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분명히 저예산 영화였는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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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생활을 청산하게 해준 아내 헬렌이 죽으면서 남긴 강아지 데이지와 함께 살아가던 존 윅. 은퇴 후 조용히 살고 있는데 러시아 마피아 아빠 하나만 믿고 뭣도 모른 채 존 윅의 차를 훔치고, 데이지까지 죽인다. 분노한 존 윅은 복수를 시작한다...는 스토리로 시작한 존 윅 시리즈가 어느덧 4편까지 개봉했다.
개봉 텀이 꽤 긴 편이라 분명 전편을 다 봤는데도 유명한 몇 장면 외에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대충 유튜브로 요약을 보고 갔다. 3편을 30분으로 요약한 영상이었지만 중요한 전개만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전 시리즈들을 보지 않았다고 해도 일단 존 윅 시리즈 자체가 스토리라 할 것 없이 액션 위주이기도 하고, 존 윅 세계관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하이 테이블, 표식, 콘티넨탈, 파문 등의 몇몇 개념만 알고 가면 4편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개봉 전에 뜬 해외 평론가 평점, 관객 평점 모두 높게 나와 기대하고 있었는데 처음 공개된 존 윅 부제가 사무라이, 무사도를 의미하는 ‘하가쿠레’라는 단어라 또 할리우드에서 동양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자문 없이 그들이 생각하는 동양에 대한 이미지를 가득 넣었을 것 같은 느낌이 와서 찜찜했다.
개봉 전에 부제를 떼버리고 그냥 4로 개봉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약간의 스포를 감안하고 읽은 후기에서 빠짐없이 언급되던 흔히 말하는 ‘일뽕’ 요소를 각오하고 보러 갔다.
이전 시리즈들보다 확실히 자본이 많이 들어간 느낌이 확 났다. 그리고 허세의 향기도 더 짙어졌다. 살인이 금지된 성역 콘티넨탈의 오사카 지부, 그 오사카 지부의 지배인이자 존 윅의 오랜 친구 코지, 존 윅을 제거하기 위해 하이 테이블에서 보낸 그라몽 후작, 하이 테이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정령, 존 윅에 버금가는 장님 킬러 케인, 반려견과의 여생을 위해 존 윅의 현상금을 노리는 노바디 등의 캐릭터를 비롯, 허세 넘치지만 이런 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환장할 수밖에 없는 설정들이 넘쳐난다.
존 윅은 짧은 대사와 그에 반비례하는 액션이 장점이었는데 이번 편은 무려 3시간에 달한다.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느낌이라 꾹꾹 눌러 담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나 싶었는데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하가쿠레’라는 변경 전 부제를 연상시키는 장면들만 뺏어도 러닝타임 30분은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콘티넨탈이 오사카에도 지부가 있다는 건 세계관의 확장이니 그러려니 했지만 이미 많은 할리우드 영화가 보여준 신선함이라고는 없는 오리엔탈리즘을 왜 굳이 보여주려고 한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서투르게 일본어를 하는 존 윅은 보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
오사카 콘티넨탈에 온 그라몽 후작의 부하들은 완전무장을 하고 총을 쏘는데 코지의 부하들은 칼과 활을 챙긴다. 여기까지는 할리우드식 오리엔탈리즘을 하도 많이 봐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수리검을 챙기는 장면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21세기에 수리검을 챙기는 장면을 보여주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라니. 수리검을 날리는 건 자기들이 생각해도 좀 우스꽝스러웠는지 다행히 수리검을 실제로 사용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지만.
이 장황한 오사카 씬에서 제일 충격적이라 기억에 남는 장면은 코지가 자신에게 뒤를 맡기고 가라고 하면서 최대한 많이 죽여 달라는 부탁을 하며 칼을 쥔 손을 내밀자 존 윅이 주먹을 맞부딪히며 끄덕이는 장면이었다.
분명 존 윅이 ‘오쓰’라는 말을 하면서 주먹을 맞부딪힌 것 같은데 자막으로는 나오지 않아 확신은 못 하겠지만 어쨌거나 이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은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넣은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코지의 딸이자 컨시어지로 등장하는 아키라는 할리우드가 생각하는 동양인 여성의 전형적인 캐릭터 그 자체였지만 이를 연기한 리나 사와야마의 액션은 좋았다. 하지만 오스카 로케이션 씬의 볼거리는 그게 끝이었다.
매 시리즈마다 인상적인 액션 시퀀스를 남겨서 부담이 됐던 건지 이번에는 존 윅이 쌍절곤을 미친 듯이 휘두르는 뇌절까지 보여준다. 합을 맞춘 게 너무나도 티가 나는 전체적인 액션 씬과 총을 상대하는 활, 몸으로 기동대를 막아내는 스모 선수 등 오사카 로케이션 씬은 그냥 통째로 들어내도 스토리 전개상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들어냈다면 지루한 감이 덜했을 것 같아 아쉬울 정도였다.
그리고 루스카 로마 패밀리로 다시 들어가기 위해 루스카 로마의 수장을 죽인 베를린 클럽 사장인 킬라를 죽이는 장면도 굳이 이렇게 길게 넣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킬라가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긴장감을 유발하려는 의도가 명확히 보여서 더 지루했다.
하지만 파리 액션 씬이 이 모든 단점을 상쇄시킨다. 이 장면만 보러 다시 존 윅을 보러 갈 정도였다. 일단 영화 내내 존 윅을 괴롭혔던 그라몽 후작과 마지막 전투를 하는 곳이 사크레쾨르 대성당이라는 예쁜 화면이 나올 수밖에 없는 치트키 수준의 장소다. 그리고 중간에 개선문을 역주행하며 자신의 현상금을 노리고 달려드는 킬러들을 끊임없이 죽이는 장면과 이후 한 건물에서 이어지는 액션을 항공뷰로 보여주며 도파민을 자극한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한 존 윅이 결국 자유를 얻긴 했지만 그 과정에 비해 엔딩이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쿠키 영상을 보면 다음 편이 나올 것 같긴 한데 어떤 식으로 이어질지 예상을 못 하겠다. 어떻게 이어져도 말도 안 되는 액션 영화라 납득하며 보겠지만.
존 윅에 대적하는 장님 킬러 케인으로 등장하는 견자단의 액션, 원맨쇼 급의 액션을 보여주는 키아누 리브스, 빌 스카스가드의 쓰리피스 수트, 파리 전경을 배경으로 하는 액션 중 하나라도 보고 싶다면 고민하지 말고 보러 가는 걸 추천하고 싶다. 내 기준 이전 시리즈들에 비해 잔인함도 덜한 것 같아 데드풀 정도의 수위를 볼 수 있다면 무리 없이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할리우드식 오리엔탈리즘을 차마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최대한 할인을 받아서 보길.
[신민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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