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루드비히, 피카소와 20세기 거장들 [전시]

글 입력 2023.04.0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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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건 곁에 두고 계속해서 보고 싶다는 말이 아닐까?

 

루드비히 부부는 피카소를 너무 많이 사랑했고, 그 사랑을 주체할 수 없어 그의 작품을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파생된 또 다른 사랑, 즉, 피카소와 다른 여러 거장들의 작품을 모아 잘 전시해 놓은 것이 루드비히 미술관일 것이다. 우리가 이 시대에 20세기 초반의 작품들을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소중하게 작품을 컬렉팅 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누군가보다 특별한 사람이거나 특별한 계층이어서만은 아니다. 이들의 노력은 고국의 문화 보존 및 다음 세대 예술가들에게 자유와 가능성을 무한히 열어줄 수 있다는 데서 더욱 의미가 있다.

 

포스터_최종_루드비히.jpg

 

 

1. 독일 표현주의와 러시아 아방가르드


 

1912년, 뮌헨에서는 칸딘스키를 중심으로 청기사파와 다리 파가 구성되었다. 이는 인상주의와 사실주의에서의 탈피를 목적으로 인간 본성의 순수하고 원시적인 역동성을 표현하고자 주력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 러시아에서는 사회 격변과 함께 ‘러시아 아방가르드’로 불리는 예술적 실천 및 이론이 확산되었다. 광선주의를 비롯해 러시아의 추상 예술 발달은 시작되고 칸딘스키, 말레비치 등의 화가들이 주로 활동하였다. 독일과 러시아의 두 예술 갈래는 인습을 타파하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가까이에서 자유롭게 거친 붓질과 강렬한 색채를 볼 수 있는 섹션이었다. 작품을 만지는 건 당연히 안 되지만, 미세한 부분까지 원하는 만큼 눈에 담으며 사유할 수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오자마자 짙은 파란색 배경과 조각이 눈에 띈다. 빌헬름 렘브루크의 ‘고개를 돌린 소녀의 토르소’ 작품이다. 회화의 매력에 이어 조각과 설치미술의 매력에 빠지고 있는 나는 한참이나 여러 면으로 작품을 관찰하게 되었다. 외에도 케테 콜베츠의 ‘애도’라는 작품에서는 전쟁의 참상에 대해 명상해볼 수 있다.


안 쪽 공간에서는 특히 러시아의 유명 화가인 나탈거리다 곤차로바의 ‘오렌지 상인’이 인상 깊었다. 이 작품에서는 색감의 자유로움을 그림 안의 모든 물체에서 느낄 수 있다. 주황색과 초록색으로 묘사된 오렌지, 상인이 입은 옷의 화려한 무늬, 진한 파랑의 배경에서 오렌지 상인의 에너지와 색감의 절묘한 조화를 느낄 수 있다.

 

 

 

2. 피카소와 동시대 거장들


 

페터 루드비히와 이레네 루트비히 부부는 피카소의 ‘아티초크를 든 여인’에 매료되었고, 이후 그의 작품을 수집하게 되었다. 현재 루드비히 미술관은 피카소의 작품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보유하고 있다. 피카소를 주축으로, 동시대의 거장들인 조르주 브라크,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마르크 샤갈 등의 작품들도 소개되고 있다.


조르주 브라크의 ‘유리병, 레몬, 과일 그릇’에서는 칼과 테이블보의 경계가 모호하고 원근이 무시된다. 빛의 명암을 표현하지도 않고 입체감도 없지만 물체가 포개져 있는 모습을 표현하였고, 무엇보다도 색감이 강조되어 표현되어 있다. 특히 짙은 갈색의 유리병, 레몬과 칼의 그림자가 두드러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파블로 피카소의 ‘여인의 초상화가 있는 타원형 접시’, ‘머리가 있는 직사각형 석판’ 등은 피카소의 회화 작품밖에 몰랐던 나에게 피카소가 도예라는 장르에 대해서도 시도했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루드비히 부부의 피카소에 대한 사랑이 시작된 시초인 ‘아티초크를 든 여인’를 직접 보게 되어 기뻤다. 추상적이고 모호하여 정형화되지 않은 작품 속에서도 전쟁의 참사나 깊은 비참함이 잘 느껴져 신기할 따름이었다.

 

 

 

3. 초현실주의부터 추상 표현주의까지


 

20세기 가장 중요한 예술운동인 초현실주의는 전후 유럽과 미국에서 생겨난 새로운 회화 운동의 토대가 된다. 그중 하나가 앵포르멜로, 혼돈의 이미지로 보이지만 전쟁으로 황폐해진 인간의 삶이 회복될 것임을 암시한다. 볼스나 장 뒤뷔페가 대표적인 화가다. 볼스는 초현실주의 특징인 표현주의적 자유분방함을 가장 잘 나타내었으며 장 뒤뷔페는 근대적 합리주의에 기초하여 어린이나 정신질환자 같은 비전문가의 그림에서 나오는 단순하지만, 대담한 표현에 매료되어, 이를 ‘아르 브뤼’라 칭했다. 1940 년대 초 유럽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전쟁을 피하려고 미국으로 대거 건너가게 되었고 그들은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를 부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섹션이었다. 초현실주의나 다다이즘,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기법인 자동적 기법 등 무의식에서 가장 자연적이고 철학적인 것들이 표출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안토니 타파에스의 ‘분홍 흔적이 있는 흰색 77번’은 단번에 시선이 빼앗기는 작품이었다. 이외에도 장 뒤뷔페의 ‘대초원의 전설’, 잭슨 플록의 ‘흑과 백 15번’, 읠렘 드 쿠닝의 ‘무제 Vii’ 등 해당 섹션의 모든 작품을 꼼꼼히 살피고 감상하느라 가장 시간을 많이 보냈다. 같이 간 친구와 작품에서 느끼는 바를 공유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같은 작품을 봐도 상상하는 범위나 해석하는 측면이 다 달라서 작품을 감상하는 또 하나의 지점이 되었다.

 

 

 

4. 팝아트와 일상


 

1960년대 서독의 경제 부흥은 현대미술의 중심지가 된 미국의 예술을 받아들일 기회가 되었다. 루드비히 부부는 미국 방문 이후부터 팝아트를 수집하게 되었다.


해당 섹션에서는 팝아트의 창시자인 리처드 해밀턴이 대량소비 대중문화를 비판하고 고유함에 입각한 전통 예술에 반기를 드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등의 작품도 확인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리처드 애스테스의 ‘식료품점’은 모든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감탄을 자아내는 조명 표현과 사진인지 그림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빛 표현이 섬세했다. 영국 팝아트의 거장인 리처드 해밀턴의 ‘스윈징 런던 67’은 1967년 믹 재거와 로버트 프레이저가 수갑을 찬 이미지를 그렸다. 그의 작품 이미지 단 하나만으로도 그 시기에 어떤 사건 사고가 있었는지를 알 수 있어 흥미로웠다. 또한 런던의 옛 패션을 통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덤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5.미니멀리즘


 

1960년 중반부터 구체화된 포스트모던의 물결을 느낄 수 있다. 미니멀리즘이란 이미지의 2차원성을 탈피함으로써 현실과 작품의 괴리를 최소화하는 작업이다. 독일에서 나치가 바우하우스 폐쇄한 후 요제프 알버스에 의해 ‘옵아트’가 등장하며 색채 조합의 상대적 시각적 효과를 실험하게 된다. 동일시기에 미국에서는 ‘스테인’ 기법과 색면화가 등장한다.


절제된 표현으로 오히려 감정과 감상을 증폭시킬 수 있는 것이 미니멀리즘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관람 당시 다른 관람객들, 즉 대중의 발길을 가장 오래 잡아 둔 곳이 이곳이었던 것 같다.

 

요제프 알버스의 ‘정사각형에 대한 오마주: 초록향’과 귄터 워커의 ‘큰 나선 I(검은색)과 큰 나선 II’는 어딘가 시선을 끄는 데가 있었다. 요제프 알버스의 작품은 색채와 명암의 조합 때문에 그랬다면, 많은 양의 무채색 못을 사용한 귄터 워커의 작품은 색채와 서정성에 따른 동시대 엥포르멜에 대한 반기였다는 점에서 대비되고, 작가들의 다양한 시도가 엿보여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6. 독일 현대미술과 새로운 동향


 

마지막 장에서는 퍼포먼스 아트. 비디오 이미징 등 다양한 장르들이 등장한다. 사회와 예술의 이상적 연결, ’사회적 조각’을 추구한 요셉 보이스, ’나이브 아트‘를 연상케 하는 페터 헤르만 등이 소개된다. 냉전 시기 동안 루드비히 미술관은 동독과 서독을 이어주는 역할을 수행하며 다양한 소통을 지속하였다.


게어르그 바젤리츠의 ‘채찍을 든 여인’, 볼프강 마트호이어의 ‘이젠 어떻게 해야 되나요’, 레이코 이케무라의 ‘녹색 공간’은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방사능이나 가상공간 같은 판타지적 요소가 포함되어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젠 어떻게 해야 되나요’의 경우 이카루스의 신화에 대해 다루었다고 한다.



[꾸미기][포맷변환][크기변환]피카소 직찍.jpg

 

 

독일과 현대미술 사조와 관련된 전시이다 보니 광대한 내용을 전시장에 압축시켜 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진 촬영이 통제되어 있고 몰랐던 미술사 관련 단어들이 많이 등장하다 보니 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공부하고 느끼기에 매우 좋아 보인다.

 

루드비히의 컬렉션 역사를 통해서 미술사뿐만 아니라 당시 시대상, 전시 상황, 예술 표현 방식의 변화 및 미술가들의 집합과 해체를 엿볼 수 있어 흥미진진했고, 미술은 시대의 언어라는 것을 실감케 할 수 있었다. 또한 작품들 말고도 공간의 분위기를 정해주는 중요한 요소로 배경이 있었는데, 배경에 어떤 색이 칠해져 있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확 바뀌었다. 이러한 점이 색감을 중요시했던 당대 미술과도 맥락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미술 작품으로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다. 모든 것이 돈으로 연결된 이 사회에서 컬렉팅의 묘미는 투자의 목적도 있겠지만,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피카소의 작품을 소유하고 있는' 루드비히 미술관이라는 타이틀은 절대 돈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언젠가 나도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모아 작은 박물관을 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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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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