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람으로서 존재하기 위한 투쟁 - 거룩한 분노 [영화]

"나는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갈 거예요."
글 입력 2023.06.16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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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갈 거예요.”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의 주인공 노라는 남편에게 말한다. “나는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갈 거예요.*”

 

노라는 아버지에서 남편에게로 넘겨진 ‘인형’이었다. 노라에게 집은 자신의 세상이었지만 자신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남성의 것이었고, 노라의 세계는 가부장제 아래에 놓여있었다. 노라는 그런 집에서 나간다.


가부장제는 오랫동안 여성에게 안을 할당해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정이라는 공간이 여성의 소유는 아니었다. 집은 여성에게 노동의 공간이었지 휴식의 공간이 될 수 없었다. 여성은 집안에서조차 재생산노동과 양육을 모두 부담해야 했다.

 

 


“여성의 참정권을 지지합니다.”



영화 <거룩한 분노>에는 주인공 ‘노라’가 있다.

 

노라는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 사는 가정주부다. 아이를 기르고, 재생산 노동을 하며 농장 일을 돕는다. 과도한 노동을 하고 있지만, 임금을 받지 못한다. 남편에게 노라는 다시 일을 시작하고 싶다고 말한다. 남편은 말한다. “지루해? 그럼 다시 임신 시켜줄까?”

 

노라는 어느 날 시내로 나가 여성 참정권에 대한 책자를 본다. 노라는 여성 참정권에 동의하는 여성들과 연대해 참정권 운동을 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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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의미에서의 사회는 남성에게 속해있었다. 직업의 세계와 ‘활동적인 삶’에서 배제됨으로써, 여성은 국회, 법원, 시청, 은행 등이 있는 공적인 공간으로부터 격리되었다. (중략) 여성은 단지 스스로를 비가시화한다는 조건으로, 물리적인 의미에서 사회 안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받고 있을 뿐이다.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면서 동등한 사람으로서 사회 안에 현상하려는 순간, 이 허락은 철회된다.”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2015, 76~78쪽)

 

 

마을 사람들은 참정권 운동을 하는 노라를 조롱하며 거세게 반대한다. 그중에는 남편에게 물려받은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여성도 있다. 그는 ‘여성 정치화 반대 모임’의 장으로, 자신이 갖고 있는 특권을 유지하고자 정치화를 반대한다.

 

그러나 그 권력은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남성에게 의해 부여받은 임시이자 유사 권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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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 여성 참정권 시위에 참여한 후 노라는 연대하는 여성들과 워크숍에 참여한다. 여성들은 모여서 자신의 성기를 들여다본다. 여성은 오랫동안 남근이 없는 존재로서, 타자로서 규정되어 왔다. 다시 말해, 여성은 결여된 존재였다.

 

사회 분위기상에서 여성의 자위나 쾌락 추구는 오랫동안 금기시되어 왔다. 자위하는 여성은 문란한 여성으로 여겨졌고, 자위 경험은 죄의 이미지와 연결되곤 했다. 여성의 신체적 특질은 오랫동안 오명을 써왔다. 여성의 성적 특징을 여성이 직접 응시하는 장면은 가부장제 담론 속에서 왜곡된 여성의 성을 제대로 인식해 오명을 벗기려는 시도다. 직접 응시를 통해, 여성의 성기는 남근의 ‘결여’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인식된다.


노라는 자신의 의견에 찬성하는 여자들과 힘을 모아 재생산노동 파업을 선언한다.


투표권을 얻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얻는 행위다. 주인공은 투표권을 얻기 전까지 집에 소속되어 노동하는 ‘인형’이나 다름없었다. <거룩한 분노> 속 노라의 이름은 아마 <헨릭 입센>의 노라에서 따왔을 것이다. <인형의 집> 속 노라는 아버지와 남편의 ‘인형’이었다. 그들의 취향대로 꾸미고, 그들의 취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노력했다.

 

투표권이 필요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영화 <거룩한 분노> 속 노라와 마을 여자들 역시도 인형이었다.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기보다, 가정 내에서 다른 존재들을 우선시하여 생각했고 그들에게 결정을 내맡겼다. <인형의 집>에서 노라는 말한다. “당신과 아버지는 내게 큰 잘못을 했어요. 당신들은 내가 아무것도 되지 못한 데 대해 책임이 있어요.**”

 

<인형의 집>에서 노라가 집 밖으로 나가듯, 영화 속 노라도 참정권 투쟁 끝에 집 밖으로 나간다.

 

 

 

거룩한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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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연대가 빛나는 영화다. 헨릭 입센의 극 속, 노라는 혼자였지만, <거룩한 분노> 속에는 노라‘들’이 등장한다. 여성들은 외치고 선언하며 연대하고 사람으로서 삶을 누릴 자격을 노래한다.

 

성경 속 여성과 남성의 자리를 나눈 ‘거룩한 질서’는 더 이상 거룩하지 않다. 오히려 ‘거룩한 질서’에 대한 우리의 분노가, 사람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이 투쟁이 더 ‘거룩하다’고 영화는 말한다.

 

 

*, **: 헨릭 입센, 『인형의 집』, 안미란 번역, 민음사, 2010

 

참고문헌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2015

 

 

[박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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