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우리는 사실 모두 고양이가 아닐까? - 루이스 웨인展 [전시]

고양이와 인간을 사랑한 루이스 웨인의 따듯한 마음
글 입력 2023.06.26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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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은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드물다. 길거리의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조차 몇몇은 길고양이를 귀여워한다. 길고양이가 뭐가 좋냐며 툴툴거리는 사람들도 그들이 잔망스럽게 애교를 부리는 영상을 보면 크게 싫은 내색을 안 한다. 왜일까? 그건 바로 고양이가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한평생을 고양이의 사랑스러움을 그려내는 것에 열중한 화가의 전시가 궁금하여, 강동아트센터 아트랑에서 <고양이를 그린 화가 - 루이스 웨인展>을 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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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always bee in-tensely fond of dumb animals.


 

“저는 말 못 하는 동물들을 정말 좋아합니다(더 직접적인 해석은 ‘바보 같은 동물들을 항상 강렬히 좋아해 왔습니다’이다).” 전시실에서 마주한 루이스 웨인이 남긴 말 중 하나다.

 

웨인은 바보 같은 동물이라고 칭한 것치곤 고양이들을 퍽 똑똑하게 그려낸다. 그림 속의 고양이들은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고, 담배를 피우고, 눈싸움한다. 매번 상황에 맞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은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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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마음을 담아 고양이를 그리게 된 계기는 우연히 입양한 고양이 ‘피터’였다고 한다. 유방암으로 투병 중이었던 아내에게 웃음을 주고자 피터를 그려 선물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초반에 만났던 맨몸의 고양이들에게선 옷을 찾아볼 수 없었는데, Section 1이 끝날 때쯤엔 어느덧 사람처럼 번듯이 차려입은 고양이들이 그림 위를 가득히 채우게 되었다.

 

마치 우리가 모르는 고양이들의 세계를 슬쩍 엿보고 온 것처럼, 웨인은 그 어느 작가보다 생동감 있게 고양이를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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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ually, aren’t we all cats?


 

Section 2에서는 조금 더 ‘사람 같은’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골프 가방을 들고 멋을 잔뜩 낸 자세를 취하는 고양이, 담배를 비켜 물고 단안경을 쓴 고양이, 저녁 식사 후의 농담을 즐기는 고양이.

 

어라? 이쯤 걸어오니 루이스 웨인이 그리고 있는 건 고양이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 인간들의 세계라는 게 눈에 보였다. 이 구역의 고양이들은 어딘가 당대의 기득권층 같은 느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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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이러한 그림들이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며 품위를 지켜야 했던 당시의 문화를 풍자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깃을 세운 정장을 입고 얼굴 근육을 이리저리 일그러뜨리는 고양이들을 보니 어딘가 염세적인 표정으로 귀여운 고양이를 그려냈을 작가가 생각이 나서 조금 우스웠다.

 

작가가 느꼈을 환멸에 공감이 갔다. 온갖 멋은 다 부리며 동시에 겸양을 떠는 건 사실 현대의 우리 또한 똑같지 않은가. 나 또한 남의 못난 면은 빠르게 물고 늘어지면서 자신은 어떻게든 잘 사는 모습만 보이려 노력하는 것이 견디기 힘들 때가 많다.

 

이러한 사회상은 좀처럼 바뀌지도 않는 것 같다. 옷만 조금 바꿔 입힌다면 이 고양이들은 영원히 ‘시대의 인물상’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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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굳은 표정으로 Section 2를 지나갈 무렵, 다행히도 기대와 설렘을 담은 작품들을 만났다.

 

<오 서둘러!>와 <고양이 해적들> 속의 고양이들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들의 낭만,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다가올 희망찬 미래를 기대하는 듯한 고양이들이 두 귀 쫑긋 세운 뒷모습에서 작가의 애정을 느꼈다. 체리필터의 낭만 고양이가 생각나는 고양이 친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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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그림이 무섭다고요?


 

웨인의 ‘만화경 고양이’ 시리즈는 어딘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특이한 색채가 특징이다. 앞선 그의 작품에서 보이지 않던 특징에 그의 정신병이 익히 알려지며 이러한 변화가 그가 싸워온 조현병의 악화에 따른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는데, 전시는 관람자가 해설을 읽는 내내 그 추측을 부정한다. 웨인의 어머니는 태피스트리를 디자인하는 사람이었고, 그의 작풍 변화는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존경의 영향이라는 해명이다.

 

연거푸 오명을 벗기려 노력하는 해설을 읽으며 ‘정신병 때문에 화풍이 좀 달라지면 어때서 그래?’라고 속으로 툴툴거렸다. 루이스 웨인이 갑자기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 커졌다면 그 계기가 극빈자 병동에 정신병으로 입원한 것이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조현병이라는 질병을 앓으면서도 그가 그림을 그리려고 했고, 그것에 웨인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는 것은 그 어떤 설명으로도 모두가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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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툴툴거린 것과는 별개로 작품은 아주 흥미로웠다. 색의 채도 자체는 다른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색을 사용한 부분 선정이 특이했다. 배경에 쓸 법한 색을 고양이에 사용하거나 포인트로 조금씩 쓸 법한 색들을 넓은 면적에 칠해놓은 점이 인상 깊었다.

 

태피스트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만화경 고양이’ 시리즈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화려하고 기하학적인 배경 속의 고양이들이 흥미로웠고, 어딘가 그 무늬에 어우러진 듯한 느낌도 받았다. 루이스 웨인은 양손을 동시에 사용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과연 그 특성을 잘 살려 태피스트리 특유의 대칭감도 야무지게 살려냈다.

 

생각보다 전시된 작품 수가 많지 않아서 아쉬웠다. 기회가 된다면 ‘만화경 고양이’ 시리즈를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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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생겨 찾아본 만화경 고양이 시리즈의 다른 그림

 

 

 

우리가 고양이었으면 좋겠어


 

루이스 웨인의 작품 속 고양이들은 점점 더 사람 같아졌다.

 

그들은 바쁜 도시를 오가고, 골프를 치고, 부엌일을 했다. 일상 속 고양이들의 모습이 정말로 사람 같았다. 아니, 우리가 고양이 같았다. 자료 화면 모니터 속 바쁜 당대의 도시를 걸어가는 사람들 위로 고양이가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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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사람이 고양이었다면 좀 덜 못나 보였을까?

 

최근 계속해서 이어지는 골프장 건설 소식에 스트레스를 받던 무렵 골프 치는 고양이들을 보니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자연 파괴적인 스포츠는 대체 언제부터 부유층의 유행이었을까! 산을 깎아내고 농민을 쫓아내는 극악무도한 짓도 이미 20세기의 영국에서부터 만연한 행위였을 테다. 쥐를 골프공으로 사용하며 우악스러운 표정을 짓는 고양이들이 매우 풍자적으로 보였다.

 

웨인이 이를 의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바보 같은 동물들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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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사랑의 표현


 

고양이를 통해 인간을 풍자하기도 했지만, 루이스 웨인은 동물과 인류 모두를 다정하게 사랑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고양이를 깊이 사랑하여 사람들에게 내보일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정신병과 싸우는 중에도 고양이를 그렸고, 고양이 속의 사람을 그려냈다.

 

그 모든 과정에서 그의 그림 속에는 유머가 살아 숨 쉬었다. 당장 나만 해도 사람들이 밉고 못나 보여 가끔 견디기 힘든데, 인생의 굴곡이 요동쳤던 그는 어땠을까. 끊임없이 무언갈 그리려는 그의 노력이 존경스러웠다. 이게 바로 예술가의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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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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