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살아있다는 감각 [도서/문학]

<단순한 열정> 서평
글 입력 2023.02.05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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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없는 사랑 과몰입자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는 모두 시인에 빙의한다. 일단 나는 그랬다. 그러니 모두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다.

고독했던 개별자들은 기록의 과정을 통해 '합일의 경외감'을 찬찬히 음미한다. 그 순간의 환상적 낭만을 가능한 오래 칭송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사랑을 기록하는 일은 보통 아래의 단계대로 이뤄졌다.

먼저 기록에 선행되어야 할 작업은 사랑의 장면 장면에 숭고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우연을 운명이라 믿고 작은 사건을 크게 해석하는, 약간의 망상과 편집이 필요하다.

다음은 본격적인 기록의 단계다. 이 단계에선 황홀한 사랑의 감정을 적확하게 표현해 줄 세심한 어휘력과 수려한 글 솜씨가 요구됐다. 시간이 지나도 사랑의 여운을 고대로 느끼기 위해선 '세심한 단어 선택'이 특히나 핵심.

마지막, 퇴고. 나열한 사랑의 증표들을 눈을 가늘게 뜨고 읽어보며, 냉철한 수정을 반복해야 한다. 완벽한 사랑에 버금가는, 완벽한 문장을 위해서다.


그렇게 다시금 우리의 (잘 포장된, 철저히 내 입장에서 기록한,) 완벽한 사랑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는 흡족한 마음으로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사랑은 과연 대단하구나.


아, 경험자로서 이렇게 쓴 글은 들춰보지 않는 편을 추천한다. 어차피 읽어도 오래는 못 읽을 거다. 혼자 읽어도 얼굴이 달아올라 빨리 덮고 싶어질 테니까.

 

그 당시 적은 사랑의 기록을 지금 와서 보고 있으면 민망하고 부끄러워진다. 생각나지도 않는 희미한 이유들로, 천년의 사랑이라도 되는 것 마냥 관계를 확대해석한 문장을 읽던 나는 '야 어차피 너네 곧 헤어져’하며 과거의 나에게 핀잔을 줘본다. 약간 멋쩍은 마음에서다.


아무튼 20대 초반, 사랑으로 비롯한 감정을 일일이 수집하고 기록했다. 하지만 이젠 그러지 않는다. 사실 첫사랑 이후로는 잘 적지 않아왔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푹 빠져 몰두하는 내 모습이 싫었던 것 같다. 사랑에 허우적거리는 사람은 어딘가 청승맞고, 현실적이지 않고, 유치해 보이니까.

 

한 마디로 멋이 없는 거다. 무언가에 간절한 게 티 나면, 무언가에 휘둘리는 게 보이면, 사람은 멋이 없어진다. 반박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전 남친에게 연락한, 그의 반응에 쉬이 휘청인, 나는 멋이 없는 쪽이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좋은 책은 첫 문장부터 좋다고 했던가. 우연히 집어 든 <단순한 열정>을 펼쳐 읽자마자 느낌이 왔다. 나 같이 멋없는 사랑 과몰입자가 또 있구나. 반가웠다.

 

사회에 입지를 다지기에도 바쁜 취업 준비생의 척박한 마음에 이 책은 서문만으로 파동을 일으켰다. 

 

사랑은 호르몬 장난이랬어. 다 부질없어. 불과 2주 전 친구에게 뱉은 말이다. 나는 가끔 나답지 않은 말을 잘도 뱉어댄다. 친구 앞에서는 어차피 이별로 마무리되는 사랑 혹은 연애는 진부하다며 시니컬한 척을 했지만, 이 책이 끌린 것을 보니 역시 나는 사랑에 무심한 멋있는 사람이 되긴 그른 모양이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발 들일 기회가 생기면, 앞으로 펼쳐질 낭만적 스펙타클에 기꺼이 응하는 내 마음을, 이 책의 화자는 이해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일었다.

 

나는 ‘아니 에르노’가 어딘가 유치하고 지나치게 감상적인, 꼭 나 같은 사람이길 바라며 (그래서 나의 멋없는 지질한 행동을 그녀의 문장으로 깔끔하게 정당화해주길 바라며) 책장을 빠르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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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기호들



책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시종일관 위 서문에 충실하게 전개됐다. 이 책은 화자가 한 남자를 통해 느끼는 '열정의 기호들'의 총집합이다.

 

자녀가 나가 산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화자는 중년 여성. 남편은 없다. 하루 종일 그녀가 하는 일은 A를 생각하는 일, 그리고 A와 관련되지 않은 일도 A와 연결하여 그를 떠올리는 일이다.

 

의도치 않게 화자의 일상을 지배하는 A는 연하의 외국인. 그는 유부남이다. 유부남이라는 상황 때문에 그녀에게 선을 긋는 건지, 그녀를 그저 잠자리 상대 정도로만 생각하는 건지, A의 마음은 알 도리가 없다.

 

다만 화자가 A에게 열정을 갖는 만큼의 열정을, A는 그녀에게 품지 않았다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손에 잡히지 않을수록 귀한 것으로 간주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화자는 오히려 그가 유부남이었기에 생기는 ‘여러 가지 제약이 바로 기다림과 욕망의 근원이었다’고 말한다.

 

책은 온통 그녀가 A에게 품는 진한 열정과 엷은 집착의 단어로 점철되어 있다. 그를 향한 그녀의 집요한 감정은 병적일 지경이다.

 

 

나는 그 사람의 모국어를 배우고 싶어 했었다.

그 사람이 마신 술잔도 닦지 않은 채로 보관하고 있다.

 

 

그 사람의 전화만 기다리며 고통을 겪는 일이 너무 끔찍해서

그와 헤어지기를 원했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누군가에 열정을 느끼면 사람은 혼이 나가는 게 분명하다. 내가 모지리라서가 아니었다. 세상 풍파를 어느 정도 겪은 이 중년의 지성인도 그런 걸.

 

어찌 됐든 A와의 열렬했던 혼외정사는 그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되며 끝을 맞이한다. 모두 알다시피 이별이 곧 감정의 소멸은 아니다. 그녀는 잔재한 감정으로 힘들어한다.

 

 

낮 동안에는 버려졌다는 상실감에 사로잡혀

하는 일 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무슨 일이든 하려고 노력했다.

 

 

주말이면 나는 일부러 집안 청소나 정원 손질 같은 고된 육체노동에 매달렸다.

저녁이 되면 나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A가 내 집에서 오후를 지내고 갔을 때처럼 사지가 마비되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의 육체에 대한 기억이 없는,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공허한 피로감이었다.

 


여느 이별처럼, 그녀도 이런저런 '공허한 피로감'으로 상실의 고통을 묻어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그를 향한 그녀의 열정도 자연스레 차츰 소진되어간다.


 

살아 있는 텍스트였던 그것들은 결국은 찌꺼기와 작은 흔적들이 되어버릴 것이다. 

언젠가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겠지.

 


 

살아있다는 감각


 

이 책의 작가 아니 에르노는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이 책의 화자는 작가 자신이다. (놀랍다.) 이 책은 자전적 소설이자 에세이인 셈이다.

 

자신의 불륜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문제적 작품이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당시 유명 작가이자 대학교수인 아니 에르노가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 가진 불륜 체험이 거의 사실 그대로 고백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책으로 그녀의 고백을 들은 누군가는 그녀가 그를 미친 듯이 사랑했다고 말하더라. 한데 나는 그녀의 열정을 ‘사랑’으로 귀결하는 것이 왠지 엉성하고 성급하다고 여겨졌다.

 

사랑으로 비롯된 징후들이라고 말하기에 그녀의 고백은 억척스럽고 절박한 구석이 있었다. 사랑, 그 흔한 단어로 이 책을 무마하는 건, 낱낱한 감정을 신랄하게 묘사하려 고뇌한 그녀의 노력을 배반하는 일은 아닐까 하는 노파심마저 들었으니까.

 

그녀는 내내 A에게 몰입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몰입'에 몰입한다. 그녀는 몰입하는 감정에 몰입하고, 갈망하는 감정을 갈망하며, 열정에 열정을 가진다.


 

그 사람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혼자 사는 중년의 여성. 어느정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그 시기에, 누구 하나로 맹렬한 갈증을 느끼는 일은, 단단하게 매만져둔 일상이 들쑤셔지는 일은, 그깟 전화 하나 놓칠까 봐 전전긍긍할 일은 얼마나 있을까. 지금의 나는 잘은 모르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런 경우는 드물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아마 이 책의 집필 역시, 중년의 평탄함에서 벗어나 자기의 온몸을 장악하여 자아를 쥐고 흔들어대는 속절없이 파괴적인 '열정'의 늪에 더욱 침잠하고 싶은 그녀의 행복하고 애처로운 발버둥이리라.

 

정체되어 있는 것만큼 우리를 죽게 하는 것도 없다. 심장은 두근대고, 감정은 요동치는 것, 그게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때문에 우리에겐 우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열정을 촉발시키는 것들'이 생의 주기마다 필요하다.

 

열정과 몰입은 농밀한 감정을 방출하게 하고, 끝내 한 사람을 탕갈시킨다. 그리고 그렇게 이룩한 고갈의 경지엔 생명력, 즉 살아있다는 감각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이 다른 여자가 겪은 일인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엄마께 엄청난 책을 발견했다며 간단히 책 줄거리를 읊어드렸다. 엄마는 여자가 사랑받지 못해 안쓰럽다고 하셨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사랑을 받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나의 생명력을 일깨워 펄떡이게 만드는 일, 내가 살아있다는 감각을 만끽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방법으로 하필 불륜을 택한 그녀를 옹호하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다.)

 

그리하여 '무언가에 열정을 느끼는 사는 것'은 작가의 말처럼 운이 좋고, 사치스러운 일이 마땅하다.

 

얼마 전, 한 유튜버의 라이브 방송을 봤다. 고민 상담 콘텐츠였다. 시청자가 '인생이 재미없어요'라는 고민을 토로했고, 유튜버는 '인생은 원래 재미없는 거예요. 그러다 가끔 재미있는 거고요'라고 답했다. 

 

뭐, 다들 알다시피 인생은 다소 뻔하디 뻔한 나와의 슴슴한 동행이다. 그 와중에 이 세계에서 '살아있는 감각'을 느끼게 해줄, 나의 열정의 기호들은 무엇이 있나 헤아려본다. 

 

물론 다음 사랑이 오면, 감정에 충실했던 나의 20대 초반처럼, 하지만 보다 솔직하게 감정의 민낯을 마주하는 용기 있는 아니 에르노의 글처럼, 사랑의 기록을 남겨보고 싶다는 기분 좋은 상상도.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고,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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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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