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고생한 것들이 불편하다

하지만 계속 할 만큼 해 보겠다
글 입력 2023.07.2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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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한 일에 실패했을 때 ‘이 일을 할 만큼 했는가’를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다 지난 일을 고민하고 후회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다음의 성공을 위해 스스로 만든 발판과도 같은 것이다.


질문을 던지고 나면 당연히 답은 두 개 중 하나다. 그렇다와 그렇지 않다. 둘 중 뭐가 더 많이 나오느냐고 묻는다면 과거에는 ‘그렇지 않다’였다. 마음으로는 간절하다면서 이성적으로 그 일에 에너지를 쏟지 않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후회투성이인 나를 몇 번 마주하다 보니 그런 내가 너무 싫어지는 순간이 있었다. 일기에 매일같이 적히는 ‘이런 내가 싫다’는 문장이 끔찍했다. 먼지처럼 덕지덕지 붙은 후회를 털어버리는 최선의 방법은 간절한 만큼 에너지를 쏟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걸 시작한 게 2023년 3월이었다.


얼마 전에 아주 비가 오던 날 서울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기차를 타고 돌아오던 밤, 그 공허하면서도 부산한 분위기를 빌려 2023년 상반기의 나를 점검했다. 내가 상반기 동안 했던 여러 도전들과 만든 기록들을 생각하며 ‘이 일을 할 만큼 했는가’를 생각했다.


이런저런 일을 생각하고 나니 처음 든 생각은 그거였다. 나는 이런 일을 하고, 저런 일은 하지 않았다. 한 일 중에는 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일이 있었고, 하지 않은 일 중에는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드는 일이 있었다. 그런 후회는 다음에는 꼭 해야지 혹은 다음에는 하지 말아야지 같은 새로운 다짐을 만들어 주었다.


문제는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드는 일들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할 만큼 한 일은 오히려 우리를 후련하게 만들어준댔다. 어떤 후회도 미련도 없이 오히려 마음을 말끔히 비우게 만들어 준다고. 그런데 나는 문득 그것들이 너무 불편하게 느껴졌다.


경제 용어 중에 ‘매몰비용의 오류’라는 것이 있다. ‘매몰비용’은 사전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여 지출한 비용 중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말하고, 매몰비용의 오류는 ‘미래에 발생할 효용이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투자한 비용이 아까워서 하게 되는 일련의 행동들을 통칭하는 경제 용어’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불편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그것은 내가 정말 고생한 일이고,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누구보다 내가 잘 아니까, 아무렇지 않게 돌아선다는 것이 솔직히 쉽지가 않다. 나의 초연한 실패는 돌이킬 수 없으며, 그것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서는 대체로 많은 시간을 다시 기다려야 한다. 그것마저 잘 알고 있고, 다른 일에 도전하면 되는 것까지 모든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고생한 것에 매달려 버리곤 한다.


내가 또 다시 이 고생만큼의 고생을 할 수 있을까. 그러고 나면 성공할 수 있을까. 이 이상으로는 뭘 해야 할까. 그 이어지는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는 것이다. 그 답 없는 질문들을 던지다 보면 결론은 그렇게 난다. 아, 고생한 것들은 너무 불편하다.


가볍게 행한 것은 오히려 아깝지 않다. 성공한다면 좋은 거고, 실패해도 조금 아깝고 그만이다. 사람도 그렇다. 어쩌다 친해진 친구와 대체로 더 깊은 마음을 나누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해도 연락하는 게 쉽다. 그런데 이상하게 제법 공을 들여 친해진 친구와는 그 순간을 벗어나고 나면 어색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일에 고생하기 싫은 것은 아니다.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저 늘 그랬던 것처럼 나아지고 지나갈 방법을 찾을 것이다. 언젠가 괜찮은 해답을 만들게 되겠지. 그렇게 적으며 괜히 지고 있던 짐을 살포시 내려놓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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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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