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길을 알려주기 위해 길을 잃은 사람들 - 세상 끝 등대

도서 <세상 끝 등대: 바다 위 낭만적인 보호자>를 감상한 후
글 입력 2023.04.0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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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고독한 이에게는 등불이 필요하다

 

기술적인 것이 곧 영웅적인 것이었던 시대의 언어, 등대

불가능했던 건축의 폐허로 떠나는 서사시적 여행

 

쥘 베른의 소설 [세상 끝의 등대]를 인용하며 시작하는

[세상 끝 등대: 바다 위 낭만적인 보호자]는 스페인의 작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편집자인 곤살레스 마시아스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손수 만들었지만,

본인이 꾸며 낸 것은 하나도 없는 등대에 관한 책.


 

 

# 내가 몰랐던 등대 속 어두운 세상


 

등대 속 세상, 생각보다 험난했다. 길을 비춰주기 위한 등대에서는 어두운 역사가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등대를 떠올리면 ‘길잡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어두운 바다 가운데 유일한 빛, 배들은 그 빛을 따라가며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 빛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거대한 파도와 폭풍에 힘을 잃어 선박이 뒤집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내몰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반짝이는 구명조끼, 등대. 물에 온전히 뜨기 위해서 우리 삶에서 등대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임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등대 안의 모습을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등대의 불빛은 어디로부터 나온 것이며, 등대가 무너지지 않게 보수하고 수리하는 작업은 누구를 통해 일어나는 것일까. 이 질문의 해답을 바로 이 도서 <세상 끝 등대>를 통해 찾을 수 있다.

 

<세상 끝 등대>는 소설 작가 쥘 베른의 소설 제목으로 실제 책에서 쥘 베른에게 영감을 주었던 등대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에서 다양한 ‘등대지기’들이 등장한다. 사실 등대지기들의 역할을 잘 인지하지 못했다. 정확히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그들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는지. 솔직하게 말하면 과거에 등대 안에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동시대에 나 같은 사람이 머물렀다면 나의 이런 편협한 생각 덕분에 등대지기들이 매우 억울해하지 않았을까.

 

그들의 자세한 생활을 들여다보면 내 과거의 생각이 왜 “편협”했다고 했는지 알 수 있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좁은 섬 혹은 암초 위에 세워진 등대를 지키는 등대지기들은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그들을 구하러 와주는 구조 대원들이 없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거친 파도와 폭풍 때문에 섬과 암초에 접근이 어려웠던 것이다.

 

그럼 그들의 식량과 물을 당연히 바닥이 보이지 않았겠는가. 아사는 물론이고 거친 바람과 파도 때문에 휩쓸려 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대표적으로 ‘로셰오즈와조 등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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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셰오즈와조 등대’가 1870년, 등대가 처음 설치되었을 때.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던 피터 미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악명 높은 파도 탓에 캐나다에서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등대와 등대지기들을 위한 관사를 성공적으로 건설했다는 소식을 알리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나라면 이 말을 듣자마자 멀리 도망갔을 것이다. 아니다 다를까 등대에 불이 켜지면서부터 불길한 징조가 나타났다고 한다. 첫 번째 등대지기는 사직서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그 누구도 불운한 일을 겪지 않고 10년이나 이 등대를 지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이후의 등대지기들도 바다표범을 사냥하러 나갔다가 사체로 발견되거나 대포를 만지다가 한 쪽 팔을 잃는 등 다양한 불행을 겪었다. 불행의 응어리들이 르셰오즈와조 등대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은 아닐는지. 병에 걸리고 공격적인 동물들에 의해 공격받고, 이 등대뿐만 아니라 다른 등대의 등대지기의 삶도 ‘폐허’ 그 자체였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배 위에 있는 사람들은 길을 찾기 위해 등대만을 의지한다. 그러나 정작 등대 안에서 바라본 바다는 나아갈 수 없는 감옥, 지옥이었다는 사실이 굉장히 아리게 다가온다. 길을 찾아주기 위해 길을 잃어버리는 삶. 바로 그 삶이 등대지기의 일생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문장이 아닐까.

 

누군가는 이를 ‘희생’이라고 부르겠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물론 그들의 ‘희생’을 부정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목적 없는 희생은 되려 사람들은 고통 속에 몰아넣는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충분한 기술적인 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실천하기 어려운 방안들도 많았겠지만, 적어도! 등대지기들의 안정적인 삶을 위해 주기적으로 지원을 마련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심리상담사를 보낸다든지, 다른 시민들에게 조금씩 식량을 모아서 등대지기에게 보내주는 등의 배려가 이루어졌다면 아마도 등대지기들이 누군가의 빛에 의해 길을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 등대에 대한 잔혹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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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제일 놀란 것은 바로 ‘그림’이었다.

 

동화책처럼 등대들의 모습을 그려준 삽화는 이야기에 몰입하게 충분한 장치였다. 실제 사진이 들어갔다면 어두운 내용과 어우러져 우울해지는 느낌을 자아냈을 텐데 그림으로 등대를 표현함으로써 등대에 얽힌 슬픈 이야기들을 조금이나마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림과 함께 보는 등대 백과사전! 사실 그림을 보면서 등대 계의 ‘잔혹동화’ 같다는 생각도 하였다. 잔인하고 어두운 이야기를 동화스러운 이미지로 풀어낸 등대 동화! 이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등대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등대의 측면을 보여주는 도면, 등대의 현황, 그리고 등대의 현 위치 등 다양한 정보들이 어우러져 등대 투어를 떠나는 느낌도 들었다.

 

책을 덮고 난 뒤 생각했다. 내가 만약 여행을 떠난다면 각 세상의 끝을 비추고 있는 등대들을 방문하는 등대 투어를 계획해 보고 싶다고 말이다. 세상의 끝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볼 때, 등대지기들이 느꼈던 외로움과 공허함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등대지기들만이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파도의 물결과 바람의 흐름을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이 어둡고 축축한 등대 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그들만이 볼 수 있는 특권, 등대를 향해 달려오는 수많은 불빛과 바람, 그리고 파도들의 풍경 덕분이 아닐까. 그들의 불행하고 부당한 처지에 대한 불평이 특권을 누릴 때마다 눈 녹듯이 녹아내렸던 것은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답은 등대와 등대지기들만이 알고 있겠지. 그 답을 듣기 위해 지금 당장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등대를 찾아 모험을 떠나보고 싶어졌다. 내가 혹시 연락이 안 된다면 그 특권에 푹 빠진 것이니 말리지 말기를. 여러분도 이 책을 읽고 등대의 이야기와 그 외 모든 것에 흠뻑 빠져보길 바란다.

 

 

[임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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