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빛나는 청춘, 뮤지컬 수업과 첫 연출의 경험 [문화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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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가장 뜨거웠던 봄을 보낸 기억을 꺼내 본다. 졸업반이었던 나는 대학교에서나 해볼 수 있을 법한 새로운 경험을 찾아 타학교에 가서 뮤지컬 교양수업을 들었다.
이 수업에서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마지막 한 달 동안은 1시간 분량의 뮤지컬을 준비하며 마지막 수업 때 뮤지컬을 올린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춤추고 노래를 불렀을 때가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이나 날까? 그래서 나는 내가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수업에서 처음으로 40명과 춤을 추고, 노래 불렀던 순간은 잊지 못할 것이다. 서로 초면인 40명의 학생이 모여서 춤을 추려니 서로 부끄러워했지만, 수업이 끝나갈 무렵에는 다들 얼굴에 웃음이 만연해 있었다. 그때서야 춤과 음악이 주는 즐거움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온몸으로 느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때쯤 연출을 맡아줄 학생 두 명을 구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뮤지컬 연출은 고사하고 연출 자체도 해본 적 없는 타 학교에 비전공자였던 나는,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남들을 이끄는 것을 선호하진 않지만, 좋아할 것이라 믿는 일을 실제로 해보기 위해서는 하고 싶지 않은 일도 감수해야 한다. 그렇게 19명의 학생과 팀플을 하며 첫 번째 연출을 시작하게 된다.
뮤지컬을 올리기 위해, 우리가 만들려는 뮤지컬을 먼저 관람해야 했다. 그렇게 대학로에서 뮤지컬을 보게 됐다. 그리고 그 작은 무대 위에 올라와 배우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노래하는 것을 보았을 때 슬픈 장면도 아닌데도 눈물이 고였다. 불이 켜지고, 노래가 흐르면 진심으로 행복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빛나 보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러닝타임 내내 눈물을 참아가며 관람을 마쳤다.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원래 2시간 분량이었던 것을 1시간으로 줄이는 각색 작업을 해야 한다. 그리고 배우들은 대본 분석을 한다. 대사라는 것은, 상대의 행동이나 감정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대사 하나하나가 상대에게 어떤 것을 바라고 있는지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연습을 하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을 반복한다.
연습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다. 처음 해보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안 왔던 것이다. 무작정 약 8명 정도가 모였지만 어떻게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갈팡질팡만 하다가 첫 번째 앙상블 연습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다음 연습 때부터는 이를 악물고 손으로 하나하나 다 그려왔다. 이 소절에는 너는 여기로 가서 이걸 하고, 너는 저기로 가서 이걸 하고, 여기서부터는 다 같이 부르고… 그렇게 점점 첫 번째 앙상블이 얼추 그럴싸한 형태를 갖추었다. 상상으로 그려왔던 것이 실제로 구현되는 과정을 보며 여태껏 이뤄본 성취와는 또 다른 느낌의 성취감을 느꼈다.
이렇듯,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이 투여되는 극을 진행하려면 동선 작업이 중요하다. 그래서 힘들었던 작업 중 하나가 이런 동선 작업이었다. 앙상블을 할 때는 최대 10명이 동시에 들어가기도 하는데 이들 모두의 동선이나 행동들을 자세히 정리해야 했다. 34페이지 분량의 대본과 12개의 솔로 및 앙상블. 이에 맞는 연습 시간 확보까지.
그럼에도 아마추어들의 연습은 고되다. 다들 처음이라 외운 대사들을 생각해 내는 것만으로 벅찼고 왠지 극이 지루했다. 이런 우리의 문제점은 서로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대사를 내뱉기에 집중하기 바빠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서로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피드백해 주신 연출가님께서 하신 말씀을 아직도 기억한다. 사회에 나가보면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서로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만큼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서로 교감하며 무대를 만들어 나간다. 나는 그런 현장감 때문에 이 일을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수업에 애정을 가지게 됐다. 언제 또 사람들의 말에 자세히 귀 기울이며 눈을 바라보며 이렇게 교감할 수 있을까? 언제 또 다 같이 노래 부르고 춤추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껴볼 수 있을까. 이후로, 대사를 못 외웠더라도 대본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상대 배우를 바라보라고 한다. 어느 순간 자기 대사에만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면, 잠시 내려두고 그냥 편안하게 둘이 대화를 해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감각을 기억하며 다시 대사를 해보라고 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팁이 있다. 긴 대사가 어색하면 차라리 빠르게 말하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행동들이 부자연스러울 때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정의해라. 그래서 나는 계속 배우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책을 정리하는 상황인데, 책을 몇 개 정리하고 있어? 책 이름이 뭐야? 등등.. 연출가는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행동은 배우가 결정하되, 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져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연습 시간 외에는 의상, 소품, 무대미술을 준비해야 한다. 교양수업 학생들이 무대미술을 어떻게 하겠냐 싶겠지만, 우리 나름의 최선을 다했었다. 연극 동아리 팀원의 도움을 빌려 각목과 병풍을 구해오고 건축학과 학생들 옆에서 우드락과 종이박스들을 잘랐다. 매직으로 색칠하고 커다란 크기의 종이를 프린트해 붙이며 허름하고 소박한 우리만의 무대미술이 완성되었다.
공연 7일 전, 반드시 리허설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20명을 한마음 한뜻으로 같은 시간에 모으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그 당시엔 그걸 몰랐던 나는 7일 전에도 제대로 된 런쓰루를 하지 못한 것에 절망감을 느꼈다. 왜냐하면 스태프와 배우를 겸해야 했던 우리들은 누가 소품들을 세팅하고, 누가 무대미술을 바꾸고, 누가 조명을 바꾸고, 누가 음향을 틀 것인지, 누가 가벽 뒤에서 어떤 준비를 할 것인지에 대해 익숙해져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연을 정말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그럼에도 그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해야 했다. 팀장의 무게를 안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을 때, 몇 명의 팀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주었다. 상황을 잘 아는 주연배우들이 각각 파트를 나누어 맡아 그 파트에서 모든 역할을 다 정리해서 숙지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상황을 공유받고, 다시 피드백해 주는 작업을 했다.
이전에는 웹, 앱, 게임 등을 개발하는 팀플들만 했는데 아무리 많아도 팀원이 5~6명이었다. 그래서 팀장은 적당한 리더십이 있다면 팀을 운영할 수 있고, 팀원들도 적당한 능력이 있다면 리더의 지시에 따라 자기 할 일을 하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팀장 혼자서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난 또 다시 협업을 배우게 된 것이다. 책임을 혼자 짊어지지 않는 방법, 서로의 말을 들어주고 대답하는 방법,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하는 방법을 말이다.
우리는 대극장에서 공연했다. 무대 위에 서 본 적 있는가? 영화를 보러 다니며 관객석에나 앉아만 봤지, 일부 앙상블에 참여하며 무대 위에 서보게 되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조명의 뜨거움, 관객석에 앉아 있던 이들의 모습. 처음 느껴보는 감각과 장면들에 영화 속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우리들은 정말 뜨거운 봄을 보냈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학교에 나와서 오후 내내 연습을 했다. 빈 강의실에서도, 운동장에서도 말이다. 또 문제가 발생하면 늦은 시간 할 것 없이 열심히 머리를 맞대고 해결할 방법을 먼저 생각했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연습과 제 자리에 머물러 진전되지 않는 것 같은 상황에 버스에서 수없이 울어봤다. 그렇게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며 집에 가서 다시 노트북을 켰다. 부족한 연기지도지만 최대한 많은 피드백을 해주려고 했고, 그럼에도 항상 그것을 받아들이고 연습해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 눈엔 20명 모두가, 그 수업에 참여했던 40명 모두가 빛이 났다. 빛이 나는 사람들은 본인이 빛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무대 위에 서 있는 그들은 그것을 바라볼 수 없으니 모르기 때문이다. 대학로에서 뮤지컬을 봤을 때처럼, 나는 우리 팀원들의 모습을 보며 또 괜히 차오르는 눈물을 참았다. 아마 우리 대부분은 그럴 것이다. 거울이 아니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으니 빛나는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 당신은 누군가의 마음을 울릴 만큼 빛나는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연습을 앞두고 한 친구가 ‘아, 이제야 좀 재미있었는데.’라며 아쉬워했던 것. 커튼콜에서 팀원들이 활짝 웃고 있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상대 팀 주연배우가 와서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 잘해서 놀랐다.’라고 했을 때 해냈구나 하는 성취감 역시도 생생하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그 순간순간을 다 즐겼기 때문에 그 어떤 아쉬움도, 후회도,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그리움도 없다. 그저 가끔 떠올리면 미소가 지어지는 하나의 기억이 됐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 세상에 그 어떤 좋은 기술이 그 아무리 발전한다 한들 이만큼씩이나 살아있다는 느낌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은 그들의 차지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진심이 담긴 자연스런 미소를 만들어 내는 것은 오로지 예술의 몫일 것이다. 그것이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다.
20대는 불안하고 초조하고 힘들 시기다. 다들 분명 각자가 가진 고민이 있을 텐데, 그 수업에서 그 사람들 하나하나는 그런 고민들로 힘들어하며 시간을 보내기엔 너무나 아름답고 빛나는 시간이었다. 모든 청춘이 그 아름다운 시간을 즐기면 좋겠다. 물론 모든 시간이 멋질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가진 시간 중 일부는 그러길 바라본다. 이 수업처럼.
[이유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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