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음새가 보이지 않게 섞은 전래동화와 발레 – 유니버설 발레단 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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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섞는 한국 문화
한동안 ‘퓨전’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던 때가 있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이 단어는 보통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 특히 한국적인 것과 다른 나라의 것이 합쳐져 특이한 맛을 낼 때 사용되었다.
지금은 외부 세계에서 한국의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이 어느 정도 정립되었기 때문에 한복과 수트가 제법 잘 어울리는 조합이 되었지만, 그때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면이 있었던 것 같다. 분명 새롭긴 한데, 아직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문화를 알리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 조금 웃기기도 했다.
그렇기에 ‘퓨전’이라고 하며 다른 요소에 무조건 한국적인 것을 섞어 놓은 문화는 어딘가 조금 웃겼다. 싫었다는 게 아니라 좋은데 어딘지 민망하기도 하고 그런 복잡한 감정이 든다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퓨전의 대표적인 예시는 드라마 <궁>이다. 조선 왕조가 여전히 한국 사회에 존재한다면? 과거의 생활 방식이 현재 살고 있는 한국의 모습과 섞인다면? 그런 질문에서 시작된 이야기.
<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왕비의 옷을 입고 폴더 폰을 들고 있는 윤은혜를 담은 포스터 이미지는 그래서 나에게 ‘퓨전’의 강력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이상하고, 화려하고, 무엇과 무엇을 섞었는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명확함.
Seamless.
유니버설 발레단의 창작 발레 ‘심청’은 한국적 감성의 핵심인 ‘효’를 다룬 전래동화 심청 이야기와 서양의 발레의 만남이라는 테마를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막상 극을 보면 두 가지 요소가 섞인 작품이라는 개념이 의식되지 않는다.
1986년 초연 이후 무려 37년 동안이나 수정과 보완을 거듭해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 앞에 나타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번 2023년도 공연에서 수정된 부분은 3막 구성을 2막으로 바꾸어 러닝 타임을 단축한 것이다. 무대를 전환하는 시간을 단축해 장시간 집중하기 어려운 관객들이 집중력을 발휘해 감상할 수 있게 하고, 몰입감 있는 극을 만들었다.
계속된 수정과 보완을 통해 탄생한 2023년 버전 ‘심청’은 하나의 새로운 장르로 탄생했다. 시작은 마치 대사 없는 연극처럼 심청이 자라온 시간과 심 봉사의 가난한 배경을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작은 초가집과 마을 사람들의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의상은 심 봉사 가족에 일어나는 비극에 함께 슬퍼하는 마을의 인심과 함께 한국의 토속적인 아름다움이 주가 된다.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기 전 선원들과 함께하는 대목에서는 전통적인 발레와 차별화된 무대를 보인다. 인상적인 부분은 남성이 중심이 되는 군무다. 발레리나의 부드럽고 섬세한 움직임과는 다르게 힘이 느껴지는 안무와 배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장면에 가까워질수록 격렬하게 움직이는 무대 장치와 빨라지는 파도 영상은 마치 화려한 뮤지컬을 보는 것 같이 화려하다.
발레 ‘심청’은 그러면서도 관객들이 마당극처럼 적극적으로 무대에 반응하도록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전통 마당극을 떠오르게 하는 요소는 심청이 아버지와 상봉하는 봉사들의 잔치 장면에서 도드라진다. 화려하고 아름답게 나풀거리는 한복과 궁궐, 잔칫상과 같은 한국적인 소품에 덩실덩실 춤을 추는 봉사들을 보고 있으면 재미있는 마당극을 보는 것 같다.
그 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애타게 찾는 심청과 심 봉사를 한 눈에 알아보고 달려가 아버지의 손을 자신에 얼굴에 가져다 대는 절실한 손길에 눈물을 흘리다가도 마침내 봉사가 눈을 뜨는 기적적인 장면의 음향과 조명 효과에 소리 내어 웃는 관객들을 보고 있으면 극이 시작되는 순간 엄숙했던 관객의 모습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예술은 엄숙하고 진지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깨어지는 경험이다.
[류나윤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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