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는 이야기꾼, 에드워드 호퍼전

글 입력 2023.06.17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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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창문, 1928

 

 

현대인의 고독을 다룬 그림으로 평가받고있는 에드워드 호퍼.

 

호퍼의 그림을 이미 알고있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도시 속에서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순간들에 공감하고 어딘가모를 허전함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항상 그림 속 장소를 우연히 지나가다 봤다는 듯 멀찍이 서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에드워드 호퍼가 왜 이런 그림들을 그렸는지에 대해 이번 전시를 보면서 약간의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전시장에는 그가 학생 시절 그렸던 초기작부터 뉴욕에서 삽화가로 일하며 그렸던 그림, 파리, 미국 서부, 멕시코 등을 여행하며 그렸던 그림,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까지 그의 일생이 담긴 작품들이 전시되어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누군가를 가까이서 클로즈업해 그린 그림은 많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을 섞는 것을 즐기지 않았던걸까?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듯 호퍼는 주변인들에게 꽤나 과묵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전시를 보는 내내 그는 내게 미스테리한 관찰자였다. 그렇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도시를 살아가며 한번쯤 멈추어 가만히 지켜보았을법한 순간들을 보며 말없는 호퍼의 시선이 나와 비슷한 것 같다는 동질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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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집,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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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로 또는 와인 가게, 1909

 

 

그의 그림에서 특이한 점은 사람들이 풍경 속 주인공이지만 가장자리로 밀려난듯한 독특한 구도를 가진 풍경이 많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구도가 그의 시그니처와 같은 고독함이라고 생각한다.

 

사각형의 프레임 속에서 주어지는 제한된 정보로 뭔가 많이 생략된듯한 기분을 불러일으키고 상상력을 증폭시키는건 의도적이라고 봐도 될까. 어딘가 비어보이는 느낌을 주지만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내용을 담고있는듯했다.

 

그 내용은 그림 속 장소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호퍼의 고요한 시선에 담겨있다.


늦은 여름, 따사로운 강가를 지나가던 호퍼는 야외에 나와 앉아있는 사람들이 조용히 대화하고있는 가게 앞에서 멈췄다. 건물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호퍼가 걷고있던 길 위로 그림자를 길게 늘어트렸다. 햇살을 받아 빛나는 다리 위로 길게 뻗은 포플러 나무들이 보였다.


원래 글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옆에 삽화가 들어가있었다면, 이제 그 글을 쓰는 사람은 호퍼가 아닌 그림을 보는 관람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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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그림자, 1921

 

 

히치콕의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 그림.

 

위에서 아래로 창 밖을 내려다보는듯한 구도는 그가 어떤 이미지들을 통해 영감을 얻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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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저녁, 1914

 

 

개인적으로 이 그림이 꽤 마음에 들었다.


파리에서 풍경을 관찰하면서 에드워드 호퍼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았을 것이다.

 

어느날 늦은 저녁, 어떤 이유에서 카페에 들어갔더니 광대 분장을 한 누군가가 앉아있었고 (또는 앉아있는 상상을 했고) 호퍼는 멀찍이 앉아 옆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그 사람을 관찰한다. 담배를 피우며 뒷모습만 보여주는 두 사람과 한 테이블에 마주앉은 광대를 보고있던 중, 붉은 볼터치를 한 종업원이 그들의 테이블로 다가갔다. 오리엔탈식으로 맞추어진 주황, 노랑, 연두색 연등들이 하얀 분칠을 한 종업원의 얼굴을 비췄다. 해가 저무는 푸른 배경 속에서 광대의 하얀 옷이 밝게 빛났다.

 

이 그림 주변에는 에드워드 호퍼가 파리의 사람들을 그린 작은 드로잉들이 액자에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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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1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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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있는 파리지앵 여인, 1906-07

 

 

이 사람들을 훑어보고 마지막으로 위의 광대가 그려진 '푸른 저녁' 그림을 봐서 그랬던걸까.

 

미국을 떠나 파리에 여행을 간 호퍼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느꼈을 흥미로움을 자연스레 상상해보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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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지붕들,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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콥의 헛간과 떨어져있는 먼 집들, 1930-33

 

 

햇빛이 강렬하게 비치는 순간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만큼 선명한 기억을 남긴다. 그래서일까, 호퍼는 밤에도 환하게 불이 켜진 도시를 벗어나서도 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강한 풍경을 많이 그렸다.


호퍼 부부가 살던 1920년도는 도로가 확장되고 자동차의 보급이 본격화 되던 시기였다. 그들은 중고로 자동차를 매입해 함께 미국 서부, 멕시코 등을 평생에 걸쳐 여행했다. 호퍼는 여행을 다니며 그림의 주제를 떠올렸다고 한다. 풍경은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배경이자 이야기이다. 지나가는 풍경은 호퍼에게 많은 것들을 말했을 것이다.

 

그는 그것들을 자신의 그림에 남겼다.


스쳐지나가는 사람에게 지나가는 사람들은 풍경의 일부다. 때론 사람들이 만든 건물들에서도 누군가의 흔적과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여행을 간 몬헤건 섬에서는 해안가를 걸어다니며 암석과 파도를 그렸는데 거칠게 깎인 돌들을 보며 어떤 시간의 흔적을 읽었을지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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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의 에드워드 호퍼, 1950

 

 

전시회에서 상영되고있던 한 영상에서, 에드워드 호퍼는 미술사적으로 존재하지만 그와 비슷한 사람이 없기에 홀로 뻗어있는 가지와 같다고 말했다. 홀로 뻗어있는 가지. 호퍼는 그 말처럼 어딘가 고독해보이는 그림을 그렸고 심지어 평소 생활에서도 과묵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는 호퍼가 그런 그림을 그려온 이유가 호퍼와 풍경이 서로 이끌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허전한 풍경에 마음을 기대는 사람들이 있다. 어딘가 쓸쓸한 그림 속 이미지는 많은 사람들을 호퍼의 전시회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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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건물들, 이스트강, 1930년경

 

 

일상에서 스쳐지나가며 언젠가 본듯한 풍경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내가 느낀 감상이 마치 퇴근하고 지하철을 타며 본 도시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에드워드 호퍼는 1900년대 미국에서 살았지만 그가 살았던 하루와 우리가 살고있는 하루는 꽤나 많이 닮아있다. 이것이 호퍼의 그림이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히 떠오를 이미지인 이유가 아닐까.



이미지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김효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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