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계속 의심할테지만 잊지마, 행복은 늘 곁에 있어 - 붉은 파랑새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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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는 주제를 담은 어린이 동화 '<파랑새>'는 모두 한 번쯤 들어본 동화일 것으로 생각한다. 나 역시도 이야기의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파랑새의 의미가 행복이라는 사실은 왠지 모르게 당연하게 알고 있으니 말이다.
파랑새를 찾으러 떠났던 틸틸과 미틸은 자신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파랑새가 사실은 그들이 집에서 기르던 새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여정을 마친다. '행복은 사실 우리 곁에 있었다'는 깨달음을 얻은 그들은 과연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을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후의 그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극단 뭉쳐의 '<붉은 파랑새>'는 과거 파랑새 모험을 떠났던 이제는 어른이 된 틸틸과 미틸의 20년 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동화가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환상세계로의 모험으로도 도망칠 수 없는 현실
20년 후의 진취적이고 성취욕 강한 여동생 미틸은 도시에서 생활한다. 입는 옷까지 신경 쓸 만큼 여유롭지는 못하지만, 어느덧 그녀 앞으로 된 집 한 채를 마련한 말 그대로 어른이다. 반면 틸틸은 서른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여전히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파랑새를 잡으러 떠났던 시절에 머물러 있다.
이미 어른이 된 미틸과 아직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는 틸틸은 어린시절 파랑새를 찾는 모험을 같이 떠난 것이 무색하게 이제는 서로 소원하다. 기껏해야 장례식과 같은 경조사에서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 정도다.
어린 시절 파랑새를 찾아달라 부탁했던 요술 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된 틸틸은 그곳에서 자신을 파랑새라 불러 달라 말하는 붉고 늙은 새 한 마리를 만난다. 틸틸에게 그 새는 파랑새 모험을 다시 한번 떠나보지 않겠냐는 달콤한 제안을 해온다. 내가 파랑새라는 걸 믿어달라는 단 하나의 조건과 함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다시 한번 경험해 보고 싶었던 틸틸은 파랑새라 주장하는 붉고 늙은 새와 함께 환상세계 여행을 떠난다. 환상세계에서 틸틸은 가장 먼저 빛의 요정을 만난다. 틸틸의 변한 모습에 낯설어 하던 것도 잠시 빛의 요정은 틸틸의 두 번째 파랑새 모험을 위해 여러 나라로 데려다준다.
가장 처음 간 추억의 나라에서 틸틸은 자신과 함께 파랑새 모험을 떠났던 어린 시절의 미틸도 만나고 떡갈나무 신에게 나무꾼이었던 자기 아버지의 행동을 사과하고 용서받기도 한다.
환상세계의 추억과 따듯함에 취해있던 것도 잠시 틸틸은 곧 밤의 여왕에게 납치되고 만다. 과거에 비해 놀랍도록 커진 어둠의 궁전으로 잡혀간 틸틸은 그곳에서 자신의 두려움과 마주하게 된다.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틸틸은 심지어 파랑새가 다치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다. 어둠의 궁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미래와 가난에 대한 두려움을 마주해야만 했던 틸틸은 결국 어릴 적 좋은 추억이었던 환상세계에서마저도 현실을 느껴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간신히 탈출하고 도착한 행복의 궁전에서도 틸틸은 현실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데 어린 시절과는 달리 행복의 궁전이 파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새장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결국 틸틸은 꿈에서 마저 느껴지는 현실의 무게에 좌절하고 그 새장 안에서 그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파랑새'를 본다.
새장 속의 파랑새에 정신을 팔린 사이, 틸틸은 그와 함께 모험을 하던 붉은 파랑새를 잃어버린다. 새장의 파랑새마저 자신의 환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틸틸은 이제는 다시 돌아가서 파랑새를 찾으라는 빛의 여왕의 말과 함께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틸틸이 모험 내내 그토록 간절히 찾아 헤매던 파랑새는 대체 어디 있는 걸까?
'진짜' 파랑새는 사실 늘 곁에 있었다
틸틸에게 모험을 제안했던 늙어서 붉어진 파랑새가 모험의 조건으로 요구했던 것은 단 한 가지였다.
바로 내가 파랑새라는 걸 믿어 달라는 것.
그렇지만 틸틸은 모험 내내 자신 옆의 새가 파랑새라는 사실에 의문을 품는다. 그도 그럴 것이 환상세계에서 만나는 인물들이 파랑새를 계속 의심하기 때문이다. 파랑새는 자기가 '진짜' 파랑새가 맞다고 계속 어필하지만 틸틸은 늙고 추레한 모습의 파랑새가 진짜 파랑새임을 완벽하게 믿지 못한다.
인간의 두려움과 걱정을 먹고 자라는 어둠의 궁전을 지배하는 밤의 여왕은 대놓고 파랑새에게 괴물이라고 부르며 틸틸이 가지고 있던 불신의 씨앗을 꼬집는다. 그 불신은 결국 자라고 커져 틸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파랑새의 환상을 보여주고 진짜 파랑새를 잃어버리게 한다.
앞서 말했듯이 동화<파랑새>에서 파랑새는 행복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동화를 재해석한 <붉은 파랑새> 에서도 파랑새는 아무리 그 모습이 추레하고 심지어는 더 이상 파란색이 아니더라도 행복을 의미하리라.
여정 내내 함께했던 파랑새는 너무 작고 초라해 우리가 인지하지도 못하는 매일의 작은 행복일 것이다. 현대인은 마치 틸틸처럼 우리의 행복을 계속해서 의심한다. 다른 사람의 말로 그 행복의 진위성을 판단한다. '나'의 파랑새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눈에도 파랑새여야만 파랑새라고 인정해준다.
틸틸이 밤의 여왕의 '괴물' 한마디에 모두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허상에 매몰되어 진짜 행복을 잃어버린 것처럼 지금도 우리도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새장 속의 파랑새 때문에 '진짜' 파랑새를 잃어버리는 중이다.
'진짜' 파랑새를 잃고 현실로 돌아온 틸틸은 소원해졌던 미틸과 재회한다. 미틸은 재회한 틸틸에게 자신과 함께 도시로 가자는 제안을 한다. 그러나 틸틸은 도시에서 자신의 삶이 그려지지 않는다며 미틸의 제안을 거절한다.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것도 정해진 것도 없는 오빠의 거절을 미틸은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파랑새를 찾아보자며 응원한다.
틸틸의 '진짜' 파랑새는 어른의 삶을 살아내고 있으면서도 틸틸의 파랑새 이야기를 허무맹랑한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그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 주는 미틸일 것이다. 어린 시절엔 너무 가까워 미쳐 알지 못했던. 그러나 미틸의 빈자리를 느끼고 그리워하는 틸틸이었으니 두 번째 기회에서는 그녀가 파랑새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다.
<붉은 파랑새> 프로그램 북에서 이 작품은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 세상 모두의 틸틸에게, 파랑새를 돌려주기 위한 이야기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틸틸이 모두 자기만의 파랑새를 찾길 응원하며 나도 역시 나의 파랑새를 찾아가는 여정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마무리해 본다.
[국민경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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