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래서 이 극의 제목이 ‘베르나르다 알바’인 것이다 –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오, 베르나르다
글 입력 2023.07.21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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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사람 사는 이야기 중에 ‘팽 씨 썰’은 나를 웃겨 미치게 하는 여러 일화 중 대략 열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것이다. 이 ‘썰’이 뭐냐면, 가정을 꾸렸고 곧 출산을 앞둔 여인이 억울해하며 ‘남편이 팽 씨여서 본인과의 합의로 태어날 아이에게 팽 씨 말고 부인인 자신의 성을 물려주겠다고 결정한 내용을 듣던 시어머니가 노발대발하셨다’고 하소연하는 일화다.

 

이 게시글과 함께 캡처된 댓글들을 읽을수록 점점 더 압권인데, 일부를 인용하면 ‘팽 씨들이 다 괜찮다는데 팽 씨 아닌 사람이 난리다’, ‘팽 씨 성을 물려받으면 이름을 귄으로 짓는다고 해라’, ‘노(No)팽이인 사람이 난리다’라는 등 유쾌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이 일화와 관련해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본인도 외부인이면서 무슨 이유로 팽씨 성을 지키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었다. 그러게, 본인의 것도 아닌 성을 왜 뒷목까지 잡아가며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것이냔 말이다.

 

무대 위 베르나르다를 보며 나는 이 ‘팽 씨 일화’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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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원작의 제목은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이다. 원작에서는 장소를 강조하며 어떤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면, 뮤지컬에서는 온전히 ‘베르나르다 알바’라는 인물에 초점이 몰린다. 사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는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이라는 작품을 마지막 작품으로 남기면서 여자에 관한 이야기만을 하려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작가가 이야기하려 했던 것은 조금 더 보편적인 이야기였을 것이다. 인간과 권력의 대립! 인간의 욕망이 극한에 몰릴 정도로 절제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인간과 절대 권력이 싸우게 된다면 승리하는 것은 누구일까! 그렇지만 작가가 살던 시대는 발언을 잘못하거나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옹호하면 쉽게 처형에 이르는 시기였고, 그는 실제로 그렇게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은유를 만드는 것이었다. 억압적이고 독재적인 가정의 분위기, vs. 거기에 맞서거나 순응하거나 좌절하는 여러 자식들. 로르카는 이 정도의 은유만으로는 불안했던 것인지, 새끼줄을 한 번 더 꼬아 억압적인 가장의 성별을 바꾸어 버리게 된다.

 

그는 아마 몰랐을 것이다. 대략 100년쯤 뒤에 자신의 그 선택이 전혀 새로운 맥락으로 해석되며 여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거둘 줄은.

 

 

 

억압, 갈망, 자유의 극


 

‘베르나르다 알바’는 한국에서는 이미 제법 입소문을 타며 팬층이 제법 두껍게 있는 공연이다. 이 인기의 비결은 무엇일까?

 

여러 매체에서 추측하는 ‘베르나르다 알바’의 성공 요인은 초연에서는 ‘뮤지컬계를 대표하는 여성 배우들의 대거 출연’이었고, 재연에서는 ‘새로운 여성 배우들의 발견’이었다. 이 극이 얼마나 사랑을 받았으면, 현장감이 가장 중요한 뮤지컬이라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2021년도에는 영화화되어 상영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 극의 인기 비결이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표면적으로는 문화적 유사성이다. 연극에는 안달루시아 지방을 배경으로 하며, 플라멩코, 붉은색 등이 사용되며 스페인의 특색이 진하게 담겨 있다. 어떻게 보면 배우에게서 터져 나오는 감정과 울부짖음, 날것의 욕망이 관객에게 거리감을 줄 수 있을 법한데도 현장에서 본 관객의 몰입도는 상당했다. 같은 공연을 본 여러 관객의 반응을 모니터링하던 중 ‘창’ 혹은 ‘판소리’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는 글을 읽게 되었는데, 관객이 발견하게 되는 이런 의외의 문화적 유사성이 극의 이해를 돕지 않았나 싶다.

 

그렇지만 내가 확신하는 ‘베르나르다 알바’가 이만큼의 성공을 거두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지금, 한국의 관객들이 극의 시대적 분위기에서 동질감 내지는 불쾌한 기시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기시감이 이야기를 표면적으로 따라가기만 해도 쉽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극은 얕게 읽어도 현시대의 문제들을 떠올릴 수 있다. 그저 ‘엄마와 딸 이야기’라고 해도 말이 되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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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다, 여자, 기성세대 그리고 엄마


 

극을 본 모든 관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듯이, 이야기는 베르나르다와 그의 딸들의 대립 관계를 다루고 있다. 장년의 여인 한 사람을 상대로 혈기 왕성한 여자가 다섯이라니. 베르나르다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일까?

 

사실 이야기에서 가사 몇 줄로 잠시 드러나는 베르나르다의 과거는 ‘남자 잘못 만나 기구한 삶을 살게 된 또 다른 여성’에 불과하다. 두 번째 남편인 안토니오 역시 가족을 부양하는 능력과 의지가 그다지 없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게 된 베르나르다는 막막했을 것이다. 그는 과거의 관습대로 살아와 새로운 길을 개척할 깜냥은 전혀 없는 기성세대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가 속한 이 불안정한 가정은 안토니오가 갑자기 사망해, 남성이 가지고 있던 권력이 여성인 그에게 물려지면서 더욱더 흔들린다. 권력의 자리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곳을 차지한 사람의 성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편안하고 좋은 것이라고 믿는 그의 신념은 과거 가부장적인 가정 모델밖에 알지 못하던 그가 이전 방식의 권력관계와 시스템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음을 보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는 남성들이 구축해 놓은 기존의 권력관계를 유지하는 데 실패한다.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지도 못한다. 그는 남성이지도, 신세대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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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베르나르다는 엄마이다.

 

부계 사회에서 아버지는 아들이 뛰어넘어야 할 상대, 그렇지만 뛰어넘지 못하는 막강한 존재로 그려진다. 통제하고 차지하는 아버지와 그것에 도전하는 아들이 주된 갈등 구도이다.

 

반면 모계 사회의 주된 레퍼토리를 지켜보자면 자신에게 보이는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딸이 있고, 오랜 규칙을 따르며 세상에 순종하는 것을 명령하는 어머니가 있다. 이들은 아주 수직적인 위치에 있진 않다. 사실 거의 수평적인 위치에서 싸운다. 그리고 결국 딸이 어머니와 같이 기존의 질서에 흡수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것이 어머니에 대한 딸의 가장 큰 콤플렉스일 것이다. 어머니가 되는 것. 어머니와 같이 수동적인 여성이 되는 것.

 

극에서도 엄마-딸 관계의 다양한 양상이 드러나는데, 빼빼를 욕망한 세 딸을 생각하면 크게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앙구스티아스. 순종이다. 완벽하게 어머니가 된다(혹은 되려고 한다). 마르띠리오. 자신이 어머니와 다른 무언가가 될 순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숨어서 욕망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델라. 가장 적극적이고 가장 반항적이다. 욕망에 솔직하고 악바리 근성으로 다른 삶을 이루려 한다.

 

모든 신화적 이야기가 그렇듯 베르나르다를 벗어나려는 아델라의 시도도 무력해진다. 가장 적극적이던 시도는 가장 파멸적으로 좌절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베르나르다 알바’의 결말이 더욱 심리적 상흔을 남기는지도 모르겠다. “역사는 반복돼. 여자는 엄마와 할머니의 운명을 이어받는 거지.” 마르띠리오는 비관적이지만 가장 현실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현실 속 수많은 아델라들의 시도가 물거품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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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다라는 여자


 

그래서 주인공은 베르나르다이다. 그는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딸들의 위에서 폭군처럼 군림하며 가해하지만, 딸들은 그를 아버지만큼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이런 비아냥거림과 반항으로 베르나르다의 자아는 큰 상처를 입는다.

 

요즘은 가끔 자신이 유지해 오던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딸들 때문에 의기소침한 엄마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종종 생각에 잠긴다. 이 의기소침함이 참 미묘한 감정을 일으키는데, 엄마들의 그런 태도에서 자신은 원하지 않았지만, 기존의 규칙을 따르게 된, 한때는 딸로서 무언가 다른 존재가 되기를 욕망했던 것 같은 세월이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극으로 돌아가자. 어떤 사람에게는 이 이야기 속 억압적인 말들이 트리거가 되었을 수도 있다. 또 누군가에게는 성녀 아니면 창녀라는 구시대적이고 과격한 이분법이 피곤할 수도 있다. 그 모든 사회적 관습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베르나르다라는 인물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베르나르다라는 여자가 좀 불쌍했다.

 

참, 그리고 그 팽 씨 아닌 시어머니 또한 남편을 일찍 여읜 사람이었다는 게 생각이 났다. 나는 인터넷 속 가상의 인물일 지도 모르는 이 여자도 조금 안 됐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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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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