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국의 팝아트 속 호크니에게 첨벙 - 데이비드 호크니 & 브리티쉬 팝아트

글 입력 2023.04.0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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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첨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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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니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방금 누군가가 이 물속에 뛰어들어간 듯한 이 그림을 보면 굉장히 짜릿한 느낌이 든다. 그게 누구일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 나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저 장면 속에 내가 있다면 물에 들어가건 들어가지 않건 나에게 물이 튀었겠지?라는 생각과 동시에 찬물기가 피부에 닿았을 때 드는 저릿한 느낌이 올라오기도 한다. 사실 호크니 하면 이 그림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내가 생각하지 못한 큰 호크니의 세계와, 호크니를 담은 영국 팝아트의 더 큰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속으로 한번 뛰어 들어가 보라고, '더 큰 첨벙'을 유도하는 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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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의 부제인 'Swinging London'은 1960년대 사회적, 문화적으로 급변하는 시기의 활기차고 에너지 가득한 런던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실제로 영국은 팝아트가 가장 먼저 일어났던 국가이다.

 

1940부터 1950년까지는 2차 세계대전 전후로 추상표현주의가 지배했다면, 1960년대 산업혁명이 이뤄지면서 상업 예술인 팝아트가 등장한 것이다. 역동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영국의 젊은 아티스트들은 광고, 영화, 사진 같은 대중문화의 요소들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며, 전통적인 가치와 태도에 도전하고자 하였다.

 

한국과 영국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여 진행되는 이번 전시에서 호크니 작품 60여 점과 영국 팝 아티스트 14인의 오리지널 작품, 판화, 사진, 포스터, 영상 등 150여 점을 만나보자.

 

 

 

제 1장 : 브리티쉬 팝아트의 세계


 

처음 전시장을 들어서면 영국의 Swing 음악이 어깨를 들썩인다.

 

'맞다. 이거 호크니 단독 전시가 아니라 브리티시 팝아트 전시였지.'

 

오직 호크니의 '더 큰 첨벙' 볼 생각에 꽂혀있던 나를 다시 상기시키는 듯, 영국 팝아트 역사를 이끈 인물들의 대거 연보가 나열된 공간이 나왔다. 사실 팝아트는 미국이 너무 유명해서 영국의 팝아트가 있었고 심지어 발단지라는 사실조차 처음 깨달은 바였다.

 

미국의 팝아트가 더 유명해진 까닭은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경제적 부흥으로 개방적이고 수용적이었던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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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굉장히 의외여서 놀랐던 그림이다. 바로 우리가 익히 아는 호크니의 초기 작품이다. 어릴 적 엄마가 읽어주던 그림책에 수록된 악당의 모습 같은 이 그림의 제목은 <최면술사>이다. 제목만 몰랐다면 전쟁의 한 장면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제 2장 : 호크니의 스승, 리차드 해밀턴


 

전시를 보다 보면 계속 나오는 이름이 있다. 바로 팝 아트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리차드 해밀턴이다.

 

그는 호크니의 스승이기도 하며, 둘 다 영국의 왕립 예술원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는 인디펜던트 그룹에 소속되어 영국의 전후 예술을 이끌었다.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그림은 제목이 매우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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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가정을 그토록 다르게, 그렇게 매력적으로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1964

 

 

보면 살짝 머리가 어지러워질 정도로 우왕좌왕한 정돈되지 않는 느낌이 특징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콜라주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해밀턴은 '남자, 여자, 음식, 역사, 신문, 영화, 전자 제품, 자동차, 우주, 만화, tv, 전화, 정보'와 같은 카테고리를 정해 그에 걸맞은 이미지들을 미국의 매거진 캐시(Cache)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그럼 이쯤에서 이 그림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궁금할 것이다. 전후 침체된 경제로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영국 중산층의 집이 사치품으로 가득 찬 이 공간은 미국식 물질주의를 패러디한 것이다. 엄청난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고 있는 그림 속 남성의 손에 달린 막대 사탕이 대표적으로 그 의미를 품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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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1990년대에 실물화 작업으로 재현된다. 그가 선택한 모든 이미지는 모두 시사적이라고 한다.

 

1. 방 세 벽면의 벽지는 회로 기판을 스캔하여 만든 것으로 디지털 시대의 도래를 강조한다.

 

2. 방의 두 창문에는 1991년 걸프전을 연상시키는 먼지 구름 속의 탱크와 에티오피아 난민을 연상시키는 군중 등 전쟁 장면이 그려져 있다.

 

3. 탱크가 있는 창문 옆 받침대에는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에 대한 무력 사용을 옹호한 마가렛 대처의 캐리커쳐가 그려져 있다.

 

4. 흉상 옆벽에 걸린 그림은 1966년 미국의 팝 아티스트 로버트 앤디 애나가 만든 상징적인 'LOVE' 이미지를 '에이즈'라는 네 글자 단어로 변형해 히피 유토피아주의의 실패를 아이러니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외에도 그는 원작을 그렸던 1960년대와 달라진 많은 점들을 반영하였다. 특히 보디빌더가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 바뀐 점이 눈에 띈다.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변화된 여성상과 사회 분위기 속 성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제 3장  : 브리티시 팝 아티스트


 

팝 아트가 번성했던 이때, 브리티시 팝 또한 절정기였다. 특히 비틀즈의 활약이 엄청났다. 많은 팝아트 아티스트들이 팝 아티스트들의 앨범 표지를 그려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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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를 그린 팝 아트이다.

 

이 그림을 보며 가장 강하게 들었던 의문점은, '왜 4명의 인물이 통일성이 전혀 없는가?'이다.

 

놀랍도록 네 명의 인물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 고개를 돌린 방향, 옷, 표정, 눈빛 등이 다 다르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고 싶었을까? 이 때문에 이 넷은 굉장히 우중충한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기이한 느낌을 준다.

 

처음 이 작품을 보자마자 '이게 뭐지??' 아주 당황스러웠다. 이 그림의 경우 글자를 읽지 않으면 정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핸드폰을 들고 있는 손과 옆의 연결된 뇌는 무슨 인공지능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스마트폰과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제목을 보면 더 감이 안 잡힌다. <혁명적 자살 연대 밴드 2부>.

 

2부라면 1부도 있었다는 뜻인가? 제목을 읽는 순간 당시 영국의 반항적이고 암울했다는 사회 분위기가 확 피부로 와닿는다. 그림 속 글자들은 참가 인원들과 장소, 일시를 뜻한다. 정말 열렸던 공연이 맞는지 그 진실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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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반 이상을 다 보았다면 19세 이상만 들어갈 수 있는 조그마한 공간이 있다. 수위 높은 섹슈얼리티를 담은 팝아트 작품들이었다. 살짝 기겁했던 그림들도 있었고, 난해한 화가의 해석에 갸우뚱해지는 그림들도 있었다.

 

위 그림은 <아이스캔디>라는 제목이 뇌리를 스치지 않고 머무는 바람에 내 카메라로 담게 되었다. 아이스, 그리고 캔디 둘 다 녹는 성질이다. 여성을 아이스 캔디라고 표현한 이유가 무엇일까? 심지어 여성의 형체는 아이스크림의 형태로 표현된다. 죽어가는 여성을 아이스캔디로 만든 것일까?

 

하지만 굳이 아이스크림이 아닌 아이스캔디로서 녹는다는 얘기를 두 번 하여 강조하였다. 뜨거운 사랑이 식어 녹아버리는 마음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제 4장  : 데이비드 호크니와 물


 

 

"수영장 물이 다른 어느 물보다도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색깔은 인공적일 수 있고 그 춤추는 리듬은 하늘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 투명함 때문에, 물의 깊이도 반영합니다. 수면이 거의 잠잠하고 햇빛이 강할 때는, 색깔 스펙트럼이 있는 율동적인 선들이 어디든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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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호크니의 말을 읽고 그림들을 보면 정말 변화무쌍한 물의 찰랑거림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림이어서 이 수영장 물이 더 영롱해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햇볕이 내리쬐는 차갑고 파란 수영장은 설레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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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전시의 마지막 섹션에는 호크니가 그린 뮌헨 올림픽 그림들이 많았다. 호크니 특유의 쨍쨍한 색채와 유니크하면서 편안한 느낌을 주는 두툼한 그림선들은 올림픽의 치열함보다는 올림픽 때 생기는 유대감과 응원 속 따스함을 담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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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그림 <태양이나 죽음을 오랫동안 볼 수 없음을 기억하세요>이다.

 

만화같이 컷으로 구분하여 점점 커지는 노을을 표현하였다. 처음 이 문구를 읽고 머릿속이 띵했다. 이게 무슨 말이지?

 

하지만 곱씹으며 제목을 읽으며 사라지는 노을을 떠올리니, 번뜻 한 생각이 스쳤다. 모든 것을 비추는 태양이지만 정작 자신을 완전히 보여줄 수 없는, 아니 볼 수 없는 태양의 역설을 죽음이라는 인생의 아이러니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신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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