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목표는 없고요, 그냥 방황 좀 해보려고요 [여행]

사춘기 소녀처럼 기꺼이 '방황'하여 ‘새로운 나’를 구성하기
글 입력 2022.11.0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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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성하던 것들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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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해 늦여름 쯤, 나는 ‘직장’ 그리고 ‘가족, 애인과의 관계’를 상실했다.

 

한때는 열정을 부르던 일, 행복과 안정을 담보하던 관계들이 어그러지니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에 남겨진 건 참 외롭고 무력했다. 아무리 우주에서 내가 먼지 같다지만, 이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느껴진 건 오랜만이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과 허무감은 생의 의지를 낭떠러지로 몬다. 하고 싶은 것도, 즐거운 것도 없이 깨어있는 시간은 몽롱하게 흘러갔고,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것 같았다. 머리를 대기만 하면 4초 만에 잠들어 ‘4초 컷’이라고 불리던 내가, 상실감과 불안에 잠식당해 밤마다 심장이 두근거려 거의 한 달 넘게 잠도 잘 이루지 못했다.


이때 깨달았다. 직책이나 관계 등 나를 둘러싸고 있는 가변적인 요소까지 뭉뚱그려 모두 ‘나’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그들이 발을 빼고 하나, 둘 떠나자 남겨진 나를 마주했던 것뿐이었다. 그 한가운데 숨겨져 있던 나는 한참 먼지가 쌓여 왜소해져 있었다.


상실을 애도하는 은둔은 이쯤이면 충분하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방황 좀 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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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한 것들 때문에 괴로웠던 감정보다, 나를 잃었다는 사실에 더 괴로웠던 것 같다. 나를 다시 찾아야 했다.


이번 가을과 겨울을 ‘나를 찾는 기간’이라 명명했다. 그 기간만큼은 사춘기 소녀처럼 나를 찾기 위해 기꺼이 ‘방황’을 해보고 싶었다.


목적 없이 이리저리 헤매다가 낯선 세상을 만나고, 현재의 내가 감응하는 것을 발견하고, 나를 새롭게 구성하기, 이게 내가 말하는 방황의 의미다.


이런 적극적 방황에의 다짐을 온 신체에 알릴 방법을 고민했다. 상실로 인한 자책과 수치심, 후회 등 잔여물들을 깨끗이 비우고, 인생의 한 단락을 매듭지을 ‘일종의 의식’이 필요했다. 끝을 알리는 그 의식이 곧,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명랑한 알람 또한 될 수 있도록.

 

 

 

그렇게 혼자 경주 여행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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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의식으로 혼자 여행을 선택했다. 새로운 곳에서 새 마음을 장착하고 산뜻하게 돌아오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한 여행지는 작년 가을에 친구들과 다녀온 ‘경주’. 같은 계절, 같은 공간이지만 달라진 나를 체감하고 싶었다.


이번 여행은 ‘나를 찾기 위한 방황’의 일환이었기에, 매 순간 내 욕구와 감각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경주로 가는 KTX에서 여행 시 지켜야 할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보았다.


 

1) 과거, 미래로 자유롭기

2) 나를 위한 시간 선물해주기

3) 사소한 좋은 것 모두 담기

4) 디지털 디톡스: 음악, 영상 지양

5) 그 시간, 공간에 온전히 몰입하기

 

 

동행이 있는 여행과는 달리, 혼자 하는 여행은 개인적인 마음이 이기심이 되어 상처나 피해로 돌아가지 않아서 편했다.

 

배가 고프면 동행의 의중을 물을 필요도 없이 그냥 식당으로 들어가면 되었고, 피곤하면 술 마시려 했던 일정을 철회해도 괜찮았다. 일정 계획은 짜지도 않았다. 그 때 그 때 발길이 닿는 곳으로, 가고 싶은 곳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여행하는 동안 어떤 것에도 속박받지 않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로지 나에게 윤택한 순간들을 내어주기 위한 고민과 선택만 있을 뿐이었다. 스스로 안부를 묻고 챙겨주자 공허했던 마음에도 온기가 돌았다.


그간 결속된 여러 관계망으로 인해 ‘세상과 타인의 요구’를 살피기 급급했지만, 경주에서는 내 욕구와 감정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나를 알아채고 돌봐주는 게 이렇게 꽉 찬 기분이었지.’ 서울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유연하고 우아한 영혼을 위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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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녀온 여행 외에도, 아직 ‘나를 찾기 위한 방황’은 진행 중이다. 다니지 않던 등산을 매주 다니고, 새로운 분야를 배워보고, 몰랐던 작품을 음미하고, 낯선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내고 있다. 방향과 목적 없이 일단은 그저 삶이 이끄는 대로, 마음이 따르는 대로 표류하려 한다.


니체가 말했다. ‘우리가 충분히 배우고 눈과 귀를 충분히 연 경우, 언제든 우리의 영혼은 더욱 유연하고 우아하게 된다.’고.

 

나의 이런 방황이 궁극엔 ‘유연하고 우아한 내 영혼’에 기여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내 이야기로 독자들 또한 방황에 기꺼이 동참하여 우아하고 유연한 영혼을 가질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걷는다.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어떤 모양인지도 모르면서 걷는다. 때로는 아무리 열심히 걸어도 원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제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조금씩 처음에 그린 원에서 비껴나고 있었다는 것을. 원이 아니라 나선을 그리며 걷고 있었다는 것을.


- 한수희,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권기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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