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인생네컷과 사진의 우로보로스 [문화 전반]

인화 사진에서 디지털, 인생네컷, 다시 인스타그램까지
글 입력 2023.04.11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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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 있는 무인 상점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매장을 고르라고 하면 십중팔구는 인생네컷을 꼽을 것이다. 꼭 ‘인생네컷’이라는 상호가 아니더라도 ‘포토시그니처,’ ‘하루필름,’ ‘포토그레이’ 등, 다양한 종류의 무인 즉석 사진관들은 거의 한 거리에 하나꼴로 자리해 있다.

 

즉석 사진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 나 역시도 네 컷으로 나뉜 사진을 쥐고 거리를 걸으며 “왜 사람들은 인생네컷에 미쳐있을까?” 고민해보았다.

 

 

 

다시 실물 사진으로



‘인생네컷 유행’을 실물 사진에 초점을 맞추어 바라보자. 디지털로 사진을 저장하고 공유하게 된 이후로 사진을 일부러 인화하는 사람들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었으며, 스마트폰의 출시 이후 그 애호가들마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 현실이다.

 

사진을 인화할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은 물어물어 찾아가야 할 정도로 줄어들었고, 폴라로이드와 같은 즉석 인화 사진기마저 일종의 ‘레트로’, 즉 과거의 추억으로 치부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생각했을 때, ‘만질 수 있는 사진’의 재유행은 일종의 뉴트로 유행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즉석 사진이 디지털로 옮겨갔던 사진의 추억을 다시 실물로 가져온 것이다.

 

무인 즉석 사진관은 사진사의 부재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고객이 스스로 셔터를 누르고 자세를 잡는 등의 능동성을 올리며 만족도 또한 높였다. 사진사와 관리자를 따로 둘 필요 없는 데다가 관리자의 상주도 사실상 불필요하기에 매장을 운영할 때 드는 인건비도 많지 않다.

 

따라서 무인 즉석 사진관은 고객은 비싼 기기와 필름 값을, 사업자는 사진사와 관리 인력의 고용 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고안된 ‘뉴트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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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 즉석 사진관의 확장


 

‘인생네컷 유행’이 불러온 것은 무인 즉석 사진관의 팽창뿐만이 아니다. 졸업앨범 이외엔 책장 안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앨범’ 또한 한두 개씩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다양한 크기의 네 컷 사진들을 담을 수 있는 앨범이 ‘인생네컷 앨범’이라는 상품명을 달고 날개 돋친 듯이 팔리고 있다. 사진을 다시 앨범에 보관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다양한 무인 즉석 사진관들은 관광 상품으로 쓰이기도 한다. 한옥마을 근처의 사진관에서는 ‘한옥네컷,’ 유명한 동네의 이름을 딴 ‘00네컷’ 등이 그 예시이다. 관광객들은 방문한 장소의 특색에 맞는 프레임, 소품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이런 프레임 활용에 영감을 받은 것일까, 사진관들은 고객들이 프레임을 커스텀할 수 있게 허용하기도 한다. 아이돌의 생일 혹은 이벤트에 맞추어 팬들이 제작한 프레임을 배포하기도 하고, 특정 사진관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제휴를 맺기도 한다.

 

다양한 프레임이 끊이지 않는 이상 무인 즉석 사진관들은 앞으로도 성행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에서 보이는 우로보로스


 

무인 즉석 사진관에서 찍는 대부분에 사진들에는 작은 QR코드가 첨부된다. 개인정보 활용 동의를 하느냐에 따라 첨부되지 않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동의 버튼을 누르고 QR코드와 함께 사진을 인화한다.

 

이 QR코드들이 퍽 재미있다. QR코드를 인식하면 사진을 저장할 수도, 네 컷을 찍는 동안 우리가 움직인 동영상도 저장할 수 있다. 이렇게 실물에서 디지털로 다시 저장된 사진들은 소장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인터넷을 바다로 공유된다.

 

그렇게 공유되는 사진들의 행선지는 대개 인스타그램이다. 인스타그램의 대유행으로 사람들은 인생의 태반을 SNS에 공유하게 되었다. 맛있는 것을 먹어도, 멋진 전시를 보아도, 재미있는 소설/영화/만화를 보아도 전부 인스타그램에 ‘포스트’ 한다. 이렇게 공유되는 콘텐츠 중 하나로 인생네컷이라는 새로운 콘텐츠가 급부상한 것이다.

 

인화 사진에서 디지털 사진으로, 무인 즉석 사진에서 다시 인스타그램 공유 포스트로. 끝없이 이어지는 굴레가 마치 우로보로스와 같지 않은가? 결국 모든 것은 돌고 돈다는 점이 유행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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