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편협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 '괴물' [영화]

“괴물은 누구게?”
글 입력 2024.01.20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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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영화 <괴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특별히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누구나 알고 많은 이들이 볼 법한 작품을 택하곤 한다. 동시에 그 작품이 왜 좋은지 생각할 기회가 사라진다. 그 작품이 좋은 이유에 대해 이미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필요한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영화를 흘려보내기 일쑤였다. 하지만 영화관을 빠져나오는 순간부터 모든 기억을 기록하고 싶은 영화를 발견했다. 흘려보내지 않도록, 남들의 말에 따라가지 않도록 모든 장면을 기억하고 싶은 영화. 기억력의 한계가 안타까워지고 기억의 휘발에 조급해질 만큼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 영화. <괴물>에 대해 써보고 한다.


 

 

1. 사랑


 

영화 <괴물> 2023년 11월 29일에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으로, 제76회 칸 영화제에 초청되어 각본상과 퀴어 종려상을 받았다.

 

 

괴물_포스터.jpg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걸어도 걸어도> 등 여러 작품을 통해 느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 특유의 잔잔함이 <괴물>에서도 드러났다. 그간 접했던 그의 작품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지극히 보통의 일상을 그려내면서도 그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 상황을 담는다.


<괴물> 역시 사오리가 세탁소에서 일하고 그녀와 함께 단란하게 지내는 미나토의 모습으로 이야기의 서막을 연다. 편안한 일상 속 미나토의 혼란과 함께 갈등이 시작된다. 역동적인 것, 스펙터클과는 거리가 먼 잔잔함이 이어지지만, 감정 하나만은 그 속을 헤집는다. 많은 언어를 가져와 설명해도, 그림으로 표현해도 온전히 전하기 힘든 무형의 것. 감정이란 비단 그런 것이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마치 화가의 섬세한 붓 터치처럼 영화 속에 세밀하게 감정을 그려 넣는다.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어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좋아해서 엄마가 원하는 평범한 가족을 꾸릴 수 없다. 그를 좋아해서 멀리했고 그가 좋아서 함께했다. 미나토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는 사랑이었다.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해서 돼지 뇌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병이 나아졌으면 하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거짓말을 했다. 그 사람이 오해하기 전에 거짓이라고 고했다. 요리는 모든 행동을 부정당했고 그 이유는 사랑이었다.


미나토의 거짓말로 시작된 갈등이 <괴물>의 주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오해와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등장했다. 모든 말과 행동의 이유를 찾았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모든 순간을 다시 보아야 한다.


미나토가 달리는 차 문을 열고 뛰어내렸을 때도, 사오리에게 돼지 뇌에 관해 질문했던 순간도, 귀가 시간을 지키지 않은 채 사라졌던 순간도 모두 하나의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영화를 감상하기 시작한 관객은 그 이유를 찾아 헤맨다. 사소한 것 하나 쉽게 지나치거나 흘러가게 둘 수 없다. 끝내 모든 것이 밝혀지기 전,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 사이에서 하나의 질문이 관객의 길잡이가 된다. 어쩔 수 없이 그 질문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괴물은 누구게?”

 

 

 

2. “괴물은 누구게?”


 

괴물은 누구일까? 관객은 127분간 괴물을 찾아 나선다. 교장일까, 호리일까. 그것도 아니면 사오리인가? 미나토와 요리가 작은 괴물일 수 있겠다 싶기도 했다.


<괴물>은 영화 <라쇼몽>의 기법을 차용한 듯 세 가지 시점으로 나누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를 총 3막이라고 한다면 1막은 사오리, 2막은 호리, 3막은 미나토와 요리의 시점이다. 1막에서는 미나토의 말에 따라 호리가 악인인 탓에 발생한 갈등이 전개된다. 2막은 그 갈등이 오해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을 풀어내지만, 미나토의 발언에 관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리고 마침내 3막에서야 미나토가 거짓말을 하게 된 이유가 밝혀진다.


이러한 구조의 이야기 진행 속에서 이리저리 화살을 돌렸다. 호리가 이상한 사람 같다가도 교장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느꼈다. 걱정이 지나치고 의심은 오해일 수 있기에 그 화살이 사오리를 향하기도 했다. 미나토와 요리의 알 수 없는 행동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달리는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린 미나토의 행동과 아빠처럼 될 수 없다던 말을 1막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2막에서 미나토가 호리 선생에 관해 거짓말을 늘어놓은 것과 학급 친구들의 물건을 집어 던지는 것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이 모든 이야기의 이유이자 관객을 ‘괴물’로 만든 궁극적인 사실이 3막에서 드러난다. 미나토가 요리를 좋아해서. 그 이유뿐이다. 성별이 같은 친구를 좋아하는 것 때문에 행동의 이유를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다. 동성과 가정을 꾸릴 수 없는 현실에 아빠처럼 될 수 없다고 말했고, 괴롭힘당하는 요리를 직접 도와줄 수 없어서 물건을 던졌다. 그의 행동을 쉽게 이해할 수 없다고 느꼈던 것이 되돌아와 나의 편협함을 비추었다. 결론은 영화 속 등장인물 중 그 누구도 괴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결국은 쉽게 오해하고 편견을 가진 채 화살을 돌려댄 내가 괴물이었다. 그런 오해와 편견이 도사리는 세상이 ‘괴물’이었다.


그 어떤 퀴어 작품을 보아도 단 하나의 사실만은 꼭 떠오르고 만다. 정상성의 범주는 대체 누가 정한 것일까. 그 범주를 벗어난 것에 대해 혐오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면서도 사람들은 고치지 않는다. 영화 <괴물> 또한 지겹도록 바뀌지 않는 세상을 향해 일침을 놓는다. 


요리는 집 앞에 찾아온 미나토에게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겼다며 병이 다 나았다고 말한다. 이내 다시금 거짓말이라고 전한 후에는 학대의 소리가 들려온다. 미나토는 요리를 괴롭히는 학급 친구들 사이에서 그와 싸우는 것을 택한다. 그 어느 때도 그들에게 솔직함을 안겨주지 않는다. 가면을 쓴 사람처럼 서로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속인다. 세상은 그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빼앗았다.


지겹도록 바뀌지 않는 세상과 정상성의 범주, 그 모든 것을 말하는 혐오의 눈빛.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동성애는 여전히 힘든 현실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고통은 오로지 그들이 책임져야 한다. 아파하는 사람만이 존재하는 가시밭길. 아무도 그 가시밭길을 꾸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그 길로 떠민 적 없다고 잡아뗀다. 사랑을 이유로 그 길을 걸어야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무엇을 탓하고 누군가를 원망할 수조차 없다. 그 길에서는 누구나 외로워지고 괴로워진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것을 감내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평범한 인간으로서 누릴 권리마저 빼앗긴 상태로 책임만 늘어간다. 그 사람과 그 사랑을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져야 할 것들. 그 책임을 던지는 사람들이야말로 괴물이 아닐까.


가시밭길을 만든 세상이야말로 ‘괴물’이다.


*


영화가 끝나고도 의심을 거둘 수 없다. 화살을 이리저리 돌려댄 내가 괴물은 아닐지, 공평하지 못한 잣대에 공감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리고 가시밭길을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은 아닐지 의심한다. 스스로 그렇지 않다고 믿어도 <괴물>이 이끄는 심판대 앞에서 조금의 편협함도 내비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영화 <괴물>의 매 순간이 소중하다. 본능적으로 외부로 화살을 돌리기 전에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만든다. 세상을 탓하기 전에 나는 그렇지 않다고 확신할 수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니 영화를 관람한 모든 이들의 마음이 모여 더 나은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악의 없는 거짓말을 내뱉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기를, 누구나 누려야 할 자유를 되찾기를 바란다.

 

 

[박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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