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요한 지구 속 나의 우주 [사람]

글 입력 2023.11.2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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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2023년의 마지막 달 12월. 늘 연말은 들뜨기도 씁쓸하기도 하다. 겨울이 가져다주는 따뜻한 분위기 안에 서린 차가운 공기. 이번 연도 난 어떻게 보냈을까? 잘 지냈나 보다 먼저 드는, 미래를 위해 무슨 노력을 하면서 살았는가. 여전한 보통의 23살, 마냥 편하지도 그렇다고 불편할 것도 없는 나이. 삶을 살아가며 스스로에게 내리는 적당한 책임감과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내기 위해 현실에는 닿아있지만, 아직 꿈에는 아직 닿지 못한 평범한 23살. 곧 24살이 다가온다.

 

3월에 서울로 올라와 처음으로 삶을 독립해 봤다. 학교 때문에 자취를 하는 것도 아닌, 정말 내 삶을 마음대로 움직여 볼 수 있는 주체적인 1년. 부모님께 서울에서 어떻게 살 건지 계획서까지 보여주며,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고 다가올 미래는 나를 들뜨고 설레게 만들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현실은 달랐다. 외롭고 속상했다. 20년부터 학교 때문에 혼자 살아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완전한 독립은 어려웠다. 자신 있게 왔지만, 멀리 사는 친구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먹는 가벼워진 식사. 그리고 항상 이야기꽃이 가득했던 집과 가족들이 너무 그리웠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집은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지구 속 우주가 된다. 내가 현재 사는 곳에서 본가까지는 약 406km 정도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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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부터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고, 우리 가족은 여행과 캠핑을 좋아하는 가족이었기에 늘 어디론가 함께 가서 좋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사실 어릴 적엔 주말마다 여행과 캠핑, 시간이 없다면 가까운 다른 지역에 놀러 가자는 부모님의 말씀이 그렇게 반갑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땐 주말에 친구들과도 놀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던 것에 대한 어린 투정의 감정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부모님이 나이를 먹어가는 것을 보니, 어릴 적 나의 세상을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 채워준 것은 부모님이었다. 덕분에 어릴 적 기억은 부모님과의 여행이 주이다. 물을 무서워하는 나에게 아빠는 두려움 속에 갇혀있지 않게, 여름 바다의 파도 속으로 날 안고 가, 편하게 힘을 빼고 자기가 지켜줄 테니 파도에 몸을 맡기라고 웃으면서 날 안아 파도를 태우던 아빠의 옆모습. 캠핑을 가다 어두워지자 한 계곡에 멈춰 편하게 잘 곳을 만들어 주던 아빠의 뒷모습. 그리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밤 계곡 옆에서 물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가로등 하나 없이 가져온 랜턴 등 하나에 의지해, 어두운 주변 속 황홀하게 눈부신 별들을 엄마 아빠와 함께 보며 별 이야기를 했던 날들. 어릴 때 아는 별자리가 북두칠성밖에 없어 일곱 개의 별을 열심히 손으로 잇던 내 모습.

 

아침엔 엄마와 일어나 기분 좋은 여름의 시원한 안갯속을 걸으며, 해바라기 꽃 옆에 서 있던 나를 열심히 디카로 찍어주던 모습. 내가 추울까 봐 깜짝 놀래주려고 옷 속에 티 나게 숨겨온 가디건과 내가 배고플까 봐 챙겨온 귀여운 간식들. 엄마와 함께 라디오를 들으며, 같이 했던 저녁 준비. 미술 학원 선생님이었던 엄마와 같이 그리던 그림. 그리고 엄마가 자주 써주던 쪽지 편지들. 어릴 땐 당연한 챙김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커보니 사랑이었다. 이렇게 나는 부모님께 소중한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배워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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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마음에 이런 것들이 고마워, 나는 약국에서 박카스를 한 병씩 사서 드리곤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초등학생 때 1000원이 있었는데, 박카스가 그 당시 500원이었다. 내 기준 그때 최고의 약은 박카스라 생각했기에 약국에서 박카스 두 병을 사서 신나게 집에 가고 있다가, 다 와가는 아스팔트에서 넘어졌다. 하얀 비닐봉지 안에선 노란색 액체와 함께 깨진 유리 조각들이 있었고, 내 무릎은 까져 피가 나고 있었다.

 

나는 그때, 깨진 유리조각이 위험하단 생각과 까진 무릎이 아프다는 생각보단, 엄마에게 주려고 산 박카스 두병과 그걸 받으며 기뻐할 엄마의 모습을 보며 샀는데, 그러지 못한다는 점. 돈을 다 써버려서 다시 살 수 없다는 점이 서러워서 펑펑 울면서 깨진 봉지를 들고 집에 갔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박카스에 대한 고마움도 표현했지만 날 더 걱정했다. 나는 나보다 박카스 걱정이 먼저였는데.


그때 박카스 두병의 때 묻지 않은 마음이 자주 생각나곤 한다. 조금 더 크고 나선 집 앞에 꽃을 파시는 사장님들이 자주 오곤 했었는데 거기서 꽃을 사랑하는 엄마에게 꽃다발을 자주 선물하거나 화분을 사서 집에 간 기억이 난다. 꽃은 받는 사람도 기쁘겠지만, 줄 때도 너무 행복한 것 같다.

  

하지만 이젠 뭘 같이하거나 해주고 싶어도 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내가 너무 커버려서 또 내가 시간적 여유가 많지가 않아서, 스스로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할 시간이기도 하고 부모님의 체력도 예전 같진 않아서 부끄러운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아직 부모님께 다시 사랑을 돌려드리고 싶은 마음의 크기에 비해 너무 어리다. 옛날처럼 어디론가 멀리 떠나진 못하지만, 늘 본가에 내려가면 부모님은 날 위해 해줄 수 있는 정말 최선의 것들을 해주신다. 엄마 아빠가 나의 소중한 기억들을 위해 썼던 소중한 시간들이 고맙게 느껴진다. 평일에 일하고 와서 피곤할 텐데, 쉬고 싶을 텐데.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준 부모님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나도 나중에 부모가 된다면 꼭 우리 부모님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다.

 

현재는 자취를 한 지 4년이 다 되어간다. 혼자 살면 책임을 져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그래서 가끔 너무 지치면 미안하지만 누구에게 잔뜩 기대고 어리광 부리고 싶은 날이 있다. 내가 단단해져야 하는 것도 맞지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날도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혼자 자꾸 우뚝 서있으려 한다. 서울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무슨 일이든 내가 책임지고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순간 압박처럼 크게 느껴져서, 스스로에게 어리광을 부리기도 하지만 결국 날 더 다잡는 순간들이 많다. 매 순간 열심히 살아내야 하니까 결국 해내야 하니까. 근데 가끔 내가 뭘 해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교묘하게 왔다 금방 사라지는 번아웃. 밤마다 찾아오는 나의 지구 속 고요한 우주. 

 

나는 일 잘하는 사람들에게 자극을 받는다. 위치를 바꾸지 않고 그 자리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 항성 주변엔 행성들이 많다. 빛이 나는 사람들 곁엔 많은 사람들이 맴돌기 마련이다. 하지만 항성의 사람들은 타인에 의해 자신의 줏대를 쉽게 바꾸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여, 스스로 길을 만들어낸다. 사실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사람이다. 늘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는 사람. 그리고 그 한 분야의 일을 능숙하게 맡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 그 정도의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아직 행성이다. 아니 사실은 작은 소행성. 그래도 위성보다는 소행성에 가깝다 생각한다.

항성이 되기 위한 빛을 내재하고 있지만 그걸 발현하기엔 시간이 걸릴 테니, 지금은 그냥 항성 주위를 맴돌며 항성의 빛을 받는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고, 한 분야의 최고가 아니더라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는 항성을 꿈꾸는 작은 소행성이다. 

 

<고요한 우연>이라는 소설책에서 꼭 스스로 빛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근데 이 말도 너무 좋지만 나는 나를 갈고닦아 내가 스스로 빛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런 항성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내 이름의 뜻은 줄 수에 빛날 빈인데, 이 이름의 뜻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빛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그런 이름의 뜻처럼 내가 항성이 되어 모든 행성과 위성들에게 나의 빛을 나눠 줄 수 있는 사람, 품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스스로 빛이 나지 않아도 좋다. 꼭 사람이 빛나야만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각자의 삶의 지향점이 있는 거고 그냥 자신의 모습대로 본인이 가진 색깔대로 살면 된다. 하지만 내 지향점은 내가 빛날 수 있게 노력해 결국 빛을 발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 빛을 나눠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에 난 항성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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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클 수 있게 만들어준 또 다른 큰 항성인 부모님과 작은 나의 세상인 소행성, 그리고 그런 내 꿈을 위해 내 곁을 지나가고 맴도는 위성까지 고요한 우주 속에서 오늘도 나는 시끄러운 세상을 살아간다.

 

 

[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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