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두려움을 직면하고 서로를 사랑하길 - 타인에 대한 연민 [도서/문학]

마사 누스바움이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
글 입력 2023.06.2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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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듯 들었던 이름이 서가에서 보이는 일은 은근히 잦다. 그러나 그 책에 눈길이 가는 건 정말이지 드문 일이다. 아주 오랜만에 학자의 책을 내 의지로 읽어보았다. 마사 누스바움의 <타인에 대한 연민>이다.

 

 

 

무언가가 우리를 덮쳐오고 있어


 

“대부분의 사회는 인종, 성별, 성적 지향, 장애, 나이, 종교로 사람을 배제한 추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책의 4장, ‘혐오와 배제의 정치학’에 자리한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자마자 책을 읽는 내내 은은하게 느꼈던,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대한 부끄러움과 내 미래를 향한 두려움이 내 심장을 뚫고 올라왔다. 저자가 말하는 ‘역사’는 하나도 지나가지 않은 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당선되던 날 시작된 이 책은 이렇게 전 부분에 걸쳐 내 마음을 뚫어 놓았다. 읽는 내내 저자에게 몇 년 전이었을 이 이야기가 지금 나에게 닥쳐오고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두려움이 만들어낸 분노와 비난과 혐오하지 않고자 하는 자들의 무력감, 그 사이에서 자라나는 혐오와 배제의 정치. 내가 보고 느끼는 대한민국이다.

 

거대한 파도가 나라는 개인을 쓰러뜨리기 위해 덮쳐오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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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 your fears


 

그럼에도 저자는 우리가 혐오를 직시할 것을 요구한다. 원초적 혐오와 투사적 혐오, 이를 이용하는 정치를 설명하고 우리를 가두려 하는 이들과 품위 있게 투쟁하자 제안한다.

 

두려움을 직시하고, 나의 불공정한 두려움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에 반대하고, 투사된 혐오 너머를 바라보고, 스스로의 무릎을 꺾으려는 나 자신을 쓰러뜨려야 한다고. Face your fears. 최근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를 보고 온 언니가 가장 인상 깊었다며 들려준 이 대사가 생각이 났다.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숙의로 걸러진 두려움이며, 정당하지 않은 두려움은 생각 안에서 몰아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린 그 두려움과 함께 사랑해야 한다. 상대가 아닌 나를 통제하려 노력해야 하며, 서로를 신뢰하려 노력해야 한다. 냉소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책을 읽으며 저자가 나에게 권고하는 것들을 대강 적은 메모이다. 돌아보니 가장 어려운 것은 냉소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두려운 것들을 일부러 크게 비웃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과제이다.

 

이 글을 읽는 와중에도 ‘학생의 과제는 미루어지게 마련’이라는 말을 주워섬기며 냉소를 계속하고 싶었다.

 

 

 

시적인 것 이상으로 사랑하라


 

그러나 현실이 그런 내 등을 떠민다. 누스바움은 책의 7장에서 “국가의 미래에 희망을 품는 사람들은 목표를 갖고 노력해야 하며 그 목표는 시적인 것 이상이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 얼마나 시의적절한 말인가. 저자는 내가, 그리고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게으름을 한 문장으로 따끔하게 지적한다.

 

두려운 세상이다. 혐오가 정치를, 내 주위를 휩쓸고 있다. 그러니 소중한 가치를 남기기 위해선 누구보다도 현실적으로 싸워야 한다. 나의 특기인 ‘기한 임박한 과제 재빠르게 해치우기’를 발휘해야 할 때가 왔다.

 

지금이야말로 두려움과 혐오를 직시하고 세상을 사랑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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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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