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화가의 삶과 그림,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 대하여 -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

화가의 삶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
글 입력 2024.04.0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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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앞서 살아간 화가의 삶과 조우하다


 

세상살이가 너무나 두려워 오들오들 떨어본 적이 있나요? 사람들의 욕망과 질투, 비교에 주눅들고 스스로를 지켜낼 힘조차 잃어서 나만의 동굴로 숨어버린 적이요. 그리곤 축축한 벽에 몸을 기대고 쭈그려 앉아 세상 사람들의 악독함을 비난하며 끝도 없는 절망에 빠져보신 적은요? 글의 시작에서부터 우리 모두의 비밀스런 치부를 꼬집은 이유를 물으신다면, 제가 꼭 위와 같은 상황에 빠져있던 때에 이 책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던 당시, 저는 너무나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혼란한 세상 속에서 초라한 나를 붙들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저의 내면은 한바탕 흔들렸지요. 그때 이 책을 만났습니다.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은 그림을 소개하는 책이지만, 동시에 대리작가가 집필한 화가들의 에세이와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 책을 저술하신 성수영 저자께서 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다가가기 위해 화가들의 삶을 끌어들여 그림을 설명하셨기 때문이지요. 여기에서 보통의 미술 관련 도서와 차별되는, 이 책만의 흥미로운 점이 드러납니다.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화가의 삶을 알아가는 가운데, 그들의 삶이 우리의 것과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미술사에 굵은 획으로 이름을 새긴 화가들의 삶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삶에도 사랑이 있었고,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헌신, 그럼에도 찾아오는 고난과, 무난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존재했지요. 마치 우리와는 다른 차원의 존재로 느껴지는 화가의 삶도 이와 같은 인간적인 요소를 지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삶을 살아낸 화가들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이기도 했고 혹은 그렇지 않기도 했으나, 영원한 가치를 쟁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그들의 수난기는 아름다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화가들의 ‘가치’란, 예술에 대한 열망이었고, 동시에 가난에서 벗어나려던 현실적인 사투이기도 했지요. 그리고 저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다시 세상으로 나설 용기를 얻었습니다.


서두가 길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만난 27명의 화가 중, 몇 명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 글을 읽은 뒤의 여러분에게도 무엇인가 가슴을 울리는 것이 남을 수 있기를 바라며, 화가 특유의 질감으로 표현되는 그림 속 또 다른 세계로 떠나볼까요.  

 


 

계속, 우리의 삶은 롤러코스터와도 같아서


 

여러분 중 누군가는 이러한 질문을 떠올릴 수도 있겠습니다. "화가들의 삶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데?" 물론 화가의 삶을 알면 여러모로 도움이 되지요. 그들의 미술을 이해하고 우리의 교양을 쌓아 더 많은 것을 보는 눈을 만듭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러한 것들보다도 화가의 삶을 이해하는 것에는 더욱 근본적인 효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초라해보이는 우리의 삶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끔 만든다는 것입니다. 나의 삶도 나름대로 괜찮겠구나, 하고 안심하게 된달까요?


책 속 27명의 화가들은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평생 화가로서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림만 아는 순진한 사람이었거나 빠르게 인정받아 탄탄대로를 걸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떤 화가들은 발칙한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고, 그들만의 예술세계를 인정받지 못해서 오랫동안 조롱과 비난을 감수하며 살기도 했지요. 대표적인 사례로서 두 화가를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인상주의의 개척자라고도 불리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에 대해 알아볼까요? 모네의 담대한 성격과 예술에 대한 강한 집념을 엿볼 수 있는 일화는, 그가 프랑스 파리의 생 라자르 역 사무실을 급습한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는 역에 정차한 기차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멀쩡한 플랫폼을 폐쇄하고 기차를 멈추도록 요구해야 했지요. 그러나 당시는 아직 모네가 그렇게 유명하지 않던 시절. 자신의 명성을 무기로 내보이기엔 너무나 부족했던지라 그는 꾀를 냅니다. 화려한 옷과 고급스러운 지팡이를 들고선 무턱대고 서부역 사무실에 찾아가 “나는 클로드 모네요. 나 알지?”라며 자신이 어느 유명 인사인 것처럼 가장했습니다.

 

거만한 자세로 등장한 인물이 “나 알지?”라고 묻는데, “모르겠습니다!”라며 솔직하게 고백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결국 역장은 모네의 기세에 완전히 휘말리고 맙니다.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꽤 높으신 분으로 보이는 모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기차를 역에 멈추고 플랫폼을 며칠간 폐쇄하라는 요구에도 흔쾌히 응했지요. 그렇게 모네는 홀로 역을 점거하며 여섯 점의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아무리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라지만 거짓말을 하여 수많은 승객들의 불편을 야기한 모네가 그렇게 순진하게만 보이지는 않지요? 이처럼 화가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약간의 잘못도 기꺼이 저지르는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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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 La gare Saint-Lazare >)

 

 

다음 화가의 이야기도 알아볼까요. 이번 일화는 영화 <올드보이>에 등장한 <비통한 남자> 그림으로 유명한 벨기에의 화가 제임스 앙소르(James Ensor, 1860~1949)입니다. 어릴 적부터 그는 개성 있는 화풍의 소유자였습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얼굴을 분홍색으로 칠하고 머리는 적갈색으로 칠하는 등,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특이하기만 한 그림을 그렸지만 자신은 천재임에 분명하다 확신하곤 했죠. 당연히 세상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평론가들과 시민들, 심지어 그의 가족들마저 그의 그림을 비난했습니다. 


인정받지 못하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면서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지만 흥미를 보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결국 가진 돈마저 바닥나버려 작업실과 그의 모든 작품을 헐값에 내놓았음에도 작품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죠.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던 앙소르는 나무와 마분지 등 여러 곳에 다양한 재료를 섞어 새로운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며 평가의 전환점을 꾀했지만, 여전히 세상은 냉담했습니다. 그의 청춘은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겨우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빛이 들기 시작했지요. 열일곱의 나이로 그림을 시작한 지 대략 20여 년이 되던 무렵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알아본 두 화가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시겠나요? 바로 훌륭한 화가로 칭송받는 예술가들의 삶이 이상적으로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때때로 상식에서 어긋나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고, 몇십 년 동안 싸늘한 비난을 들으며 무시당했지요. 그렇지만 그들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고 꿋꿋이 살아갔지요. 오늘날에 그들이 '생 라자르 역 고객들에게 불편을 야기한 거짓말쟁이’나 ‘기이하고 무식한 그림만 그리는 미치광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지는 않습니다. 대신 그들의 눈부신 예술적 성취가 알려진 덕에, 두 화가는 미술사에 길이 이름을 남긴 명화가로 기억되었지요.


여기서 삶의 복합적인 성격이 드러납니다. 비록 특정 시점에 한 인간의 삶이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삶의 다음 순간은 예외없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다음 순간에 인간이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삶은 조금이나마 괜찮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요. 이것은 곧, 현재의 우리가 못난 모습이더라도 언제든 개선의 가능성은 열려있으며, 지금 순간이 이후로 펼쳐질 상승세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한 시점의 실패가 우리 삶 전체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든 변화하고 진보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니까요.


이렇게 앞서 살아간 화가들의 삶을 살펴보면, 현재의 우리 삶도 그리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잘못을 무조건으로 옹호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인간은 언제든 잘못을 저지르고 현재의 나는 부족한 존재일지언정, 우리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를 책임져줄 존재는 나뿐이니 어떻게 해서라도 구제 불능인 나를 이끌고 살아가야 하지요. 저는 우리의 발전을 위한 노력의 시작점에서 희망찬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습니다. 설령 지금껏 잘못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왔더라도, 현재의 나는 무능하기 짝이 없더라도, 먼저 살아간 그네들의 삶도 그러했듯이 우리의 미래도 꽤나 그럴듯할 수 있다고요. 우리는 스스로 성장을 구하며 미래의 행복을 쟁취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입니다.   

 

 

 

사랑, 화가가 삶을 담아내는 이유


 

이제 화가의 삶과 함께 그들의 그림을 살펴봅시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화가와 그림은 익숙한 것이 아닙니다. 당장 오늘을 살아내려 몸부림치는 매일을 보내다 보면 예술이니 그림이니 하는 것은 별세상 이야기처럼 들리지요. 그래서 미술에 관심 좀 있는 사람들에게 으레 묻곤 합니다. “대체 화가들은 왜 그림을 그리는 거야?”


27명의 작가마다, 그리고 그들 삶의 어떤 시점인지에 따라 다양한 답이 나올 테지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며 그중 하나의 이유를 추측해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아래의 그림을 본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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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인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Peder Severin Krøyer, 1851~1909)가 1888년에 그린 그림입니다. 크뢰위에르는 덴마크 최북단에 있는 평범한 시골 마을 스카겐을 무척이나 사랑했습니다. 특히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르는 무렵의 신비로운 바다와 하늘에 푹 빠졌고, 그는 이곳에 정착하여 가정을 꾸리고 예술 활동을 이어갔지요. 


위의 그림은 스카겐에 모인 화가들이 즐거운 파티를 벌이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지요? 햇살은 따사롭게 내리쬐고, 푸르고 싱그러운 내음이 가득한 잔디밭 위로 근사한 파티상이 마련되었습니다. 파티상 주위로는 크뢰위에르를 비롯한 동료 화가와 가족들, 모두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분명 누군가가 이 만남을 기념하며 건배를 제안했을 테고, 그들 중 하나가 낭랑하게 목소리를 높여 건배사를 선창했겠지요. 그 뒤를 따라 파티의 모두가 잔을 높이 들고서 기쁨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본 순간, 저는 너무도 평화롭고 행복해 보이는 장면에 시선을 빼앗겼습니다. 현실에 존재할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세요. 신사들의 얼굴에는 활짝 웃음꽃이 피어있고, 엄마로 보이는 노란 드레스의 여성은 옆에 앉은 아이에게 함께 건배하자며 권하고 있지요. 등을 보이고 있는 남색 드레스의 여성도 수줍게 잔을 들어 올려 건배에 동참하고 있네요.


더 상상을 이어나가 볼까요. 저는 투명 베일을 쓰고 그들과 조금 떨어진 잔디밭 위에 서서 파티를 지켜봅니다. 제 볼을 스치는 바람은 산뜻하고 머리 위로 햇빛이 따스합니다. 저 멀리서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왁자지껄 떠들고 원피스를 입은 아이는 재잘재잘 이야기하지요. 그들의 목소리가 겹치고 겹쳐 뜻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행복의 순간 그 자체로 보입니다. 


크뢰위에르가 파티의 한가운데에 서서 동료 화가들과 함께 예술과 사랑, 삶을 논하다가 다시 잔을 쨍그랑 맞부딪히던 순간. 영롱한 소리가 그들의 주위를 감돌며 황홀하게 울리고 사람들은 와하하 웃으며 모두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하던 순간. 이 이상의 행복은 존재할 수도 없으리라는 충족감으로 크뢰위에르의 가슴이 차오릅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름답고 소중한 행복의 순간을 인식한 찰나에, 그는 ‘그림을 그려야겠다’라고 다짐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습니다. 크뢰위에르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순간의 행복을 담아냄으로써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영원한 것으로 드높이는 작업입니다. 이것이 크뢰위에르가 삶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방식이겠지요. 스카겐과 주변 동료 및 가족들, 그리고 즐거운 모임의 분위기까지, 그는 사랑하는 것을 영원한 그림에 담아 간직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은 화가가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방식인 것이지요. 온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려서 캔버스 속 세상에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그림 속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화가 자신과 더불어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쁨이 영원하길 소망하며 그림을 그렸으니까요. 그렇게 탄생한 캔버스 속 세상은 시간의 흐름이나 풍화와 소멸의 제약도 없이, 인간 세상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고요히, 또 평화로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지지, 오직 한 사람의 꾸준한 믿음만으로


 

이번에는 또 다른 형태의 사랑에 대해 알아볼까요. 화가에게 평생토록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준 인물의 이야기를 알아보지요. 이야기의 주인공은 오늘날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와 그의 동생 테오(Theo Van Gogh, 1857~1891)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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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 Self-portrait >, < Portrait of Theo van Gogh >)

 

 

빈센트 반 고흐가 방황을 거듭하고 온갖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비범한 천재였음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의 곁에는 늘 동생 테오가 있었지요. 그는 아무도 빈센트의 탁월함을 알지 못했을 시절부터 그를 지지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갤러리스트로 일하던 테오는 자신의 연봉에서 3분의 1가량을 떼어내서 빈센트에게 생활비로 부쳐주었고, 갤러리스트로서의 능력을 살려 그의 작품을 비평해주거나 파리의 여러 미술관과 갤러리에 그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 시기에 테오는 빈센트에게 당대의 훌륭한 예술가를 여럿 소개해주었고, 이러한 만남을 통해 빈센트는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감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빈센트의 작품세계는 황금기를 맞이하지요.


테오는 평생 빈센트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끝없이 방황하고 좌절하며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마는 빈센트를 양지로 끌어올린 것은 오직 테오 뿐이었지요. 형이 언제 성공할 수 있을지, 혹은 그러기도 전에 삶을 놓아버리는 것은 아닐지 분명 우려했겠지만, 테오는 빈센트가 삶과 예술을 놓아버리지 않도록, 그래서 마침내 천재적인 예술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꾸준히 사랑과 지지를 보내왔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테오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생계유지가 될 만한 일은커녕, 무엇 하나 진득하니 해내지도 못하는 형에게 헛된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며 혀를 차는 사람들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테오는 사람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형을 끝까지 지지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테오가 형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또 그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었지요.


저는 이러한 형제의 모습에서 '지지의 힘'을 깨달았습니다. 오직 한 사람의 애정과 믿음, 헌신만으로도 다른 한 개인은 온전한 자신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죠. 테오의 도움을 받고 성장한 빈센트가 마침내 알을 깨부수고 자신만의 예술성을 꽃피워냈듯, 우리의 애정어린 지지는 그 사람이 계속해서 삶을 꾸려나가며 고유한 자기로서 살 수 있게끔 합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둥지를 무너뜨리고 알을 깨부수며 세상으로 나와야 하지만, 누군가는 바깥세상의 논리와 규칙에 어울리지 못하고 알을 깰 힘조차 잃어버려 방황하곤 하지요. 그러나 상대와 나, 우리를 벗어난 외부 세계의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내가 상대를 믿고 지지한다면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서는 일은 분명 이룰 수 있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형태의 사랑은 위대합니다.

 

그렇게 테오는 형을 지지했습니다. 그가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주고, 예술을 놓지 않도록 격려했으며 죽음을 꿈꾸는 형에게 희망을 불어넣었지요. 빈센트가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그 괴로운 길을 함께했습니다. 어느 누가 그런 사랑을 해줄 수 있었을까요. 그러니 분명 테오는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형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꾸준한 지지의 힘이 언젠가 반드시 형의 삶을 ‘화가 빈센트 반 고흐’로서 꽃피우게 할 것이라는 점을요. 


이러한 형태의 사랑이 담긴 그림도 존재합니다.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니까요. 그러한 사랑 속에서 빈센트의 예술이 탄생했습니다. 사랑을 담아 지지하는 마음은 이렇게 우리의 삶을 밝히고 예술을 꽃피웁니다.

 

 

 

극복, 과거의 인물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27명 화가의 삶을 들여다보면 영화 속 슈퍼히어로가 자신의 능력을 깨닫기 전까지 겪는 무수한 고난을 보는 듯합니다. 예술을 하는 자에게는 시련이 따라야 한다는 말처럼 화가들의 삶은 그야말로 고통의 연속입니다. 평생의 가난과 그로 인한 이별, 인정받지 못하고 사람들과 불화하는 외로움까지. 화가들의 삶은 좀처럼 편안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매일 빈곤과 비난의 전쟁터로 나가 맞서 싸웠습니다. 


그렇지만 삶에 드리운 그림자가 그들의 의지마저 꺾지는 못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예시가 16세기 베네치아에서 활약한 화가 틴토레토(Tintoretto, 1519~1594)였습니다. 그는 ‘회화의 군주’라며 당시 최고의 권위를 누리고 있던 거장 베첼리오 티치아노(Vecellio Tiziano, 1488?~1576)의 화실에서 2주 만에 쫓겨났습니다. 제대로 된 미술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런저런 뒷말을 듣게 되며 외톨이가 되었지만 미술만은 포기하지 않았죠. 혼자 시체를 해부하며 해부학을 공부하고 빛과 공간에 대한 실험을 통해 명암을 공부하면서 기초부터 쌓아 나갔습니다. 실력을 쌓은 후에는 미술계에서 잊혀진 자신을 알리고 유명세를 얻기 위해 무료로 그림을 그려주는 과감한 마케팅을 감행하거나, 유명 화가들보다 빠르고 저렴하게 그림을 그려주는 식으로 자신의 그림을 홍보했지요. 그 결과 틴토레토는 대성공을 거둡니다.


또 다른 사례도 알아볼까요. 긴 얼굴과 목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는 태생부터 불우했습니다. 그가 태어날 무렵 가업이 실패하면서 가정이 기울었고 심지어 열여섯 살 때는 결핵에 걸려 천천히 죽어갈 운명이었죠. 결핵으로 인해 기침을 하거나 피를 토하는 것을 숨기기 위해 모딜리아니는 일부러 술과 마약을 탐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알코올중독에 걸려 평생을 시달렸고, 그를 통제하고 이용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가난에 허우적대곤 했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연애도 여러 번이었죠. 모딜리아니의 삶은 점점 나락으로 향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모딜리아니는 자기 안의 미약함과 주변인들의 악랄함에 점점 시들어갔습니다. 그럼에도 미술만은 포기하지 않았지요. 그는 미술을 유일한 삶의 의미로 삼아 살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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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데오 모딜리아니, < Young Woman >)

 

 

이처럼 화가들의 삶은 눈 뜨고 보기 괴로울 정도로 참혹했습니다. 세상은 예술가를 쉬이 내버려두지 못하는 모양인지, 죽음까지도 괴로웠던 화가들이 상당했지요. 그렇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단지 가슴 아픈 비극에 불과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의 불우한 삶 속에서도 활활 불타고 있는 열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거장에게 배척당해 혼자가 되어도, 누구도 자신을 고용하려 하지 않아도, 가난하고 병약하더라도, 심지어 자신을 바른길로 인도해줄 사람 하나 없더라도 화가들은 가장 소중한 것만큼은 결코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그림이란 삶의 위안일 뿐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열망이고 열정이며 동시에 세상과의 투쟁이었습니다.


화가들의 삶은 말합니다. 세상의 속된 가치가 마음을 뒤흔들고 어떤 고난과 모욕, 절망이 우리를 짓누르더라도 결코 내면의 힘을 빼앗기지 말 것. 삶의 아름다움을 늘 가까이 두고, 우리의 삶을 최대로 누리며 살아갈 것. 이것이 화가들이 삶을 통해 지켜온 것이지요.


피할 수 없고 즐길 수조차 없다면 견디는 수밖에 없겠지요. 삶은 괴로운 것입니다. 누구도 택한 적 없는 고난이 펼쳐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다시 동굴 속으로 숨어들어가고 싶어집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도 살아볼 만할 것입니다. 견뎌볼 만할 것입니다. 온갖 시련을 겪으며 살아온 인물들도 마침내 오늘날에는 위대한 예술가로 칭송받지 않습니까. 우리도 그렇게 믿어보는 겁니다. 극복해내야 한다고, 끝까지 살아봐야 한다고 믿으며 견뎌봅시다. 우리의 이야기의 끝에도 조금은 그럴듯한 이름표가 붙어있을지 모르니까요.

 

 

 

닫으며 - 사랑해야만 한다


 

글의 시작 단계에서 책을 소개하던 중, 이 책은 ‘대리작가가 집필한 화가들의 에세이 같은 느낌’을 준다고 말씀드린 것을 기억하시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습니다. 결국 이 책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고난과 괴로움, 끔찍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어쩐지 묵직한 감동이 전해져오고 우리의 마음속에서 용기의 불씨가 타오르는 것은 그 이야기가 우리와 같은 인간이 실제로 겪은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화가들은 저마다의 굴곡을 품고 살아왔습니다. 그럼에도 평생 사랑만은 지켜왔지요.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그림과 예술을 사랑하고, 또 사람들을 사랑했던 화가들. 그것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었겠죠.


고통으로 가득한 삶을 어째서 헤쳐가야 하냐는 질문에, 단지 ‘살아야 하니까’,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라는 이유로 여러분을 격려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책 속 화가들의 삶처럼 추와 미가 공존한 것이 삶이고, 그럼에도 꾸준한 사랑으로 내면의 힘을 지켜내는 삶은 무척이나 위대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위대한 존재, 인간이니까요.


여러분들의 삶에도 예술과 같이 아름다운 것이 찾아오기를, 그리고 여러분의 내면을 단단히 붙들어 줄 사랑이 항상 함께하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닫습니다. 자신의 삶에서는 누구나 화가이고 예술가인 여러분, 삶을 마음껏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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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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