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이아몬드 반지에 담긴 의미 [영화]

글 입력 2023.08.02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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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독 결혼을 준비하는 지인들이 많다. 가장 친한 친구부터 대학교 후배들 여럿이 각자의 SNS에 웨딩 사진을 올리며 소식을 알리고 있다.

 

지난 주말에도 청첩장을 받을 겸 친구를 만나고 왔다. 친구는 본인이 받은 다이아몬드 반지 사진을 보여주면서 나에게 결혼할 때 꼭 다이아를 받으라고 했다. 그날 우리는 피자를 먹기로 했기 때문에 다이아 반지를 끼고 올 순 없었지만 보기만 해도 너무 예쁘다며, 이럴 때아니면 언제 받겠냐고 덧붙였다. 친구의 아이폰 사진첩에서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반지를 보며 오래된 영화가 하나 떠올랐다.

 

아프리카 분쟁 지역에서 채굴된 다이아몬드는 내전이나 테러 활동을 지지하는 돈줄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잦다. 이러한 곳에서 생산된 다이아몬드를 블러드 다이아몬드라고 한다. 채굴에 동원되는 인력은 노예처럼 다뤄지고,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며 노동에 쓰인다. 대표적인 분쟁 다이아몬드 지역으로 알려진 곳들은 앙골라, 시에라리온, 콩고 등이다.

 

이 중에서도 시에라리온의 내전이 가장 유명해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배경이 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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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시에라리온에서 968.9캐럿 크기의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었다. '시에라리온의 별'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 원석은 당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다이아몬드로 알려졌으며, 이후 시에라리온에 묻힌 자원을 탐내는 세력이 국가 내부와 외부에서 모두 달려들었다.

 

시에라리온 내전은 1991년 정부 반군인 혁명 연합 전선(RUF)이 라이베리아 대통령 찰스 테일러의 지원을 받고 모모흐 대통령 집권 체제 전복을 시도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의 명분은 대통령 측근의 부정부패 척결이었으며, 다이아몬드 광산을 포함한 대부분의 경제를 소수의 지도층이 독점하고 있다는 점에 불만을 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쟁은 다이아몬드 광산의 소유권 싸움으로 변질되었고, 광산을 차지하게 된 RUF는 다이아몬드를 밀매함으로써 전쟁 자금을 마련했다. 반군들은 마을을 공격해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 강간, 학살했고, 투표를 하지 못하도록 손을 자르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10년 동안 지속된 전쟁 속에 시에라리온의 전체 인구 450만 명 중 35만 명이 사망했으며, 4천명의 신체의 일부가 절단되었다. 아이들을 납치해 살인 기계로 키우기도 했는데, 이렇게 소년병이 된 인구만 7천 명에 달한다. 이는 아직까지도 시에라리온에 남아 있는 큰 과제이다. 모든 것들이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 자세하게 묘사된다.

 

영화에서 디카프리오는 전쟁을 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이런 말을 한다. '사실 전쟁을 하는 줄도 몰랐지. 공산주의와 싸우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잇속 다툼이었소. 상아, 석유, 금, 다이아몬드. 그래서 나도 내 잇속을 챙기기로 했지.' 자원의 저주가 어떻게 인간들 사이의 갈등에 불을 지피게 되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한 노동자가 캐낸 핑크 다이아몬드를 가로채고 아프리카를 뜨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우고 있음을 깨달은 순간 그에게 다시 다이아몬드를 돌려주고 그와 그의 가족이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도록 돕는다.

 

2000년에 다이아몬드 생산국들이 남아공 킴벌리에서 모여 분쟁 이슈에서 자유로운 다이아몬드 시장을 조성하자는 데에 합의했고, 이는 킴벌리 프로세스라는 이름의 국제적 인증 시스템이 되었다. 드비어스, 그라프 등 다이아몬드 제국들의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면 그들이 판매하는 다이아몬드는 폭력과 연관이 없고, 로컬 노동자들에게 부와 수익이 배분되는 도덕적 방식으로 생산된 것이라고 홍보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마저도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나에게는 마치 이런 것과 비슷하게 들린다. '우리의 수족관은 정말 크고 관리도 잘 되어 있고, 늘 돌고래들에게 신선한 생선을 먹여요. 그러니 이 아쿠아리움에서 보시는 돌고래들은 행복합니다.' 과연 그럴까? 돌고래들이 애초에 수족관에 가둬져 있지 않았으면 그들은 드넓은 바다에서 자유를 누리며 훨씬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돌고래를 잡아서 사육하며 그들의 쇼를 보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구 때문에 이 바다 생명들은 좁디좁은 플라스틱 수조에서 평생을 보낸다. 마찬가지로 다이아몬드에 대한 끝없는 수요와 탐욕이 덜했다면 이러한 긴 내전도, 폭력도, 인권 유린도 없었을 것이다. 돌고래쇼는 안 보면 그만이고, 다이아몬드 반지도 없어도 그만이다.

 

요즘 넷플릭스에는 가짜 다이아몬드와 랩 다이아몬드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여럿 올라와 있다. 진짜 다이아몬드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보기 불편할 수 있지만, 긴 시간에 걸친 공급 조절(사실상의 생산 독점)과 마케팅이 만들어낸 환상의 재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좋은 프로그램들이다. 친구의 결혼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었지만,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는 것이 진심을 다해 축하할 일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 날이었다.

 

 

[강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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