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걸어서 보는 세상

글 입력 2023.07.0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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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반복되는 평일 일상에 아주 사소한 변주를 주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도착하기 다섯 정거장 전에 굳이 버스에서 내린다. 그리고 도보 15분, 아니 어쩔 땐 20분, 30분이 걸리기도 하는 거리를 걷는다.

 

처음에는 운동량이 많이 부족한 나를 위해 스스로 내리는 특단의 조치 같은 거였다. 하지만 그 작은 활동이 해야 하는 운동이 아닌, 하고 싶은 산책으로 다가온 순간 그건 더 이상 ‘조치’로 치부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었다. 작지만 소중한 내 시간이 되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걸어서 보는 세상은 다르다. 평소 차를 타고 슝 스치듯 지나가던 거리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나마도 핸드폰을 쥐고 있느라 창밖을 내다보지 않아 자세히는 알 수 없었던 그런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하루하루 달라질수록 점점 재미있어진다.

 

그러한 것들이 하나둘씩 쌓이다 보면 익숙하면서도 낯선, 신기한 우리 동네의 풍경이 만들어진다.


요즘같이 밖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절로 흐르는 날씨에도 내 짧은 산책은 계속된다. 비가 억척같이 쏟아지지만 않는다면 우천 시에도 취소되지 않는다. 하루는 이 길로, 다른 하루는 저 길로 걸어본다.

 

그래서인지 ‘우리 동네에 저런 데가 있었나?’ 살면서 한 번쯤은 해봤을 만한 생각을 근래 들어 몰아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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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던 음식점, 카페, 산책로, 취미로 배울 수 있는 다양한 학원들이 지근거리에 있다는 것부터 우리 집 근처에 이렇게 많은 헬스장이 있었는지도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다. 요즘에는 지금이 이런 꽃이 피어나는 시기구나, 하는 낭만적인 상식까지 알아가고 있다.


검색해 보고 음식점을 가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다 맛있을 것 같다고 눈여겨보았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주말 오전, 조경이 잘 되어 있는 괜찮은 산책로를 발견했다고 가족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성인반도 있는 검도 학원과 탁구 학원이 집 근처에 위치해 있는 걸 보고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퇴근 후 걸었던 짧은 시간이 내 일상을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주고 있다.


'일상을 여행처럼'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일상을 어떻게 특별한 여행처럼 만들 수가 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이전보다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매일 차로 퇴근하던 길을 걸어서 가보거나 매일 가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로 갑자기 발걸음해 보는 것도 일상을 소소한 여행처럼 만들어주기도 한다고. 이전에는 안 보이던 것들이 비로소 새록새록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한 번쯤은 바퀴 달린 차에서 내려와 세상을 천천히 감상하듯 걸어보는 건 어떨까. 왼쪽, 오른쪽 옆도 살펴보고, 뒤도 한 번씩 돌아보면서.

 

지금의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게 무엇인지 구경하면서, 힘들면 벤치에 잠시 앉아 하늘도 올려다보면서, 그렇게 산책의 미학을 즐겨보자. 어느 정도는 파악했다고 생각했던 마냥 익숙하게 느껴지던 우리 동네마저 다르게 다가올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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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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