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통이 선사하는 깊은 의미 - INK ON BODY [도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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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속 연예인들을 보며 놀라던 것도 한때, 이제는 거리를 오가며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이 타투다. 나와 일상적으로 관계된 사람들 중에서도 타투를 한 사람이 적지 않다.
타투에 대한 대다수의 인식은 여전히 보수적이라지만 나는 항상 궁금한 입장이었다. 타투를 하고 싶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 나로서는 왜 타투를 하게 되었을까? 저 타투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것을 궁금해하는 것조차 실례가 되지는 않을까?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INK ON BODY는 그런 나에게 딱 맞는 책이었다. '타투를 하지 않은' 저자가, '타투를 한' 여성들에게 타투에 대해 묻는다. 여성의 몸에 대해 더욱 엄격한 이 사회에서, 그 엄격함을 벗어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에세이와 인터뷰의 형태로 펼쳐진다. 작업할 때 타투이스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도안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며 나 자신에게 솔직해진다. 생각지 못했던 무의식 속 나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다. 그중 원하는 모습을 붙잡아 나타내는 행위가 타투 같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 내가 좋아하는 그림, 내 취향을 완성하는 수많은 요소들 중 하나를 내보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데, 자신의 취향을 모두가 볼 수 있는 '몸'에 그려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만큼 솔직하다. 그리고 때때로 그들의 이야기에는 이제는 희미해졌을지 모르는, 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은 눈물자욱이 엿보이기도 한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 아픔이었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고통으로서의 타투는 스트레스가 심해질 때마다 하나씩 늘어났던 나의 피어싱을 떠오르게 했다. 끝없는 수렁에 빠진 것만 같을 때, 물리적인 고통은 일순간 나를 현실로 데려다 놓는다.
그 지독한 현실감이 필요했던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먹먹했던 가슴 속 응어리를 터뜨릴 만한 고통이 필요했던 것인지 아직도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비슷한 마음에서 타투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일종의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그 자리에 남아 있는 타투는 그 때의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이 타투를 했는지, 그 때의 나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반추하게 만든다. 힘들었던 그 당시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순간을 기억하고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처럼 순간순간이 기록된 타투는 계속해서 쌓여가고, 결과적으로 내 삶의 아카이브가 된다. 그것 또한 큰 의미이지 않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의 자해의 일종이라는 생각, 단순히 예뻐서 하는 선택이라는 생각에서 의미있는 것을 새기고 싶은 마음이 되어간다. 의미를 채워나갈 수 있게 태도가 바뀐 것 같다.
타투를 보며 '이때는 이랬지', '이 타투를 할 때 나는 어떤 생각을 했지', 그리고 '그때의 나는 어땠지'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도 타투를 한다면 내면의 변화가 생길 때 눈으로 보고 기억하고 마음을 다잡도록 하고 싶다.
또 떠나간 이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타투는 실로 순간을 영원히 기록하는 마법처럼 느껴졌다. 사람이란 참으로 무력해서, 더 이상 내 곁에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에 대한 기억은 순식간에 흐려진다. 그의 말소리, 웃던 얼굴, 걸음걸이까지 빠짐없이 옅어져 간다.
그것을 안타까워하며 새긴 타투는, 그 타투를 보고 생각하는 짧은 시간이나마 떠나간 이를 기억하게 하는 물리적인 매개체로 기능한다. 한계를 가진 인간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긴 정표는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때때로 흐르는 시간을 멈추고 싶거나, 순간을 영원하게 하는 주문이 필요하다면, 타투로 기록해보기를 권한다.
거꾸로 생각하면 시간이 지나도 잊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저자는 이들의 목소리가 보다 자유롭게, 조금 더 잘 읽히고 제대로 보여지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과장도 덜어냄도 없이 그저 '이야기를 듣고 전하는' 입장에 충실하게 임한다. 덕분에 이 책의 메시지가 더욱 간결하면서도 울림 있게 다가온다.
타투를 한 모든 여성을 대변하는 책도, 타투를 한 여성은 이렇다고 일반화하는 책도 아니다. 그저 이러한 이유로 타투를 한 사람도 있고, 또 다른 이유로 타투를 한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담담한 이야기에 나처럼 울림을 받은 사람이 또 생긴다면, 이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닿을 수 있는 기회가 더 생기지 않을까 소망해 본다.
나는 타투를 새길 만큼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유지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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