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한국 SF를 사랑해 [문화 전반]

글 입력 2023.06.0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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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커다란 세계관, 끝없이 확장되는 세계, 두 거대 집단의 숙명 혹은 신념의 대립에 본능적으로 이끌리던 나는 당연한 수순으로 SF를 집어 들었다. 과거 등단제도 위주의 문학계의 SF를 비롯한 장르문학을 순문학과 분리하려던 시도조차 모르던 학창 시절, 모든 소설은 내게 동등하게 다가왔고 도대체 ‘왜 사람들이 SF를 좋아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좋은 걸.

 

보통 SF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영화화로 익숙한 외국(특히 영미)작가의 이름만 알거나, SF는 안 읽는다고 하거나, 취향이 아니라고 하거나, 어렵다는 답변을 들을 때가 자주 있다. 한국에도 SF 소설이 있냐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 SF 계보를 정리한 책들은 주로 영미 작품을 다루고, 한국에서 쓴 책은 2020년대 와서야 출간되었다. (심완선 SF 평론가의 《SF와 함께라면 어디든》이 2023년에 나왔다) 한국에도 우리가 사랑할 SF 소설과 SF 작가들이 있다. 그것도 많다. 무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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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과학기술창작문예’라는 SF소설 공모전이 마지막으로 개최되고 SF만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상의 명맥이 끊겼으나 10년 만인 2016년 동아시아 출판사의 SF 브랜드 허블에서 ‘한국과학문학상’을 제정하여 새롭게 SF소설 공모를 시작하였다. 현재에는 SF 출판사 아작, 알라딘이 합작한 ‘문윤성 SF 문학상’이 3회를 맞이했고, 특정한 소재(메타버스, AI 등) 혹은 SF를 포함한 장르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전이 많이 개최되고 있다. 바야흐로 한국 SF가 메이저와 한 발짝 더 가까워지는 순간이다. 특히 2회 한국과학문학상 대상과 가작을 수상한 김초엽 작가의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출간 1년 만에 10만 부 판매라는 기록을 달성하며, SF는 어느 먼 영미 작가들의 영역과 ‘그런 책’을 읽느냐는 타박 사이에서 ‘우빛속 읽었어? 어땠어?’로 변화했다. 

 

민음사의 장르문학 브랜드 황금가지에서 만든 웹소설 플랫폼인 브릿G는 여타 1차 웹소설 플랫폼과는 다르게 로맨스 판타지, 현대 판타지, 로맨스 장르와는 다른 SF와 판타지 장르의 질 좋은 소설들이 연재되던 플랫폼으로 한국 판타지 시리즈의 대작 《눈물을 마시는 새》의 이영도 작가의 신작이 공개되기도 했다. 그래비티북스에서 2019년에 출간한 천선란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 《무너진 다리》는 원래 브릿G에서 같은 연도에 연재되던 작품이다. 2018~2019년도에 브릿G에서 SF 소설을 연재하던 작가 중 많은 작가가 SF 문학상으로 등단 후 여러 장·단편 소설을 펴내고 있다. 이를 구경하는 것 또한 아주 행복한 일이다. SF가 대중에게 성큼 다가가게 된 것인지, 급변하는 과학기술에 익숙한 사회가 SF 앞에 성큼 다가간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가 확언할 수 있는 것은 독자와 SF의 간극이 점차 줄어드는 경향성을 보인다는 점이다. 또한 SF 소설이 대중에게 공개될 수 있는 창구가 넓어진 만큼, 스스로 SF를 쓰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는 작가들이 많아지고 있다.   


스스로 SF 작가라고 명명하는 일은 중요하다. 마가릿 애트우드는 자신은 SF를 쓰지 않는다고 말했고, 어슐러 르 귄은 애트우드의 소설은 SF소설이 라고 말했다. 도대체 이 간극은 어디서 오는가? 201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한 출판사에서 소설 뒤표지 문안에 ‘SF문법을 차용한’이라는 어구를 사용하여 SNS에서 작게 논쟁이 일었던 적이 있다. 해당 소설의 작가는 혹시나 스스로 SF를 쓰는 사람으로 명명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등장한 어구일까? 작은 궁금증이 일었다. (이후 해당 출판사는 한국문학 시리즈로 SF 작가의 SF 소설을 출간하였다) 이렇게 SF에서는 ‘SF를 쓴다’라는 자기 인식이 중요하게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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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와 같은 장르 소설을 ‘순문학’과 구분하려던 시도는 예전부터 꾸준히 등장해 왔다. 현재 한국 SF 작가들이 순문학 중심 기존 문학계의 등단제도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며 그 경계가 흐려졌고, SF소설의 판매량을 고려한 출판계에서 SF라는 명명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SF는 그러니 하나의 문학 장르이자 동시에 마케팅 수단으로 작용한다. SF라는 명명은 느슨한 그물망이며, SF라고 부르는 소설의 총칭이다. SF 안에는 ‘이런 소설도 SF라고 말할 수 있어?’ 와 ‘하드한 SF’가 뒤엉켜 있다. 사변소설의 경우 특히나 이 소설이 SF이냐 아니냐는 논란의 주인공이 된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자기 소설은 사변소설이지 SF가 아니라고 말했다. 이는 꽤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데, 조지 오웰의 《1984》가 황금가지의 환상문학전집이 아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있는 이유, 반대로 사변소설인 어슐러 르 귄의 《빼앗긴 자들》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아닌 황금가지의 환상문학전집으로 출간된 이유를 고민하게끔 한다. 그러니 한국에서도, SF의 역사가 더 오래된 영미권에서도 SF라는 장르의 구분은 소설의 텍스트 자체의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SF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은 사변소설에서 나온다. 사변소설은 “기술적 변화만큼, 혹은 기술적 변화보다 더 사회·문화적 변화를 강조한다.”(셰릴 빈트, 《에스에프 에스프리》, 아르테, 159쪽) 이는 “과학 기술 신화의 문화적 힘에 관한 것”(같은 책, 같은 쪽)이다. SF는 일반적인 소설보다 더 근본적인 허구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현실과 가장 동떨어진 장르인 듯하지만, 사실은 SF에 속하지 않는 소설보다 더 깊게 현실과 관계할 수 있다. 그 이유가 바로 이 사변소설에 있다. 그러므로 SF는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투쟁의 영역에 존재할 수도, 사회에서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새로운 신화로 존재할 수도, 실제 세계에서 실행할 수 없는 사고 실험을 진행하는 실험실로 존재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근간은 현실이다. 

 

SF는 미래 소설이 아니고, 문자 그대로의 ‘과학’ ‘소설’로만 설명할 수도 없다. SF는 어쩌면 리얼리즘 문학보다 더 현실과 가까울 수 있다. SF는 그럴 수 있다. 나의 개인적인 취향은 르 귄의 소설처럼 두 거대항이 대립하는 구도로 이루어지며 현실 사회의 모습을 반추하게 만드는 사고실험을 진행하는 사변소설이지만, 동시대 한국 SF의 경향성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내가 사랑하는 SF의 맛은 과학기술로 인해 비롯된 사회문화적 갈등과 변화라고 한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 ‘사변소설화 된 시대’이다. 언제나 네트워크에 접속하여 스스로 사이보그가 될 수 있는 이 상황에 한국 SF가 집중하는 곳은 이전의 개념보다 더욱 확대된 개인의 우주이다. 개인 내면의 우주가 아주 내밀한 곳에서 ‘과학기술’을 통해 세계로 확대된다. 개인은 하나의 우주라는 말이 있다. 현대 개인은 위의 문장에서 지칭하는 ‘내면의 우주’에 더해 새로운 ‘네트워크로서 우주’가 있다.

 

 두 가지 우주는 모두 무한하여 두 우주를 더한대도 무한이지만, 이 두 무한은 아주 큰 차이가 있고 이 차이를 세세히 집어내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세계 대전과 냉전 시대를 거친 과거 작가들의 작업이 사회와 사회의 문제였다면,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다원화 시대에 익숙한 작가들의 작업은 개인과 개인의 대립에 과학이 개입하는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이 발현한 사회문제가 아니라 과학기술이 발현한 사회문제를 겪는 개인의 소외된 경험이며, 이 소외 경험은 허구가 아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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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작가는 흰 창에 깜빡이는 커서가 두렵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펼쳐진 흰 캔버스가 두렵다. 어떤 인간도 씨앗이 없는데 싹을 틔울 수 없다. 과학 이야기가 어려운 SF라도 그 소설 속 어느 부분에는 현실과 이어진 끈이 있다. SF를 즐기는 일은 그 끈을 찾아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끈의 모양을 살피고, 이음새를 살피면 어려운 과학 지식은 떠내려가고 SF와 나와 세계만이 남는다. 이 세 가지 항을 이리저리 움직여 나만의 독서 경험을 차곡차곡 쌓고 나면, 여전히 읽기 어려운 SF는 존재할지라도 읽기 두려운 SF는 없다. 매년 한국과학문학상과 문윤상SF문학상이 열린다. 스토리 IP를 활용하는 사업에 뛰어든 출판사나 서점에서도 SF 소설을 포함한 장르소설 공모전이 열린다. 

 

한국은 여전히 SF 불모지이지만, 씨앗도 있고 씨앗을 틔우는 사람들도 있고, 이미 싹을 본 사람도 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이따금 두리번거리며 물을 주고, 이 불모지에 녹음이 푸르른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내가 상상하면 SF가 이루어 준다. 그렇기에 어떻게 SF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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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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