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운명을 거슬러, 나만의 스웨그(Swag)를 찾아서 –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글 입력 2023.06.1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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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스웨그(swag)와 뮤지컬, 그리고 조선. 각각 다른 차원에 있을 것만 같은 이 세 가지가 무대 위에서 어떻게 연결되어 한 편의 작품으로 탄생한 걸까. 국내 창작뮤지컬이 늘어나면서 단순히 낯선 것들의 조합이라는 것만으로 관객을 설득하기는 어려워진 요즘, 삼연으로 돌아온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신선함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극임이 분명했다. 그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들리는 모든 게 운율이 되는, ‘시조의 나라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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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그에이지’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이질감도 잠시, 첫 넘버인 ‘시조의 나라’는 작품의 세계관과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압축해서 들려주며 관객을 새로운 조선으로 초대한다. 뮤지컬의 배경이 되는 이곳은 시조가 국가 이념인 가상의 조선으로, 시조는 우리가 아는 시조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시조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나눈다. 때로는 말보다도 효과적인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는 것이 이곳의 시조다. 

 

시조가 이렇게 중요한 자기표현의 수단인 세계관에서 ‘스웨그(Swag)’라는 개념은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힙합 문화에서 허세, 잘난 척, 자아도취를 의미하는 스웨그(스웩) 역시 파헤쳐보면 자기 자신을 외부에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두가 시조로 자신을 표출하는 이 조선에서는 모두가 자신만의 ‘스웨그’를 가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연관이 없어 보이던 시조와 스웨그가 이렇게 연결되고 나면, 여기에 국악기가 사용되면서도 가사는 힙합/랩을 연상시키는 넘버, 그리고 탈춤과 스트릿 댄스의 요소를 고루 갖춘 안무가 더해진다. 그렇게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조선이나 시조가 가진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탈피하고 역동적이면서 흥이 넘치는 세계관을 갖춘다.


하지만 ‘시조의 나라’에서 드러나듯 이제 개개인의 스웨그가 살아 있는 조선은 더 이상 없다. 15년 전부터 양반에게만 시조가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시조는 자기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양반의 권력을 비호하고 비리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문제 상황이 분명하므로 목표도 명확하다. 지배층의 전유물로 전락한 시조를 다시 자유롭게 하는 것, 모두가 시조를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운명을 거스르는 단과 진의 성장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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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다고 믿었던 세계관에 나름대로의 논리가 부여되고 문제 상황이 분명해지자 적폐의 핵심 인물인 시조 대판서에 저항하는 ‘단’과 ‘진’의 서사도 탄탄하게 다가온다. 극 중 반복되는 질문은 ‘그게 당연한 일인가?’이다. 정해진 운명을 당연히 여기고 그대로 살 것을 명하는 시조 대판서에게 맞서 단과 진을 비롯한 골빈당 일원들은 그게 당연한 일인지 계속해서 묻는다. 이 질문을 마음에 품고 각자의 방식대로 성장해가는 진과 단의 서사는 꽤 비장하고 뭉클하기까지 하다. 재미만 기대하고 갔던 관객으로서는 뜻밖의 수확이었다.

 

‘단’은 처음부터 아웃사이더로 등장해 ‘조선수액’을 부르며 답답한 세상에서 자유로운 삶을 꿈꾸나,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소망이었다. 하지만 역적이라는 누명을 써야 했던 아버지의 진실을 깨달은 후 자유를 향한 그의 갈망은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억압받는 공동체 전체를 위한 것으로 승화된다. 자신만의 운율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그 운율에 백성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담고자 하는 인물로 성장하는 것이다. 

 

한편, ‘진’은 처음부터 모든 백성이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목표가 명확하지만, 시조 대판서의 딸이라는 신분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갈등하는 인물이다. 가진 것 없는 단과 달리 진은 잃을 게 많다. 그래서 때로는 단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물론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진 역시 옳다고 믿는 일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인물로 성장해간다. 단독 넘버 ‘나의 길’에서 그 각오를 들을 수 있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아들과 아버지의 뜻을 거역해 세상을 바꾸려는 딸. 두 인물의 공통점은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두 사람뿐만이 아니라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운명을 거스르며 억압에 저항하는 행위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는 마음,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과 연결된다. '스웨그'라는 태도 역시 자기표현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단과 진의 서사는 백성의 자유를 되찾기 위한 투쟁만이 아니라 이들이 자신만의 ‘스웨그’를 찾아 나아가는 이야기,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싸우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오늘날 관객에게도 큰 공감을 얻는 이유다.

 

 

 

자신만의 스웨그를 갖춘 뮤지컬로 자리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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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하지 못했던 단과 진의 성장담에서 마음이 뭉클해지기는 했지만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의 매력은 역시 무엇보다 재밌다는 데 있다. 여러 가지 장점 중에서도 지루할 틈 없이 관객을 웃기고 환호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은 오래도록 사랑받는 작품이 되기 위해 중요한 부분이다.


인터미션을 포함한 150여 분의 공연 시간은 춤과 노래, 소소한 개그 요소로 가득 채워진다. 특히 이야기가 너무 진지해지려 하면 등장하는 개그는 분위기를 끌어올리며 이 작품의 또 다른 개성을 이룬다. 예를 들어 시조 대판서의 자객 역할로 나오는 ‘룰루로아 조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만화 <원피스>의 등장인물을 떠오르게 하고, 친숙한 bgm과 함께 외치는 ‘전국시조자랑’과 프레디 머큐리처럼 호응을 유도하는 사회자 ‘엄씨’의 존재도 웃음을 유발한다.


앞서 이 이야기가 단과 진이 자신만의 스웨그를 찾으려는 여정으로도 읽힌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면 그 여정은 이 작품이 걸어온 길과도 닮았다. 자신만의 운율을 찾아 나선 단이 그러했듯, 이 작품도 학생들이 뭉쳐 새로운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대학교 과제에서 출발한 작품이 창작산실에 선정되고 팬데믹을 지나 삼연으로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시간은 이 작품이 자신만의 스웨그를 갖추기 위한 것이었을 테다. 


쉽고 분명한 이야기와 개그 요소, 그리고 흥 넘치는 노래와 춤이 어우러져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은 뚜렷한 개성이 있으면서도 완성도 높은 극으로 자리 잡았다. 이 작품의 다음 행보가 어디일지, 이어질 이야기를 기대하게 된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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