인 티켓팅 마감도 빠르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었다. 유행이라고 하면 갑자기 눈이 반짝여지는 성격 탓에 같이 가는 거면 좋다고 승낙했다.

 

인기를 증명하듯 한 달 전에 열린 티켓팅은 접속 1분 만에 몇몇 시간대는 품절이 됐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자리가 남은 주말 오후 1시 타임으로 예매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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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는 주제로 열린 이번 전시회는 한국과 영국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영국 대표 미술관 중 하나인 내셔널갤러리 소장 명화 52점을 선보인다.

 

라파엘로, 렘브란트, 르누아르, 고갱, 반 고흐 등 나 같은 미알못(미술을 알지 못하는)도 익히 들어본 유명 미술 거장들의 그림으로 이뤄져 있다.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명화를 전시하는 것은 이번이 국내 최초다.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서양 명화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점이 큰 메리트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미술 주제가 신으로부터 사람, 우리 일상으로 향하는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르네상스 이후 신의 세계를 그리던 화가들은 점차 사람에 대한 관심이 커져 개인과 나에 대한 이야기를 담게 됐다. 그림들을 따라가며 서양 역사와 함께 미술 역사의 변천을 볼 수 있다.

 

과연 내가 전시회의 주제를 잘 이해할 수 있을지 명작의 멋짐을 알아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런 내게 한 줄기 빛 같은 도움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는 전시회에서 오디오 설명을 제공한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김영하 작가가 알쓸신잡 예능에서 이야기했던 미술 전시회 보는 팁이었다.

 

자산가에 이입해 ‘이 그림 중 어떤 걸 사겠는가?’라는 관점으로 전시회를 보면 흥미진진해진다는 것이었다. 친구에게도 이 팁을 전하자 함박 웃음을 지었다.

 

이 관점이 좋은 이유는 혹여나 명화 속 숨겨진 의미를 찾지 못한 걸까 전전긍긍할 필요 없이 나만의 기준에 집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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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역사적인 사건을 거치며 원래 귀족들만의 문화였던 예술은 오늘날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게 됐다. 르네상스, 종교개혁, 계몽주의, 인상주의 등 4가지 역사적 사건을 분기점으로 삼아 전시회는 서양 미술의 변화를 4부로 나눠 소개했다.

 

1부: 르네상스, 인간 곁으로 온 신

2부: 분열된 교회, 서로 다른 길

3부: 새로운 시대, 나에 대한 관심

4부: 인상주의, 빛나는 순간

 

전시에서 인상 깊었던 그림들을 하나씩 소개하고 싶지만, 분량상의 문제로 '전시회가 끝나고 명화를 직접 살 수 있으면 어떤 그림을 사겠는가?'라는 관점에서 부마다 1~2점을 선정해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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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문예 부흥기), 인간 정신 회복을 위해 14세기부터 16세기 동안 유럽 여러 국가에서 일어난 문화 혁신 운동. 르네상스가 일어나며 그리스, 로마 사람들처럼 인간을 다시 돌아보며 신의 세계만을 그리던 미술에서 벗어나 사람이 관찰한 세상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중세 미술은 장식적이고 평면적인 공간을 담았다면, 르네상스 시대부터 원근법과 이상적인 비례, 그리고 명암법을 이용해 입체적으로 대상을 재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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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가지 변화를 잘 보여주는 게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서재에 있는 성 히에로니무스’ 그림 같다.

 

캔버스의 크기가 크지 않은 편이라 시선 분산 없이 그림에 집중하게 되는데, 원근법으로 인해 서재의 공간감이 실제 안에 있는 듯이 느껴진다.


수직, 수평이 잘 지켜진 책장과 대칭적인 아치형 구조를 보고 있으면 무결점의 상태에 마음이 편하다. 갈색과 적색이 주로 쓰인 따뜻한 색감으로 딱딱한 의자와 각이 살아있는 자세임에도 그림에 마음이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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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일어난 종교개혁으로 교회가 중세 기독교를 수호하는 가톨릭계와 변화를 요구하는 프로테스탄트로 분열했다. 자연스레 화가의 시선도 분열됐는데, 가톨릭 국가(이탈리아, 프랑스 등)는 신앙심을 높이는 바로크 미술이 유행했지만, 프로테스탄트 국가(북유럽)는 종교 미술을 거부하며 사람과 그 주변 이야기를 조명했다.


개인적으로 사소페라토(조반니 바티스타 살비)의 ‘기도하는 성모’가 바로크 회화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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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회화는 신앙심 고양을 목적으로 하는 만큼 그림의 설득력을 더하는 역동적인 구성, 선명한 색채, 강렬한 감정 표현이 특징이다. 고해성사, 명상 같은 종교적 행위가 주제인 경우가 많은데 ‘기도하는 성모’가 딱 맞는 예시다.


검은색, 상아색, 파란색, 빨간색. 색상이 다양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강렬해 그림의 존재감이 대단했다. 평온한 표정으로 기도하는 모습이 어딘가 경건해 보이기도 한다. 사진처럼 그림자나 옷감의 표현이 사실적이면서도 반들반들 뽀얘 보이는 그림에 보는 순간 ‘와, 이거다. 나라면 이걸 살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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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풍경을 담은 그림 중에서는 요아힘 베케라르의 ‘4원소: 불’이 가장 좋았다. 일상을 재현한 그림만큼 굉장히 다양한 상황이 표현돼 있어 가이드 음성을 들으며 하나씩 요소를 뜯어 보는 재미가 있었다. 도축 중인 가정을 훔쳐보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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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문밖 풍경이 마리아 자매 집에 방문한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놀랐다. 자칫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곳에도 의미가 담겨 있었다. 4원소라는 제목처럼 이 작품은 물, 공기, 흙까지 총 4점의 연작이다.


전시회에는 물과 불이 전시돼 있고 나머지 두 작품은 영상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원소를 주제로 다양한 일상 풍경을 담은 화가의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2)에 이어서.

 

 

[이도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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