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소극장의 매력 - 연극 '용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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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장마로 비가 내리던 토요일 오후, 뮤지컬 ‘용의 아이’를 보러 오랜만에 신촌과 홍대에 들렀다.
연극이나 뮤지컬을 좋아해 종종 공연장에 방문하는 내게도 홍대의 소극장은 처음이었기에, 어쩐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던 것 같다.
<용의 아이>는 고려시대 삼별초의 신화적 전승을 기반으로 한 인물이자 삼별초 항쟁의 최후의 주역인 ‘김통정’의 이야기다. 한민규 작,연출가가 ‘2020년 제주신화 원천소스 스토리공모전’에서 스토리부문으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역사를 돌이켜봐도 한 시대가 끝나가는 소위 ‘말세’는 소위 혼란하기 그지 없다.
극의 배경인 1000년 전 고려 말기의 상황도 그러하다. 고려말 무신정권 시기, 몽골의 침입과 지배층의 수탈로 한반도는 안팎으로 혼란의 극에 달한 상황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몽골의 힘을 빌리려는 왕실의 권력층과 끝까지 몽골에 항전한 삼별초는 대립하고 격돌한다.
고려 말 무신정권, 삼별초, 척준경, 몽골 등등 극은 기록되어 우리에게도 익숙한 역사와 구전되어 내려온 신화, 그리고 판타지적 상상력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난세에도 영웅은 난다고 했던가. 용의 힘과 인간의 마음을 가진 천하장사 김통정, 천둥벌거숭이에 불과했던 영웅이 시련과 고난 앞에서 때론 절망하고 일어서며 성숙해지는 플롯이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역사나 시대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에 끼인 개개인들의 삶, 운명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물음표를 던질 수 있는 연극이었다.
동시에 그렇게 거대한 흐름을 바꿀만한 작은 개개인의 어떤 의지나 마음까지도. 안될거야, 라는 포기가 아닌 희망과 도전을 선택한 사람들의 어떤 에너지에 대해서, 그리고 어쩌면 그런 의지들이 모여서 바뀌었을 어떤 세상에 대해서 말이다.
역사책 속 모든 영웅들 또한 시작은 모두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으므로.
특히나 막이 오르고 연극을 시작하자마자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역동적이고 생생한 연기만으로 무대를 가득 채우는 소극장의 매력에 감탄했다. 거창한 소품이나 무언가 없이도,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들만으로 가득 차고 전해지는 ‘소극장’만의 매력을 느꼈다고나 할까.
기존의 연극이라고 하면 무대와 관객석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있어서 구분이 되는 느낌이었다면, 소극장은 마치 관객들이 직접 무대 위에 올라와서 배우들과 함께 호흡하는 듯한 긴박감과 생동감이 느껴졌다.
배우들의 숨소리 하나마저, 연기 하는 표정 한 순간마저 고스란히 보고 또 공감할 수 있었다. 이야기와 플롯 속에 고스란히 들어와 온전한 관찰자가 된 느낌이란, 정말 온전히 함께 느끼고 공감하는 ‘관객’이 된 느낌이었다.
어둠 곁에서 빛이 가장 선명한 것처럼, 죽음으로 끌려 들어갈수록 더욱 빛나는 삶을 우리는 어쩔 수 없다. 역사 속 격렬했던 어느 전투도, 신화 속 신비로운 어떤 순간도, 거대한 어떤 사건이 아닌 그 속의 개인이 되어 바라보았을 때 우린 비로소 가장 가깝게 그 순간들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연극이자 스토리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공생을 원하는 비인류와 비공생을 원하는 인류'라는 아이러니한 극 중의 나레이션이 가장 마음 속에 남았다. 한 시대는 지나가고, 역사는 반복된다.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끝까지 탐라(제주도)에서 항전했던 삼별초의 역사, 그리고 신화와 판타지가 어우러진 매력적인 고전 연극이었다.
[박주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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