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느네 김치 있냐 [사람]

무용하지 않다는 증명
글 입력 2022.12.1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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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의 어느 날 [1]


 

#할머니

 

얼마 전, 할머니와 데이트를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오랜만에 뵌 할머니였다. 이번 만남도 할머니가 전해 주시겠다는 반찬을 끝끝내 거절하며 이뤄졌다. 어차피 우리 가족은 반찬을 대부분 사 먹으며, 일을 하니 밖에서 밥을 먹고 들어오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게 그 이유였다. 결국 할머니는 손녀에게 주시겠다며 목도리를 겸할 수 있는 숄과 브로치만 들고 오셨다.

 

우리는 간단한 브런치를 먹으며, 한참 수다를 떨었다. 연말을 맞이한 시기인 만큼 대화는 자연스레 나이로 흘러갔다. 기선이, 네가 이제 몇 살이지? 나 이제 29살 되죠. 세상에. 할머니는 연세가 어떻게 되시지. 할머니는 손가락을 펴들었다. 열 손가락 중 일곱 개를 펴신 후, 금세 한 손을 쫙 펴 다섯 손가락을 내보이셨다. 아, 할머니가 벌써 일흔다섯이구나. 새삼스레 할머니와 손녀는 서로에게 나이를 밝히고 다시 차를 마셨다.


할머니는 생의 대부분을 할아버지와 함께하셨다. 단순히 부부의 시간을 말하는 게 아니다. 두 분은 매일 마주하는 동료로도 함께하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동대문에서 옷을 떼와 지방에다 파는 의류 장사를 하셨다. 할아버지는 운전석, 할머니는 조수석. 어릴 때는 지방까지 따라갔던 기억도 얼핏 있다.

 

10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운전을 하지 못하는 할머니는 자연스레 지방에서 옷을 파는 그 일도 할 수 없게 되셨다. 남편의 상실, 그리고 생업의 상실.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것들의 상실이었을 테다. 할머니는 아직도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해 방황하는 듯 보이셨다. 매일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으니, 일단 무작정 집 밖으로 나오신다는 할머니는 나와 그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상실감으로 인한 공허나 방황에 대해서 말이다.


 

 

연말의 어느 날 [2]


 

#물경력

 

그날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날이었다. 왜냐, 실업 급여가 내년 1월까지니까. 이제 슬슬 다시 취업을 해야만 적은 돈이라도 손에 쥘 수 있다는 말이다.


포트폴리오 업데이트를 위해, 저장해둔 전 회사 작업물들을 열었다. 계약 만료로 퇴사한 이후, 괜시리 회사가 괘씸한 마음에 거들떠보기도 싫어서 구석으로 치워두고 보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2022년의 작고 소중한 나의 작업물들. 꺼내서 정리하니 양은 꽤 되었다. 이 정도면 아주 없지는 않은 듯하여 내심 뿌듯해했다.

 

유튜브에 ‘포트폴리오 만드는 법’을 검색했다. 영상에 따르면 설명하지 말고, 성과로 보여주란다. 구체적인 수치로 내 능력을 증명할 지표를 대라는 거다. 어라, 우리 회사는 딱히 성과 측정을 안 했는데, 어쩌지. 물경력, 물경력… 말로만 듣던 물경력이 바로 내 경력이 되는 순간이었다.


조바심이 났다. 불안해진 마음에 전 회사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았다. 누적 조회 수라도 남아있으면 그것으로 내 '콘텐츠 에디터'로서의 역량을 뒷받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근데 이게 웬걸, 내가 제작했던 홈페이지 콘텐츠들은 싹 밀려 있었다. 홈페이지를 아예 폐쇄한 거다. 우리 부서를 계약직으로 뽑고, 지원도 잘 안 해줄 때부터 쎄했지만, 막상 내가 발행했던 콘텐츠들이 공중분해되어 세상을 떠난 것을 보니 묘하게 기분이 울적해졌다.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전부터 김이 팍 새 버렸다. 내 작업물이 괜찮다는 것을 증명할 지표가 없는데 이직할 때 어떻게 하지. 혼자 노트북을 붙잡고 나의 ‘직무적 역량’ 혹은 ‘노오력 따위’를 설명할 방도를 잃은 허망함에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연말의 어느 날 [3]


 

#읽씹_혹은_차단

 

백수인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낸다. 보통 점심 즈음 카페로 향한다. 그날도 혼자 카페에서 이런저런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카페의 연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작년 이맘때를 함께한 그 사람이 생각났다. 잘 지내고 있으려나. 보고 싶다. 쓸데없는 오지랖과 그리움이 앞섰다. 헤어진 지 시간이 좀 지났으니 속 시원하게 인사나 하고 끝을 좋게 맺을 수도 있지 않을까. 두서없는 생각들이 구질구질 전 여친 권기선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순식간이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다가 갑자기 뭐에 홀린 듯 인생의 중요한 과제라도 되는 양, 전 남친에게 보낼 문자를 40분 동안 썼다 지웠다 쇼를 했다. 에라 모르겠다. 전송. 혹시나 그 사람을 불편하게 하진 않을까, 고심한 단어들의 조합이 무색하게 답은 오지 않았다. 답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미리 마음에 중무장을 하고 있었다만, 정말 답이 오지 않으니 유치하게 배신감이 스믈 올랐다.

 

날 차단했나. 아니, 이렇게 차단할 거면 끝낼 때, '나중에 언젠가 볼 수도 있으니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이런 말은 아련하게 왜 한 거야. 뭐, 헤어지면 끝이니 차단할 수도 있긴 하지. 근데 내가 차단 박을 정도로 구린 전 여친이었나. 나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무슨 메두사라도 되니. 눈 마주치면 돌이 되어버리고 그런 거야? 그래,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라! 칫. 별 구차하고 찌질한 생각이란 생각은 다했다. 아무 행동을 취하지 않고도 나에게 모욕을 준 그 사람을 미워하다가, 또 옹호하다가를 반복했다.

 

거부당하는 경험은 열패감과 수치심을 주는 법이다. 할 수 있는 것은 정신 승리뿐. 다시 잘 될 사람도 아닌데 뭐. 이내 쿨한 척, 씩씩한 척 그 상처를 축소시키는 수밖에.

 

 


연말의 어느 날 [4]


 

#무용하지_않다는_증명


이제 함박눈이 펑펑 올 정도로 완연한 겨울이다. 카페에 앉아있으면 캐롤이 들려오고, 직장인들은 송년회를 하고, 온 거리는 연말연시 분위기로 복작 따땃한 겨울. 2022년의 끝은 다가오는데, 나에게 남은 증명의 지표가 ‘물경력’과 (대화도 섞기 싫은 전 여친으로 남은) ‘이별’이라니.


엄마는 나보고 왜 맨날 집 밖에 나가냐고 묻는다. 낮에 아무도 없으니 그냥 집에서 할 일을 하면 되지 않냐고 한다. 내가 매일 밖에 나가서 작업을 하는 이유, 나는 나에게 증명하고 싶은 거다. 비록 지금은 백수일지언정, 집에서 추레하게 머리 틀어올리고 전기장판 위에 누워 낮잠을 자버리다 저녁을 맞이하는 한량까지는 아니라는 증명. 나 무용하지만은 않다는 증명. 어쩌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역시 그 발악의 일환일지도 모른다.


유독 연말이 되면 그 해를 잘 살았다는 지표들을 찾는 것에 조급해진다.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회고록을 작성하는 것도, 연말에 시상식을 여는 것도 모두 그 지표들을 찾기 위한 인간의 시도가 아니겠는가. 흘러간 1년이 그나마 의미 있었기를 바라며 인맥으로, 기록으로, 상으로 그 증거들을 확인해야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전 회사 홈페이지가 폐쇄되어 울적했던 것도, 전 남친에게 답이 오지 않아 토라졌던 것도, 사실은 모두 내 1년간의 역할을 증명할 방도를 잃은 듯해서였다. 그날 내린 함박눈이 그래서 나에겐 서글펐나. 내 2022년의 증명은 이대로 실패로 끝나는 것일까. 난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무용한 사람인가.

 

어쩌면 나 스스로 무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유용함을 증명할 확실한 증표가 필요한 건가. ‘직업’은 권기선이 영 능력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증표. ‘남자 친구’는 권기선이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증표.

 

고작 나는 내가 유용한 사람임을 증명해 줄 무언가가 없어서 지금 우울한 건가. 아, 부정하고 싶다. 아냐, 인간은 원래 다 존재를 증명받으려고 발악하며 사는 거야. 나만 그런 건 아닐 거야. 무용한 나는 또 무용한 생각들을 정리하지 못한 채 늘어놓는다.

 

 


연말의 어느 날 [5]


 

#느네_김치_있냐


오늘도 할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건 할머니가 어김없이 가장 먼저 건네는 말. 느네 김치 있냐.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충 답한다. 속으로 김치가 뭐가 그렇게 중요해요, 할무니. 라고도 생각한다. 할머니는 사서 먹는 김치는 모두 중국산이라며, 당신이 이번에 담그신 김치는 생강에, 뭐에, 아무튼 몸에 좋은 재료를 잔뜩 넣었다며 날 설득하신다. 할머니, 우리 김치 그냥 사 먹으면 돼요. 무거운데 뭐 하러 들고 왔다 갔다 해. 괜찮다니깐.

 

귀찮고 번거로운 마음이 응축되어, 입 밖으로는 너무 무겁지 않겠냐는 가식적인 걱정으로 허울좋게 나온다. 마치 받으면 안 되는 어떤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듯, 나는 궁색한 거절을 한다. 여러 번의 권유와 사양이 오가다, 결국 할머니는 할 수 없이 그럼 알겠다고 하신다.


전화를 끊고, 순간 이런 나에게 위화감이 든다. 나는 날 증명하기 위한 것에는 여념이 없으면서, 할머니의 김치를 거절한다. 여러 이유를 들며 여러 날, 나는 할머니의 김치를 한사코 거절했다. 여러 이유를 들며 여러 날, 나는 할머니의 무용하지 않다는 증명을 한사코 좌절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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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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