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그래 나만 그런 거 아니지 다 이렇구나'

문화와 글쓰기에 관한 티키타카.
글 입력 2023.03.10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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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내면의 생각을 바깥으로 끄집어내, 감히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보여주는 대담한 행위이다. 나는 오랫동안 글쓰기의 이런 면과 쉽게 타협하지 못했다. 따라서 내 글에는 언제나 나의 이야기가 쏙 빠졌다. 내 속마음은 영화 속 인물이나 '일반 대중'의 심리 속으로 한번 굴절되어 나타났다.

 

에디터 활동의 수많은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사람들이 정성들여 다듬은 생각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글을 봤고, 다양한 나잇대에 있고 (학생을 포함해)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제 컬쳐리스트가 되신) 권기선 에디터님은 그중에서도 눈에 띄었다. 가장 큰 이유는 나와 처한 상황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나는 비슷한 이유로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고, 그럴수록 글에는 나의 이야기를 점점 더 줄여나갔다. 하지만 기선님은 달랐다. 정반대였다. 모든 것을 공개하고 계셨다. 이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호기심이 생겼고, 운이 좋게 만나게 되었다.

 

다음은 권기선 에디터님과 만나 나눈 대화의 내용이다. 대화는 '티키타카'로, 질의응답은 인터뷰로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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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운동을 하는 것에 관한 티키타카.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별 게 없어요. 등산 많이 다니고 있어요.

 

등산을 꾸준히 하신 건가요?

 

제가 초반에 글 썼을 때 그때부터 9월쯤부터 등산을 본격적으로 다녔어요. 그래서 그때 한창 다니다가 이제 추워져서 못하다가 요즘에 날씨 좀 풀려서 다니고 있습니다. 저번주는 인왕산 갔어요. 높은 산은 혼자 가니까 좀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용마산 갔다 왔어요. 그동안 운동을 많이 못해서 운동도 조금 더 하려고 합니다.

 

다른 운동도 하세요?

 

그냥 홈 트레이닝. 확실히 운동이랑 앉아있는 시간이랑 어느정도 밸런스가 맞아야 스트레스도 풀리고 그런 거 같아서 밸란스를 맞추려고 하고 있어요.

 

되게 활동적이신  거 같아요.

 

원래 운동 많이 안 좋아했었는데 몇 년 전부터 운동을 시작했고 그때부터 운동이 좋아졌어요. 원래 옛날엔 되게 안 좋아했어요.

 

 

 

알아가기: 엠비티아이(MBTI)에 관한 티키타카.


 

기선님도 약간 엠비티아이를(웃음) 싫어하시지는 않을 거 같아요 

 

안 싫어해요. 과몰입자에요. 

 

뭔가 글을 읽으면 그래도 사람의 성격이 보이잖아요. 제가 나름대로 예상을 한번 해봤는데, 왠지 정말 굳이 콕 찝으면 인프피 같아요. 아닌가요?

 

아니요. 맞아요. 인프피, 인프제 나와요. 그러니까 둘이 왔다갔다.

 

나름대로 근거도 있어요.

 

I는 프로젝트 당신에서 본인 인터뷰하신 내용 중에 '소심해서 먼저 다가가지 못한다.'라고 하셔서. I 분들이 내면적으로 깊이 생각하는 게 있고, 기선님 글에서는 그런 게 되게 잘 드러나서 '내면적인 에너지가 확실히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면서 확신을 했죠.

 

N 같은 경우는 살짝 애매했는데 N이 상상력이 있는 유형이잖아요.

 

맞아요. 

 

글을 쓰신 것 중에 자세히는 기억 안 나지만 자기연민이 있다고 하셨죠. 보통 자기연민 같은 경우는 상상력이 필요한 거잖아요. 그래서 N이라고 예상했답니다.

 

F는 '감정의 극단에서 오는 것들이 있다'라고 쓰신 적이 있어서.

 

P 같은 경우는 여행 관련된 글을 쓰신 걸 보면 아 이분은...

 

계획을 '1'도 안 하는 (웃음)

 

즉흥적인 여행을 가신다고 하셔서. '즉흥성으로 여행을 가신다', 그래서 INFP라고 생각했습니다.

 

근거가 아주 탄탄하시군요.

 

저도 인프피에요.

 

 

 

인터뷰 #1: '느네 김치 있냐' - 할머니와 나


 

오피니언 '느네 김치 있냐'

 

 

제가 제일 인상 깊게 봤던 건 '느네 김치 있냐'. 딱 사진도 어렸을 때 할머니와 찍으신 사진. 안 눌러볼 수 없는 글이죠. 인생의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을 때의 무력감을 해결하려고 하는 발악 같은 것을 가만히 관찰하는 글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할머니 당신의 삶까지도 뭔가 관찰을 해보고, 그것을 기선님 스스로의 삶에도 녹여낼 생각을 하셨다는 게 저에겐 되게 기발하더라고요. 이 글이 저는 너무 신기해서 어떻게 쓰셨는 지가 궁금했어요. 

 

사실 그때가 크리스마스 그쯤이었어요. 시점은 할머니와의 데이트 이후. 그니까 카페에서 '아, 이제 이번 주 써야 되는데' 이러면서 앉아있는데, 밖에 눈이 오는 거예요. 함박눈이. 근데 그게 왜이렇게 슬픈지. 저는 원래 눈이 기쁜 사람이거든요. 저는 눈이 오면 너무 즐거운 사람인데 (그 날따라) 너무 그게 슬픈 거예요. 또 그러면서 작년에 전 남친이랑 같이 있었는데, 이런 생각도 들고 갑자기 확 우울한 거예요.

 

그래서 '이건 뭔가 필시 이유가 있어, 내가 이렇게까지 다운되는 건 이유가 있어.' 해가지고 진짜 그냥 막 썼어요. 이건 내가 지금 내가 너무 유용하다는 증명을 아무 데서도 못해서 내가 지금 이런 거라는 결론이 났어요. 그렇게 글을 쓰고 나서 할머니와의 만남을 문득 떠올렸는데 '할머니가 맨날 김치 있냐고 나한테 물어보시는 게 그런 이유려나?'(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는데 마침 얼마 전에 만났으니까. 저랑 좀 동질감을 느낀 거죠. 그래서 할머니의 이야기도 추가를 하면서 글을 완성했습니다. 처음부터는 뭐 당연히 그거를 쓸 거라고 생각도 못했어요.

 

 

'할머니도 이런 마음으로 그런 하신 걸까?' 약간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제 쓰게 되신 거겠네요. 

 

네. 그리고 전부터 어렴풋이는 할머니가 왜 그러는지 알곤 있었던 것 같은데, 제가 한번 그 감정을 느껴보니까, 이런 거였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어요.

 

 

옛날엔 몰랐는데 나중에야 이해되는 감정들이 있더라고요.

 

맞아요.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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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티 플레저: 정가영에 관한 티키타카.


 

오피니언 '취향의 발견 (1) 정가영'

 

 

정가영 감독님 작품. 좋아하시죠? 다 보셨나요?

 

네. 거의. 작품 되게 많잖아요. 유튜브에 들어가면 또 짜잘한 거 되게 많고. 유튜브에 있는 거는 뭐 공짜니까 많이 봤고. 장편은 <밤치기>랑 <비치 온더 비치>랑 <연애 빠진 로맨스>. 그거 세 개 본 거 같아요.

 

<밤치기>가 제일 좋으셨어요? 저도 밤치기로 정가영 감독님을 처음 알았거든요.

 

사실 제목이 되게 세잖아요. 밤을 친대요. 왜? (웃음) 어떻게 치는데?

 

감독님 인터뷰에서는 '밤을 친다'는 게 '나 뭔가 해냈다' 이런 의미로 했다고 하는데... 그리고 또 내용 자체가 되게 도발적인 내용이어서.

 

저는 확실히 상업 영화인 <연애 빠진 로맨스>가 제일 재밌었고, 대사가 좋았던 거는 대사가 적나라했던 <비치 온더 비치>. 근데 정가영 감독은 원래 좋아하셨던 거예요?

  

잘 없는 캐릭터 잖아요 본인이 나와서 그런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한다는 게. 근데 천연덕스럽게 도발적인 얘기도 하고. 그래서 저는 연애 빠진 로맨스가 재밌있긴 했는데 본인이 안 나오니까 살짝 아쉬웠던 것도 있어요.

 

그 날 것의 느낌이 조금 줄죠. 반갑군요. 사실 그 글 쓰는 것도 망설여지는 거예요. 너무 세니까.

 

저는 (그 망설임이) 이해가 돼요.

 

왜냐면, 내가 아는 사람도 읽으니까. (웃음) 그래서 쓸까 말까 하다 '몰라 좋은데 어떡해' 이러면서 썼어요.

 

근데 제가 보기엔 잘 조절해서 잘 쓰신 것 같아요. (웃음)

 

더 적나라하게 쓸 수는 없고...

 

이 정도면 딱 입문하기 딱 좋은 글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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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 책과 글과 단어


 

기선님은 평범한 언어들로 글을 쓰시는데 가끔 특이하거나 특별한 단어들이 있더라고요. 평범한 언어들을 사용해서 잘 조합을 하시는 거 같은데, 뭔가 말의 맛도 있고 어쩌다 한 번씩 쓰는 문학적인 단어들이 그게 이제 기선님의 글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인 것 같더라고요. 이런 단어는 아무래도 평소에 알고 계시니까 쓰시는 거겠죠?

 

아니요. 사실 일상생활에서 그런 단어를 쓸 일이 없잖아요. 그냥 '속상해서 좀 개빡쳤어' 이런 말을 쓰겠죠. 근데 글을 쓸 때는 정확하게 짚어내는 데에서 쾌감이 들더라고요. 저는 글을 읽을 때도 (작가가 어떠한) 상황에 대해서 작가만의 통찰을 하고, 그걸 잘 표현하는 단어를 쓰는 글을 읽을 때 쾌감이 들어요. 그래서 저도 글을 쓸 때 그렇게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근데 저도 단어를 그렇게 많이 아는 게 아니다 보니까, 에디터 활동을 하면서 오히려 더 공부를 하게 되기도 했어요.

 

 

그러면은 '나 약간 이런 표현을 쓰고 싶은데' 싶을 때 유의어 같은 걸 찾아서?

 

맞아요. 처음에는 다 제가 그냥 아는 단어로만 다 써 놓은 다음에 더 정확하게. 이게 단어 하나 하나의 차이로 뉘앙스가 달라지잖아요. 유의어를 엄청 검색해요. 아니면 따로 노트북 메모지에다가 쓰고 싶은 단어들을 쭉 정리해 놓거든요. '나중에 한번 이거 써야겠다' 싶은 단어들. 나중에 그런 단어들로 갈아 끼우는 거죠. 내가 아는 단어랑 멋있는 단어를 갈아 끼워서 글을 쓰면 정확한 표현이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전체 배경은 이제 기선님의 말로 돼 있는데, 하나하나 특별한 거로, 네일 파츠 처럼.

 

네 맞아요. '여기서 이 단어는 좀 맘에 안 들어' 이런 거 있잖아요. '좀 더 정확한 단어 없나?' 생각해서 찾아보고, 찾은 단어로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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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3: 글쓰기에 관한 긴 대화


 

보통 기고를 하실 때 글 쓰는 기간이 어느정도 되나요?

 

에디터들은 기고 기간이 일주일에 한 번이잖아요. 다 비슷하실 것 같기도 한데 쓰는 것만 치면 3일 정도인 것 같고요. 기고 후에 하루는 쉬고 한 3일 정도 기고 소재를 모아요. 보고 싶던 영화도 봤다가, 책도 봤다가. 모은 다음에 거의 한 3일 정도 만에 쓰지 않나요? (그쵸.) 일주일이 있어도.

 

 

퇴고를 많이 하시나요? 

 

저는 퇴고를 엄청 많이 하는 편인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해서 최근에는 제가 진짜 '제 글쓰기'가 너무 바쁜 거예요. 그래서 최근 글들은 퇴고를 많이는 못하고 거의 초고랑 비슷하게 해서 마음에 안 들긴 한데. 그래도 초반에는 열심히 한다고 퇴고를 내기 전까지는 계속 한 것 같아요.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사람이 힘들고 우울할 때 나중에 못 보겠지만, 그래도 쓰게 되잖아요. 감정을 날리고 싶어서, 어디다가 털어놓고 싶긴 한데 솔직히 그런 말을 (다른 사람에게) 하면 상대방한테 (감정이) 전염되잖아요. 그래서 재수할 때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정말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엄마가 항상 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셨는데, 그래서 제가 책을 되게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소설 같은 걸 혼자 정말 얇게 써봤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림도 그려가지고. 그런 느낌으로만 글을 쓰다가 본격적으로 쓴 건 이제 재수할 때 힘들어서. 완전 일기 형식으로.

 

그래서 블로그에 글을 썼는데 다 비공개 글이었어요. 20대 초반에 엄청 좋아하는 사람 만나서 그때 또 마음이 아프면 글로 풀어내고. 기록을 하는 게 좋다는 걸 느낀 게 그 때의 감정은 이제 다 휘발돼서 없잖아요. 근데 그 글들을 보면 '야 내가 아닌 거 같아' '이거 내가 썼다고?' 이런 것들이 있어요. 이 글의 주인공은 대체 누구야, 난 기억도 안 나는 거예요. 그런 감정들을 두고두고 되새길 수 있다는 점이 좋고. 그래서 아직도 그 장점 때문에 흥미를 잃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글 쓰다 보면 제가 외면했던 제 삶의 중요한 것들을 마주하게 되는 그 기분이 좋아서.

 

 

손으로 글씨는 안 쓰세요? 가끔 감정 같은 걸 손으로 썼을 때 뭔가 이제 (그 감정은) 내 손을 떠났다, 이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뭔지 알 거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무조건 다이어리 뒤에 줄글 칸이 많은 걸 사거든요. 거기다가 (손으로) 쓰긴 쓰는 것 같네요. 블로그 처럼 길게는 안 쓰고 거의 다 그냥 짧게 쓰는 것 같아요.

 

 

오피니언 '백수, 솔로, 김밥...평범한 우리도 충분할 수 있을까요?'

 

처음에 쓰신 글이 이제 '말아' 리뷰. 처음 쓰신 글이라 그런지 되게 공들여서 쓰셨구나, 느껴지더라고요.

 

맞아요. BGM도 넣고 사진도 많이 넣고.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들켰다 생각했어요. (웃음) 제가 지금까지 기고 경험도 없고, 누군가한테 절대 제 글을 잘 안 보여줬어요. 너무 부끄러워서. 블로그도 다 비공개로 해놓고, 친구들한테도 거의 뭐 당연히 안 보여줬고. 근데 처음으로 기고한 글이니까 되게 긴장을 했었어요.

 

초반에 쓴 글들을 다시 보면 저 답지 않다고 느껴지는 거예요. 저는 문체에서 사람이 드러나야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글에) 너무 힘을 줬고. 사실 저는 그렇게 되게 견고하고 철두철미한 사람은 아닌데, 글에서는 그렇게 보이도록 엄청 노력을 했으니. 저랑 괴리가 있는 거예요. 초반에 쓴 글들에 그런 긴장감이 있었어요.

 

그래도 의미 있다 생각하는 건, 점점 더 '인간 권기선'이랑 비슷한 글이 뭔지 조금은 알 거 같다는 것? 그게 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초반에 너무 저 같지 않은 글을 쓴 경험이 불편하더라고요. 한수희 작가님이라고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이 있는데, 그 분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신 거예요. '글을 쓰다 보면 자기 기만을 조심해야 된다.' 그러니까 내가 글로도 나를 속이는 거죠. '나 정말 이거 맞아? 진짜 이런 이유 맞아?' 계속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그걸 보고 내 옛날 글은 다 자기 기만이구나, 하면서 반성을 했거든요. 하여튼 그래서 글 속 긴장감은 정확하셨다. (웃음)

 

 

처음 리뷰 영화를 '말아'로 선정하신 이유는 아마도 주인공에 이입이 됐기 때문인 거 같기도 해요.

 

네, 정확해요. 뭐 청년백수의 이별하는 상황? 이걸 어떻게 안 봐요. 내가 지금 똑같은데, 난데. 거기서 주인공이 전 남친이랑 찍은 비디오 카메라 같은 걸 집에서 혼자 봐요. 울거나 하는 건 아닌데 그냥 회상을 하는 거겠죠. '이걸 어떻게 안 봐, 이거 봐야 돼' 해가지고 바로 보고.

 

당연히 그것 때문에만 쓴 거는 아니고, 제가 그 글에서 책 '피로사회'를 인용했죠. 현대인의 정언명령 같은 거 있잖아요. '절대 시간 낭비해선 안 되고, 우린 부지런하게 살아야 되고, 절대 게을러선 안 돼, 우린 다 할 수 있어' 이런 무한 긍정에 빠진 현대인의 (정언명령). 저도 그게 어느 정도 저한테도 적용이 될 거 아니에요. 근데 이 (주인공)주리라는 애는 정말 작은 거에 미소를 짓거든요. 가장 기억나는 장면은 김밥을 말고, 먹고, 괜찮다고 씩 웃는 장면인데 진짜 별거 아닌 그 장면이 저한테는 너무 와닿는 거예요. 그래서 분명히 이건 나만 느끼는 건 아니다, 모든 현대인들이 자신을 초라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별한 사람도 얼마나 많아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이걸 꼭 알려야겠다, 영화 너무 좋다, 생각해서 쓰게 됐죠.

 

그리고 이 영화가 제 고정관념. '무조건 열심히 살아야 되고 초라하면 나는 괜찮지 않은 거야.' 이런 나만의 자의식을 깨게 해 주는 영화이기도 해서 첫 글 소재로 골랐어요. 글에서 제가 '영화적 시선으로 본다면 아무것도 아닌 Nothing도 Something이 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그런 메세지에 좀 꽂히는 것 같아요. 저 스스로 그렇게 생각을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글을 썼습니다.

 

 

오피니언 '목표는 없고요, 그냥 방황 좀 해보려고요'

 

그 다음에 쓰신 글이 '목표는 없고요, 그냥 방황 좀 해보려고요'. 첫 문장이 '이번 해 늦여름 쯤, 나는 ‘직장’ 그리고 ‘가족, 애인과의 관계’를 상실했다.' 로 시작하잖아요. 제가 이런 표현을 썼네요. '이런 덤덤하게 상실을 대하 태도 때문에 기사님에게 반하기 시작했다.' (웃음) 이런 경험들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안 좋은 때의 일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가장 못난 모습이잖아요. 이런 걸 공개하는 게 되게 저는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거 같아요. 누군가를 사람이 응원하게 될 때가 그 사람이 힘든 걸 볼 떄. 공감이 되잖아요. 그래서 응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나만 그런 거 아니구나' 하면서 마음이 좀 놓이는 면이 있단 말이죠. 그리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잖아요. 직장의 상실도 그렇고 이별도. 저도 그때 되게 힘들었는데 조금 지나서 그래도 담담하게 쓸 수 있었던 것 같고, 이건 부끄러울 일은 아니니까. 다 그럴 수 있는 거죠. 내가 나쁜 게 아니고 서로 안 맞은 것 뿐이고. '응 이럴 수 있지 괜찮아' 이런 마음으로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더 자꾸 제 안 좋은 면들을 (웃음) 뭐 친구랑 싸운 얘기, 전 남자친구한테 연락했다 까인 얘기를...

 

그게 다 분명히 저를 만드는 좋은 자양분이 되잖아요. 이별하고 나서 또 겪는 감정들이 분명 나를 또 괜찮은 사람으로 분명히 만드니까. 그래서 그런 거를 저 스스로도 솔직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고. 남들이 보고도 '그래 나만 그런 거 아니지 다 이렇구나' 이랬으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으로 쓰는 거 같아요.

 

 

그렇게 고민하는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마음가짐이 되게 신기하더라고요. 멋지다고 느꼈어요. 원래 그러신 분이었을까? 아니면 다 이제 여러 가지 일들을 겪고 그렇게 되는 걸까 궁금해지고.

 

사람이 계획이나 미리 정해 놓은 것에서 벗어나면 스트레스를 받잖아요. 저도 어쩔 수 없이 계속 그랬었는데 인생이 내 마음로 안 되잖아요. 나 헤어지기 싫었는데 헤어졌고, 나 이 회사 계속 다니고 싶었는데 끝났고, 가족이랑도 잘 지내고 싶었는데, 안 됐어. 내 맘대로 안 되잖아. 그러니까 그냥 그때부터 좀 계속 나를 괴롭히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그냥 좀 놔버린 것 같아요.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해탈이란 말도 약간 맞는 것 같은데, 그렇게 내가 생각지도 않은 걸 했을 때 또 만나는 재미있는 일들이 있잖아요.

 

 

오피니언 '살아있다는 감각'

 

'단순한 열정'.  이것도 좀 오랫동안 쓰셨겠다, 싶었습니다. 구성 기간이 작업 기간이 얼마나 되나요?

 

이거 글이 길이가 짧지 않잖아요. 꽤 길거든요. 근데 심지어 이거 이틀 만에 쓴 거거든요. 저도 질문을 받고 생각을 해본 건데 가끔 글을 쓸 때 '나 이 소재로 써봐야지' 했는데 진짜 안 써질 때 있잖아요. 한 3일 지나도 진짜 제대로 안 써질 때. 그런 글은 사실 제가 소재에 그렇게 큰 관심이 없던 것이더라고요. 제 생각이 많이 축적되지 않아서 쓸 수 없던 건데 이거는 빨리 쓴 걸 보니까, '나 진짜 사랑에 관심 많은 애구나. 되게 좋은 거 같아.' 이런 생각을 이 질문을 받고 하게 되었어요.

 

쓰고 싶어도 오래 걸리는 글은 평소 내가 그리 관심이 없던 소재일 확률이 높더라고요. 반면, 예상보다 빠르게 써지는 글은 평소에 나름 생각을 축적해 둔 글이고요. 이 글은 후자였어요. 사랑에 '과몰입'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쓰니 예전보다 금방 써졌던 글이었습니다.

 

 

 

끝: 영화에 관한 티키타카.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이 궁금해지면 그 사람에게 내가 꼭 하는 질문을 던졌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시는지?

 

어떤 거 좋아하세요?

 

저는 취향이 '이렇다 저렇다' 이렇게 한꺼번에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굳이 따지면은 자극적인 걸 좋아하는 거 같아요. 잔잔한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구요.

 

그래서 '말아'가 안 끌렸을 수도 ㅋㅋㅋ (인터뷰 중에 '말아'가 별로 끌리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저랑 좀 비슷하실 것 같은데. 제가 되게 좋아하는 영화들이 '향수', '박쥐', '아가씨'. 겹치시는 거 같다니까요? (웃음) 그리고 '화차', 이런 거 좋아하고요. 제가 진짜 흥미진진하게 보는 건 이런 영화들. 그래서 (글로는) 감히 못 쓰겠는, 딱 그런 영화들. 인간의 내면에 엄청 딥하게 파고들고 우울한 감정 다 담은 영화, 뭐 '님포매니악'도 잘 봤고.

 

전 그거 진짜 보고 힘들었어요.

 

저도요 그건 대표적이죠. 심지어 러닝타임도 엄청 길잖아요.

 

다시 못 볼 것 같아요.

 

(저는) 다시 보고 싶어요.

 

만약에 본다면 극장에서 상영할 때에나 겨우겨우 볼 거 같고. 근데 극장에서 보면 너무 진 빠질 것 같아요.

 

맞아요

 

혹시 바빌론 보셨어요? 저는 (체력적으로) 힘들었어요. 영화 자체가 참 많이 자극적이고 많이 지저분하거든요.

 

재미는 딱히...(없나요)?

 

재밌긴 재밌어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아할 만한 얘기인데 좀 힘들었어요.

 

바빌론 한번 봐야겠다. 궁금하긴 했는데

 

아마 이제 VOD로 들어갈 거예요. 한번 보세요. 선뜻 추천해 드리기가 좀 멋쩍다. (웃음)

 

너무 길어서 ㅋㅋㅋ

 

길기도 긴데 영화가 진짜 말 그대로 지저분해요. 그런 장면들이 조금 있어요.

 

더 보고 싶어지는데 ㅋㅋㅋㅋㅋ

 

근데 좋아하시는 영화들 목록을 들어보니까, 저랑 좀 겹치는 거 같아요. 확실히. 봉준호? 박찬욱?

 

둘 중에? 박찬욱인거 같아요. (난 이때 조금 감동했다)


또 요즘에 그런 느낌 뭐 있었지.

 

그래서 '본즈 앤 올' 그것도 보고 싶었는데, 그것도 아직 못 봤고.

 

저도 추천 많이 받았어요. '네가 좋아할 영화다'

  

영화 취향이 비슷하구나. 근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그거는 약간 조금 다른 결 아니에요?

 

음산하고 이런 느낌이 나지는 않은데 그래도 B급 감성이 있으니까.

 

저는 그런 B급 감성도 좋아해요.

 

저도 B급 좋아해요. 딱 OCN에서 할 만한 비디오 가게 취향. 

 

근데 영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딱히 계기는 없는데 어렸을 때부터 그냥 엄마가 텔레비전에서 하는 영화들, 그건 심의가 있어도 보면 보고 아닌면 아닌 거잖아요. 엄마는 그걸 굳이 막는 타입이 아니었어가지고 이것저것 자극적인 거 다 보고 그러면서 좀 좋아하게 된 거 같아요. 

 

 

 


  

 

기선님은 앞으로 컬쳐리스트 활동을 하신다. 기고 일정이 조금 여유로워진 만큼, 문화 초대에도 응해볼 계획이라고 한다. 기선님의 취향과 생각이 담긴 글이 앞으로도 기대된다.

 

 

[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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