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상이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미술/전시]

리만머핀 갤러리 에르빈 부름 《꿈》 관람 후기
글 입력 2023.05.25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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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태원-한남동 지역은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맛집 뿐 아니라 리움미술관을 비롯해 크고 작은 갤러리들이 모여있어 미술 투어를 하기에도 적합한 장소다.

 

한남동에 위치한 국제적인 갤러리 중 하나인 리만 머핀에서 5월 11일부터 6월 24일까지 에르빈 부름 개인전 《꿈》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하였다.

 

지난 수원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되었던 《에르빈 부름: 나만 없어 조각》전 방문을 망설이다 놓쳐 아쉬운 구석이 있었는데, 가까운 곳에서 개인전을 개최한다니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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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 진행중인 리만 머핀은 1996년 라쉘 리만(Rachel Lehmann)과 데이비드 머핀(David Maupin)에 의해 설립된 갤러리로, 전 세계의 다양한 현대 미술 작가들을 새로운 지역에 소개하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 뉴욕, 홍콩, 런던과 서울에 갤러리를 두고 있다.

 

25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부름은 매체로서 조각의 근본적인 원리를 끊임없이 탐구해왔다.

 

조각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또는 어떤 것이 될 수 있는지를 고찰하면서, 작가는 부피와 질량, 표면, 색채, 그리고 시간에 대한 조사를 통해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매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했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의 일상과 그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현대 사회의 세태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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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서울 전시에선 브론즈 소시지 “추상 조각 시리즈(Abstract Sculptures)와 의인화된 “핸드백 시리즈(Bag Sculptures)”, 그리고 새로운 “피부 시리즈(Skins)”와 “납작 조각 시리즈(Flat Sculptures)” 등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다리 달린 가방이 어딘가로 뛰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길쭉하고 가느다라며, 도형같이 추상화된 다리의 위 아래로 가방과 신발이 연결되어 있다.

 

얼굴도 없고 머리도 없는 이 조각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것으로부터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가방은 자동차와 함께 현대 소비문화, 소비지상주의를 대표하는 상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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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볼 때 무언가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인간형태를 애매하게 본뜬 것한테서 나온 꺼림칙함일 수도 있지만, 상품을 통한 쾌락을 좇는 우리의 모습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조각 작품이 밟고 있는 작은 좌대, 받침대는 본래 없어야 하지만 작품이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두 다리로 바닥을 밟고 꼿꼿이 서있는 〈Gate〉(Skin 시리즈, 2021)를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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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판 없이 스스로 서 있을 때가 더 자연스러운 조각의 모습이며, 이는 어떤 특권화된 예술 작품으로서 조각을 만들어내기보다 실험과 탐구 자체에 집중하며 일상과 그 안에 사회의 실태를 담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가 조각에 반영됐기 때문일 것이다.

 

“OMS”, One Minute Sculptures라는 작가의 시그니처가 새겨진 관객참여형의 모자 작품도 전시되었다. 방문객들은 〈Cap OMS〉(2023) 아래 서서 조형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부름은 “1분 조각” 시리즈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관객의 참여 행위 자체를 조각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다. 작가는 우리의 물리적인 신체와 그것이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움직임까지도 조각의 요소로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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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새로 작업한 최근 작품들도 선보이는데, ‘납작 조각’ 시리즈들이 포함된다.

 

〈Much〉(Flat Sculptures, 2021)나 〈Mold〉(Flat Sculptures, 2021)에선 작가의 시그니처 형태인 분홍 풍선껌이 캔버스 위로 편평하게 눌린 것처럼 드러난다.

 

추상적인 언어조차도 하나의 형태로서 화면 위에 납작하게 엎드려있다. 평소와 같이 읽히기를 거부하는 언어와 이를 읽어내려는 관객의 싸움이 시작된다.

 

이는 문자를 보는 즉시 그 의미가 와닿았던 일상적인 경험과 달리, 문자의 형태 자체를 깊게 살펴보고 추적하는 새로운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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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제목 《꿈》은 앞서 언급했던 작가의 작업 과정(조각에 대한 탐구에서 현대 사회의 세태 드러내기)과 연결하여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작가가 조각 자체에 대한 다양하고 깊은 탐구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가능성으로서의 꿈”이다. 여기서 회화를 포함한 모든 매체, 심지어는 우리 몸까지도 조각이 될 수 있다. 그 형태 또한 부풀어지고 납작해지며 길게 늘어지는 등 어떤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이는 모든 것이 가능한 꿈의 세계와 같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환상으로서의 꿈”이다. 우리가 착용하고 섭취하는 옷과 가방, 음식들과 모든 상품들은 이용하는 그 순간 우리에게 쾌락을 안겨주며 나의 정체성을 규정해주는 듯하다.

 

그 때문에 우리는 상품들을 쫓아간다. 하지만 이러한 작용들이 과연 실질적인 것으로 존재하는지, 혹은 착각을 만드는 피상적인 환상인지는 깊게 고민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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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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